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의 사제와 수도자들이 해군기지 공사를 저지하고 제주도를 진정한 평화의 섬으로 만들기 위해 '제주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연대(이하 천주교연대)'를 결성했다. 천주교연대 결성에 서명한 성직자들은 10일 저녁 강정마을에 모여 천주교연대 출범총회를 열고,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사제·수도자 선언'을 발표했다.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 계획이 발표된 이후, 천주교 제주교구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투쟁을 후원하는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지난 2009년 김태환 제주지사에 대한 주민소환운동이 전개되자 천주교인들은 각 교회별로 서명용지를 비치하여 주민소환투표 발의에 필요한 서명을 받았다. 지난해 연말부터 공사가 강행되자 천주교 제주교구는 매주 목요일에 구럼비 해안에서 평화의 미사를 드렸고, 당국이 공권력을 동원해 구럼비 해안을 봉쇄하려 하자 성직자들은 평화 운동가들과 더불어 천막생활을 시작했다.
게다가, 천주교계는 여러 가지 방식의 모금활동을 전개하여 해군기지 반대투쟁을 지원했다. 이들이 지원해 준 돈으로 주민들은 과태료를 납부하고, 평화비행기 기획단은 전세기를 계약할 수 있었다. 해군기지 공사로 벼랑 끝에 내몰린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천주교는 정신적인 위로이자, 물리적·경제적인 지원군이었다.
그런 가운데 제주교구 사제와 신도들의 그간의 노력과 헌신이 전국으로 울림을 던져, 문정현 신부를 시작으로 많은 사제들이 강정마을을 방문했다. 지난 8월에 경찰이 외부에서 대규모 무장병력을 강정마을로 들여오자,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사제들은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에서 연속해서 미사를 드렸다. 최근에는 천주교 평신도들도 단체로 강정마을을 방문하여 평화를 위해 기도를 올린다.
그 과정에서 평화를 향한 염원이 '이심전심'으로 모여 천주교연대를 출범하기에 이르렀다.
이날 결성총회는 성직자 5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오후 5시부터 강정마을 의례회관 마당에서 열렸다. 사회를 맡은 고병수 신부는 "천주교연대를 위한 초동모임이 지난 9월 15일 강정마을에서 처음 열렸고, 천주교연대 결성에 서명한 성직자가 신부 1000여 명, 수녀 2500여 명 등 총 3700여 명"이라고 보고했다.
초동 모임이 열린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전국단위 모임이 결성되고, 500명이 넘는 사제와 수도자들이 제주도의 작은 마을로 모인 데서 성직자들 각자의 가슴 속에 자리잡은 평화를 향한 염원을 읽을 수 있다.
"제2의 4.3...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 또 마주하게 할 수 없어"
총회에서는 결성 이후의 활동 계획들도 논의되었다. 천주교연대는 일단 사제와 수도자들이 먼저 나서서 연대를 결성한 이후 평신도들에게도 문을 열어서 더 규모가 큰 기구로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총회는 1시간 30분 동안 열띤 토론 속에 진행되었다. 성직자들은 출범총회에서 기구의 명칭을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연대'라고 명칭을 확정하고,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 사제·수도자 선언문'을 채택했다.
천주교연대는 선언문에서 "제주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정부의 계획에 해군기지 건설 예정지인 강정마을 주민들은 물론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는 많은 국민이 반대하고 있고, 한국 천주교의 사제들과 수도자들도 생명이신 하느님, 평화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정신에 따라 제주해군기지 건설 계획의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면서 지난 4년간 함께 아파하며 기도했다"고 밝혔다.
천주교연대는 "정부는 제주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으로 등록돼 있다고 자랑하고,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을 위해 대국민 홍보를 펼치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자연이 보존된 강정 구럼비 해변을 파괴하고, 콘크리트 제방을 쌓아 수십 척의 군함이 정박하는 해군기지로 만들려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천주교연대는 지난 9월 2일 정부가 육지부 무장경찰을 투입하여 주민과 평화활동가들을 강제 연행한 일을 거론하여 "두 번 다시 용납할 수 없는 제2의 4.3이었다… 4.3의 상흔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는 제주와 제주도민들에게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또 마주하게 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천주교연대는 "정부와 해군은 구럼비 바위를 부수고, 강정바다에 시멘트를 퍼붓는 이 참담한 공사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면서 "정부는 제주해군기지 건설계획을 전면 철회하고, 국회는 제주해군기지 건설과 관련된 모든 예산의 편성과 집행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천주교연대 출범총회에 참가한 성직자들은 오후 7시 30분에 강정포구에서 평화미사를 드렸다. 성직자들은 총회가 열린 의례회관에서 포구까지 '해군기지 건설 중단'을 요구하는 만장을 들고 거리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이날 미사에는 성직자와 평신도 등을 합해 1000여 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뤘다.
천주교연대는 이날 채택한 결의문을 청와대에도 그대로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투쟁을 '종북 좌파'들의 소행이라고 비난해 온 여권이 천주교연대의 선언을 접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