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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온천도시, 바쓰(Baths) 시내에는 에이본 강(river avon)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강 치고는 아담한 크기이지만 수량이 아주 풍부해서 한눈에 보기에도 풍요로운 느낌을 준다. 에이본 강이 있음으로 해서 바쓰는 평화롭고 풍성하다. 이 에이본 강에는 로만 바쓰(Roman Baths)의 따뜻한 온천물도 흘러들어가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퍼레이드 정원은 에이본 강과 잘 어울리는 바쓰의 명소이다.
▲ 퍼레이드 정원. 퍼레이드 정원은 에이본 강과 잘 어울리는 바쓰의 명소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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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본 강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를 가족과 함께 걸었다. 나나 아내나 어느 방향으로 걷자고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에이본 강을 보는 순간 우리는 에이본 강 산책로로 자연스럽게 접어들었다. 에이본 강은 구시가 바로 옆에 있고 강변에는 퍼레이드 정원이 강물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어서 바쓰 시민이나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곳이다. 우리는 강변의 산책로를 한가롭게 걸었다. 에이본 강변은 호젓함이 일품인 산책로였다.

에이본 강은 수량이 풍부하고 아름다운 바쓰의 젖줄이다.
▲ 에이본 강. 에이본 강은 수량이 풍부하고 아름다운 바쓰의 젖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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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전, 피렌체 베키오 다리를 본떠 만든 풀트니 다리

에이본 강 위에는 개성 만점의 풀트니 다리(Pulteney Bridge)가 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다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의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를 모델로 만든 다리라고 한다. 이 다리를 디자인한 건축가는 이탈리아 피렌체를 여행하면서 분명히 베키오 다리에서 강렬한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풀트니 다리는 에이본 강 위에 자리 잡고 앉아서 에이본 강의 아름다움을 더 고양시키고 있었다. 어쩌면 오랜 역사유적이 이리도 완벽하게 잘 남아 있을까?

다리 위에 가게가 들어서 있어 운치 있다.
▲ 풀트니 다리 다리 위에 가게가 들어서 있어 운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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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물이 발달한 현대에 보아도 베키오 다리는 너무 아름다운 다리이다. 베키오 다리는 수백년 전인 당시에는 더욱 동경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베키오 다리의 독특한 구조에서 영감을 얻어 온 다리라고 하지만 풀트니 다리도 워낙 오래 전인 1773년에 지어져서 역사적인 채취가 느껴진다. 다리를 수백 년 동안 지탱해 온 석재의 빛바랜 색상은 푸른 강물 위에서 더욱 장엄한 미감으로 다가온다.

풀트니 다리는 18세기에 영국의 네오 클래식 양식을 선도하던 건축가 로버트 아담(Robert Adam)에 의해 지어졌다. 이 다리가 세워지기 전에 바쓰 시민들은 작은 보트를 타고 이 에이본 강을 건넜다고 한다.

다리 이름이 '풀트니'인 것은 이 다리가 강 건너편의 땅을 가지고 있던 윌리엄 풀트니(William Pulteney) 경과 그 부인이 의뢰하여 만들어진 다리이기 때문이다. 특히 풀트니 부인의 의도대로 다리 위에 가게들이 들어서게 지어졌다고 한다. 영국에서 유일하게 온천수가 솟는 바쓰는 온천사업으로 경제력이 좋았기 때문에 가게가 가득한 아름다운 다리를 너끈히 지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다리 위에 2층 건물을 올린 풀트니 다리의 아름다움은 다리를 지탱하는 3개의 아치에 있다. 아치 아래로 흐르는 강물은 마치 2층 건물 아래로 강물이 흐르는 것 같이 보인다. 강물은 풍부하여 마치 수조 안에 물이 가득 들어찬 것 같다.

계단식 둑은 작은 폭포를 만들어 강변을 풍요롭게 한다.
▲ 계단식 둑. 계단식 둑은 작은 폭포를 만들어 강변을 풍요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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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본 강을 더욱 운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풀트니 다리 바로 밑에 있는 풀트니 둑(Pulteney Weir)이다. 모양이 말발굽같이 안으로 들어간 둑이 3단으로 계단을 이루고 있는데 이 계단식 둑 덕에 마치 에이본 강이 3층의 폭포를 만들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나는 수천 년 역사의 고도에서 시원한 폭포를 만난 것 같은 청량감을 느꼈다. 강물에 만든 작은 3단 폭포. 바쓰 사람들은 도시를 너무나 예쁘게 잘 가꾸고 있었다.

