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개봉한 <달마야 서울 가자>(육상효 감독)는 절을 지키려는 스님들과, 절을 부수고 드림시티를 건설해야 하는 건달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코믹하게 그린 영화다.
영화에서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대목은 스님들이 불전함을 되찾기 위해 조폭들과 노래 대결과 폭탄주 결전을 벌이는 장면이다. 음주가무에 빠진 스님들의 모습이 웃기기도 했지만, 절을 지키기 위해 속세의 냉혹한 현실에 맞서 몸부림 치는 스님들의 모습이 처절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11일, 천주교 사제들이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장 입구에서 경찰들을 향해 단체로 '가위바위보 게임'을 제안했다. 영화 <달마야 서울 가자>의 '대결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이었다.
영화 <달마야 서울 가자> 강정마을 버전은?이날 오전에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에서는 천주교 성직자와 신자들이 모여 평화의 미사를 열었다. 이날은 천주교 전주교구와 의정부 교구에서 사제와 신자들이 단체로 마을을 방문해서, 미사에 참석한 인원이 90여 명에 이르렀다.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에 공사장 정문 인근에는 여성농민회 활동가 한 명이 해군기지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펼치고 있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교통정리를 담당하던 경찰이 1인 시위가 차량의 공사장 출입에 방해가 된다며 시위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를 지켜보던 연로한 사제가 "1인 시위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으나, 담당 경찰은 비켜주려 하지 않았다. 사제와 경찰 간에 신경전과 몸싸움이 일었지만, 연로한 사제가 젊은 경찰을 힘으로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그러자 젊고 건장한 신부가 1인 시위자를 보호하기 위해 나섰다. 1인 시위를 악착 같이 방해하던 경찰은 젊은 사제의 건장한 체구에 밀려 자리를 내줬다.
이날 미사에서 강론을 맡은 의정부 교구 소속 김기곤 신부는 이 광경을 의식했는지 "힘으로 평화를 이길 수 없다"는 주제로 말씀을 이어갔다.
김 신부는 "예수님이 가르쳐준 평화는 주먹을 통한 평화가 아니라, 주먹을 펴고 손을 내미는 평화"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주는 평화는 세상의 평화와 다르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강론 끝에 "평화는 폭력보다 세고, 주먹으로는 내미는 손바닥을 이길 수 없는 것이 진리"라며 "이런 평범한 진리를 아이들도 다 아는데, 군인과 경찰들만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김 신부가 "손바닥이 주먹을 이기는 단순한 이치를 가르쳐 드리겠다"며 경찰관들에게 가위바위보 게임을 제안했다. 사제들은 김 신부의 선창에 맞춰 일제히 '보'를 냈다. 하지만 경찰관들은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사제들은 '살인미소'를 지으며 경찰관들을 쳐다봤고, 경찰관들은 어색한 표정으로 시선 둘 곳을 찾았다. 현장에서 취재에 열중하던 이들도 그 순간만은 긴장을 뒤로 하고 잠시 웃을 수 있었다.
김 신부가 '가위바위보 게임'을 제안한 것도 긴장을 잠시 녹이려는 의도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가 되어버린 강정마을에 긴장을 녹이고 평화의 싹을 틔우기 위해 애쓰는 사제들이 있어 여간 다행이 아니다. 영화 속에서 그 스님들이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