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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없이 좋은 가을, 다들 즐거운 추억 만들고 계신가요? 저는 부산 영화제 막바지에 다녀왔어요. 예년에 비해 올해는 이 영화제가 유달리 조용한 느낌이 강하더군요. 여기서 홍상수 감독의 '북촌방향'을 보았습니다. 마치 영화과 학생이 밤새 다듬어서 교수님 책상에 올려놓은 과제 마냥, 조금은 촌스럽고 뭉특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것들 하나하나가 전부 장치란 걸 알게 된 순간, 핑 하고 지나가는 번개를 만나게도 됩니다. 어린 시절, 딱 자신의 입에 맞는 음식을 한입 입에 베어 물었을 때, 누구에게도 그 맛난 것을 가르쳐 주기 싫은 기분, 그런 감정들이 이 영화에는 들어있습니다.

 

지방에서 영화를 가르치는 전직 감독. 그가 서울 북촌에서 선배를 기다리며 겪는 3일간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기둥 줄거리입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예전 연인이 사는 아파트에 들러 지난 추억에 절절매며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도 해보고, 그러다 문득 새 날이 밝자 언제 그랬냔 듯 작별을 하고 나옵니다.

 

이후 선배 일행과 동행해서 술집 '소설'에 갑니다. 주인이 문을 열어 둔 채 자리를 비운 그곳에서 그들은 끝도 없는 수다를 떨며 이제나 저제나 주인이 오길 기다립니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세 명의 등장인물이 '지금' 이란 이 순간을 종결 지어줄 존재로서 고도를 기다리고, '그 무엇'을 갈망하듯 이 영화 속 그들도 여주인을 끝없이 기다립니다.

 

그 시각, 일상이 인간에게 거침없이 반복적으로 찾아오듯 그 기다림의 끝에 자리한 술집 골목길을 또각또각 발소리를 내며, 여주인은 반복적으로 그들을 찾아갑니다. 게다가 그 반복 안에는 미묘한 차이만 있을 뿐 크게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자신의 옛 연인과 너무도 흡사한 여주인에게 빠져버린 남자는 격하게 그녀에게 뛰어들었다가 또다시 언제 그랬냔 듯 무심히 빠져나가기를 반복합니다.

 

지난날의 '일상'이었던 옛 연인에게 했던 것처럼 여주인, 즉 자신의 일상에게 그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매일 단 세 줄이라도 일기를 꼭 쓸 것. 아마도 그건 새로운 그 무엇을 찾으며 일상을 살고 있는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그 가운데 특정 지인과의 수 십 번의 마주침도 있었고, 자신은 기억도 못하는 사람들이 다가와 뜻도 모를 이야기를 건네기도 합니다. 그런 마주침이 있기 까지 수없이 많은 원인들이 그 상황으로 자신을 이끌었을 거라고 여기며 그는 덤덤히 시간 속을 지나갑니다.

 

북촌을 떠날 때가 가까워질 무렵, 공원 입구를 어슬렁거리던 남자는 자신의 팬이라며 인사를 해오는 한 여자를 만납니다. 예전에 스쳐갔던 유쾌하고 칼칼한 '일상'들과 다르게 이번에 다가온 '일상'은 꽤나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다가서는 기분입니다.

 

사진은 자신의 일기 같은 거라며 여자는 그에게 피사체가 되어 달라 합니다. 별말 없이 포즈를 취하던 남자는 문득 자신 앞에 다가온 그 새로운 '일상'에 서서히 어떤 깨달음을 얻은 듯 뚫어지듯 그녀를 응시합니다. 그 가운데 영화가 끝납니다.

 

특별한 줄거리는 아무것도 없지만 독특한 시선과 미묘한 분위기가 매력적인 영화. 그 맛이 굉장히 신선하고 꽤 오래 기억에 남아, 후에도 열심히 찾아다니게 만드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뭐랄까...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열심히 마셔대던 막걸리 같이 텁텁하지만 묘하게 끌리는, 촌스러움과 세련됨을 동시에 지닌 영화라고나 할까요?

 

하여간 부산 영화제로 인해 늘상 새롭고 독특한 세계에 발을 담그게 됩니다. 부산이 점점 친근해 지기도 하고요. 집에 오는 길에 막걸리를 한 병 사들고도 와서, 그 안주로 부산을 기억할 만한 동래파전도 만들어 먹으며 이렇게 저렇게 올 가을 부산에서의 추억도 한 줌씩 더해졌습니다.

 


태그:#동래파전, #부산영화제, #홍상수, #북촌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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