수량이 풍부한 강물이 포말을 일으키며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현대적인 예술작품을 보는 듯 하다. 강물이 폭포를 만나기 전의 첫 번째 계단 위에는 갈매기와 오리들이 잔뜩 몰려 있다. 아마도 물 흐름이 급해지는 이곳에서 새들에게 맛있는 물고기들이 많이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얌전히 흐르던 에머랄드 빛 강물은 작은 계단을 만나 강렬하게 갑자기 폭포수를 만드는데 그 모습이 시원하고 시원하다. 계단을 만나 놀랐던 강물은 다시 만나 흐르면서 마치 시간이 흐르듯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다리 위에는 오랜 역사를 가진 옷가게들이 많다.
▲ 풀트니 다리의 가게. 다리 위에는 오랜 역사를 가진 옷가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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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위로 늘어선 가게...서울엔 왜 이런 곳이 없을까

다리 위로 올라서니 다리 길 옆에 가게들이 들어서 있어 전혀 다리를 건너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할 정도이다. 유럽 내에서 다리 위에 가게가 있는 곳은 이 풀트니 다리와 이탈리아의 베키오 다리뿐인데, 다리 위에 자리 잡은 가게들은 완전히 다르다. 고풍스럽고 품위 있는 보석 가게가 많은 베키오 다리에 비해 풀트니 다리 위에는 오랜 역사를 이어온 예쁜 옷가게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예상 외로 다리 위에는 옷가게들이 꽤 많았다. 영국 사람들은 세일 기간 중에 옷을 사는 것으로 유명한데, 옷가게들이 가게마다 크게 '세일(sale)'이라고 붙여 놓았다. 우리나라의 옷가게에서 가게 진열장 유리에 붙여놓는 '세일'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아내는 옷가게들 밖에서 가게의 쇼윈도를 하나하나 들여다보지만 별로 흥미가 생기지는 않는 모양이다. 옷 값이 비싸기보다는 아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게의 옷들은 가게의 역사를 반영하듯이 마치 몇 십 년 전에 유행하던 옷들을 걸어놓은 듯했다.

에이본 강변 산책길은 호젓하고 평화로운 산책길이다.
▲ 에이본 강 산책. 에이본 강변 산책길은 호젓하고 평화로운 산책길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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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창문 사이로 들여다 본 한 가게에서는 바쓰 시민들이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커피가게같이 '여기는 커피가게'라는 큰 간판을 걸어놓지 않았기 때문에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지 않으면 커피숍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없을 정도이다. 바쓰의 시민들은 3백년 역사의 다리만큼 역사가 오래 되었을 가게에서 한가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커피를 마시며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서울에도 역사가 수백 년이 되는 찻집이나 가게가 남아 있으면 얼마나 운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가게들을 구경하는데 약한 빗줄기가 어깨를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카메라 가방에 넣어둔 작은 접이식 우산을 빼들었다. 영국에서는 예상치 않게 비가 내리다가 그치고 하기 때문에 매일 귀찮게 우산을 가지고 다녔는데 오늘도 잠깐 우산을 사용하게 된다. 한 손에는 사진기를 들고 있으니 우산 들고 사진 찍기가 불편하다. 우산을 받쳐들고 한 손으로 강변과 다리의 가게들을 찍으려니 손이 모자란다.

풀트니 다리를 건너자 다리 남쪽 끝에 에이본 강으로 연결되는 계단이 이어지고 있었다. 계단으로 만들어진 작은 통로는 마치 역사의 옛길을 되돌아가듯 좁고 운치있는 길이었다. 계단은 다리 끝 건물의 몸통을 파낸 듯이 빙글빙글 이어졌다. 건물 속 계단을 빠져 나오자 바로 눈앞에 갑자기 에이본 강의 전경이 펼쳐졌다.

정말 떠나기 싫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곳이다.
▲ 에이본 강변. 정말 떠나기 싫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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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바로 앞에서 보니 다리 위에서 보았던 계단식 물줄기가 더욱 커 보였다. 에이본 강의 물줄기 떨어지는 소리가 시원스럽게 들려왔다. 유람선은 강의 물줄기를 따라 다니고 있었다. 에이본 강에서 운항하는 작은 유람선은 계단 폭포 바로 앞에 멈춰 서서 강물의 흐름을 천천히 감상하고 있었다. 유람선이 마치 작은 폭포를 들여다보고 있는 듯하다.

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데 수많은 비둘기들이 우리 가족 뒤를 계속 따라온다. 아마도 이 강변에 내려온 사람들이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많이 주는 모양이다. 우리가 다른 곳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해도 비둘기들은 마치 스토커처럼 우리 뒤를 계속 쫓아왔다. 비둘기들도 떼로 덤비니 괜히 겁이 난다. 발을 굴려 소리를 지르자 이 섬칫한 비둘기들이 모두 달아났다.

우리는 강변을 조용히 산책했다. 강물을 따라 마냥 걷다가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한적한 영국 소도시의 강변 경치와 함께 풀트니 다리, 계단 폭포의 정경은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 강변의 분위기는 떠나기 싫을 정도로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하늘은 조금 흐렸다. 나는 에이본 강변에서 아내와 딸을 바라보며 내가 살아왔던 삶들을 살며시 떠올려 보았다. 분명 음악이 흐르지 않았지만 내 귀에는 바쓰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아무래도 바쓰를 더 사랑하게 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270편이 있습니다.



태그:#영국, #바쓰, #에이본 강, #풀트니 다리, #풀트니 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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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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