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서쪽으로 16킬로미터 떨어진 곳, 낭테르, 그곳에는 소르본느 대학의 분교가 있었다. 낭테르 분교의 학생들은 오래 전부터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분교에는 도서관이 없었기에 공부를 하고 싶은 학생들은 파리 시내에 있는 본교까지 가야했다. 뿐만 아니라 기숙사 내부 규율도 엄격했다. 사생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기숙사에 들어올 수 없었다. 기숙사 내에서는 남녀학생의 자유로운 교제, 정치적 종교적 선전활동 등 그야말로 모든 것이 금지되었다.
낭테르의 문제는 곧 프랑스 대학 사회의 문제였다. 학생들은 프랑스 대학교육이 시대착오적이고 교육 환경 역시 전근대적이라고 생각했다.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나 토론과는 동떨어진 교육을 받아야만 했는데, 당시 한 잡지의 표현에 따르면 '속기사처럼 강의내용을 열심히 베끼는 데만 전념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또한 10년 사이 대학생 수는 세배가 넘게 증가했지만 대학 시설은 그 것을 따라가지 못했다. 낭테르 분교와 같은 사례가 그러하다. 이러한 학생들의 불만은 지난 10년간 독재자처럼 군림해온 드골 정부와도 맞닿아 있었다. 분명 학생들이 겪어야 하는 불행에는 권위주의에 기반을 두고 소통을 무시하는 정부의 태도에도 책임이 있었다.
1968년 3월 22일, 낭테르 대학에서 학생 소요가 일어났고 이는 곧 파리를 지나 프랑스 전 지역으로 퍼진다. 이를 막기 위해 경찰은 학교를 점령한다. 하지만 대학생뿐만 아니라 리쎄(고등학교)의 학생들도 거리로 뛰쳐나온다. 얼마 지나지 않은 5월 13일을 기점으로 노동자들과 교사들도 시위에 가세한다. '혁명'이 발생한 것이다.
2011년 9월 17일, 텐트와 침낭 등 간단한 캠핑도구를 챙긴 사람들이 월가에 나타났다. 사람들은 이제 리버티 플라자로 불리는 주코티 공원에 텐트를 치고 구호와 호소를 담은 피켓을 세웠다. 이 소식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타고 전 세계로 퍼졌다. 많은 청년들이 월가로 몰려들었고, 시카고와 보스턴 등 미국 내에서 비슷한 시위가 이어졌다. 성난 시위대는 시간이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다. 교사, 학생, 간호사 심지어 60년대 반전 운동을 주도했던 노년층까지 시위대로 집결하고 있다. 규모뿐만 아니라 시위의 활동 범위 또한 넓어졌다. 시위대는 남부 맨해튼을 벗어나 중부 맨해튼까지 세를 확장했다.
유럽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5월 스페인에서 출발한 시위대는 프랑스를 건너 10월 8일 벨기에 브뤼셀에 도착했다. 시위대는 도보로 이동했고 몇몇 유럽의 시민들은 이에 동참했다. 처음에 100여명에 지나지 않았던 원정대는 400여명까지 불어났고, 벨기에와 네델란드 등 접국의 청년들과 대서양 건너 미국 청년들까지 시위에 동참하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 지금 시위대는 캠핑을 하거나 브뤼셀 경찰 측에서 내준 한 학교 건물에 모여 숙식을 해결하며 토론을 계속하고 있다.
세계의 지식인들은 이번 시위에 대해 '목적이 없는 시위' '주동자가 없는 시위'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규정하기 힘든 시위라는 것이다. 여러 학자들은 전 세계적인 시위에 동조하면서 조직과 목적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하지만 정작 시위대 개인은 이러한 움직임을 부정하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평등한 주체로 명명하고 조직화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실제로 주축 세력이 없기에 조직화되고 뚜렷한 목적을 가지기는 힘들어 보인다.
68년도 프랑스에서 시작된 시위 역시 지금의 경우처럼 전 세계로 퍼졌다. 물론 지금처럼 순식간에 확산되지는 못했지만, 시위의 정신과 구호는 유럽을 넘어 미국까지 건너갔다. 일부 학자들은 당시의 시위를 트로츠키스트나 마오주의자들에 의해 선동된 시위일 뿐이라며 폄하하기도 한다. 그리고 현재의 시위 역시 불만에 가득 찬 개인들의 황당한 움직일 뿐이라며 그 의미를 축소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작이야 어쨌든 사람들의 동의를 얻게 되고 그 정신이 의미를 갖게 된다면, 이는 충분히 가치를 갖는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40년 전 프랑스의 청년들은 경제적, 사회적, 세계적 문제에 관하여 줄기차게 토론했고, 빈부격차의 문제, 대학의 문제, 민주주의의 문제, 베트남 전쟁 문제 등 모든 문제에 대한 선언을 발표했다. 드골 정부의 몰락은 당시 시위대의 목적 중 일부였지만, 결과적으로 드골 정부를 내려 앉혔다. 지금 지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성난 시민들의 목소리 역시 누구를 무너뜨리는 것이 주요한 목적이 아니다. 1%가 소유하고 있는 자본이 점령한 세계의 질서에서 느껴지는 '불만'과 '부조리의 감정'이 해소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기득권층의 방해와 무관심 속에서 시위가 자연스레 수그러들지도 모른다. 반대로 시위의 목적이 구체화되고 조직이 정비되어 강력한 세력을 형성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 사람들이 집결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이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무장한 현재의 연대의식은 곧 바로 행동으로 변할 수 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당신이 가진 불만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와 공유된다는 것, 그것은 곧 그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힘이 된다. 10월 15일, 한국 역시 청계광장과 서울역, 여의도 등지에서 모임이 있을 예정이다. 다른 45개국에도 비슷한 행사가 예정되어있다. 당신이 가진 불만이 무엇이건 간에, 제도와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것, 그것이 곧 모임에 참여 할 권리이다. 그리고 그 권리는 충분히 행사되어야 하며, 자유로운 이야기 속에서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