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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뼈대만 남은 큰형님 집
 앙상한 뼈대만 남은 큰형님 집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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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전화해 달라고 합니다."
"전화요, 전화? 전화 올리가 없는데... 누가 했지."

경남 김해에 아주 중요한 회의가 있어 갔기 때문에 웬만한 급한 일이 아니면 아내가 전화를 할리가 없었습니다. 집안에 큰 일을 당하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느낀다고 합니다. 저 역시 갑자기 작은 형님이 생각났습니다. 서울 00병원에서 간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었기 때문에 '혹시 작은 형님이?'하는 불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화를 눌렀습니다.

김해로 걸려 온 전화

"여보, 큰아주버님댁에 불이나 다 타버렸어요!"
"큰 형님 집에 불이 났다구요?"
"예."

순간 멍해지면서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큰 형님이 살아온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60대를 넘은 분이니 배고픔은 당연한 것이고, 있는 집안이 아니면 배움이 짧았습니다. 배움이 짧다는 이유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살아온 것은 큰 형님만의 삶은 아닙니다. 40~50대를 살아가는 형님들 삶이 대부분 그럴 것입니다.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바로 큰 형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형님."
"응, 볼 일 봐라."
"…"
"괜찮다. 볼 일 봐라."
"예."
"괜찮다."
"예."

자기 집에 불이 났는 데도 동생을 더 챙긴 큰 형님

'볼 일 봐라'는 형님 목소리는 떨렸고, 울먹였습니다. '예' 외에는 더 할 말이 없었습니다. 볼 일 봐라는 것은 동생이 김해에 간 이유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자기 집에 불이 난 것보다 동생이 김해에서 하는 회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거지요.

마음이 아렸습니다. 저렸습니다. 아마 거꾸로 되었으면 형은 열일 제쳐두고 동생에게 왔을 것입니다. 형만한 아우 없다는 말, 전혀 틀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회의가 중요하다며 회의장을 지켰습니다. 동생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형님과 함께 볼 일이 있이 시내에 들렀는데 불났다고 전화가 와서 부리나케 달려갔지만 이미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었다고 했습니다.

형님은 넉넉하게 살지 않았기 때문에 예순을 앞두고 처음으로 자기 집을 가졌습니다. 그것도 조립식으로 지었습니다. 집을 조립식으로 짓는 사람도 다 있나, 벽돌로 짓지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넉넉하지 못한 집안 살림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요즘은 규제가 강화되었지만 10년 전에는 많이 지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립식 판넬 안에 스티로폼이 들어가는데 한 번 불이 붙으면 한순간에 다 사라집니다. 농촌이라 화재 신고가 들어가도 거리가 멀기 때문에 119가 아무리 빨리 와도 도시 지역보다는 2~3배는 더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 사정이 넉넉하지 못했던 큰 형님은 생애 처음 집을 조립식으로 지었다.
 경제 사정이 넉넉하지 못했던 큰 형님은 생애 처음 집을 조립식으로 지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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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하게 남은 뼈대... "온 몸이 떨렸다"

앙상하게 남은 뼈대를 보니 불이 얼마나 거세게 타올랐는지 짐작이 갔습니다. 온 몸이 다 떨렸습니다. 불을 직접 본 사람들은 뜨거워서 가까이 갈 수도 없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특히 스티로폼은 타면서 유독가스를 내뿜기 때문에 가까이 가면 안 됩니다. 어머니는 처음에 불이 난 사실을 모르고 계시다가 아랫집 아저씨가 알려주었다고 했습니다.

"내가 뒤집 할머니에 마실 갔다가 집에 오는데 아랫집 아재(아저씨)가 '할머니, 큰 아들 집에 불났습니더'라고 하더라."
"어땠어요?"
"고마, 시커먼 연기하고, 불이 하늘로 올라가는데 내 가슴이 떨려서 도저히 못 보겠더라. 이 일을 우짜꼬. 그래도 밤에 불이 안 나서 형님하고 형수가 큰 일을 안 당해서 천만다행이다. 다 하나님이 보호하신 것이다."
"비록 집은 다 타버렸지만 생명은 지켜주셨지요."


지붕이 다 녹아 내려 뻥뚫려 하늘이 다 보입니다.
 지붕이 다 녹아 내려 뻥뚫려 하늘이 다 보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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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난 지 24시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매캐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습니다. 생명은 건졌기 때문에 다행이지만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린 형님네가 살아갈 앞날을 생각하니 마음은 더 아려왔습니다. 형님은 나를 보자마자 울먹였습니다.

"형님, 울지 마세요."
"응, 안 운다."

"하나님께 모든 것 맡기고 다시 일어나면 돼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결국 우리가 바랄 것은 하나님밖에 없지요."
"응."

이 말 외에는 위로할 말이 없었습니다. 울먹였던 형님도 웃었습니다. 물론 가슴은 앙상한 뼈대처럼 남은 것 하나 없겠지만요. 

형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습니다

형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처음 제게 보인 눈물입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하루를 보내셨습니다. 집에 불이 났는데도 "괜찮다, 볼 일 봐라"며 저를 먼저 챙겨주신 형님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못합니다.

오늘(11일) 불탄 형님 집을 봤습니다. 앙상한 뼈대와 뻥 뚫린 천장을 통해 하늘이 보였습니다. 제 가슴에 지붕만큼 큰 구멍이 났습니다. 형님과는 비교도 안 되겠지요. 형님, 낙담하지 마시고 좌절하지 마시고 힘내세요. 우리가 있습니다. 형님 동생이 여덟이나 있습니다. 아직 어머니도 계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 삶은 절대의존이지요.

가을걷이가 다 끝나면 앙상한 뼈대와 뻥 뚫린 지붕은 다 걷어내고, 새 집을 지을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시작입니다. 형님보다 저를 먼저 챙겨주신 것 고맙고, 고통 이겨내고, 힘내세요. 우리가 있습니다.


태그:#불, #큰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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