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역아동센터에는 주 마다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이번 프로그램은 벽화를 그리는 것이다. 사진은 강동꿈나무지역아동센터.
▲ 지역아동센터 프로그램 진행중 지역아동센터에는 주 마다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이번 프로그램은 벽화를 그리는 것이다. 사진은 강동꿈나무지역아동센터.
ⓒ 노동세상

관련사진보기


한 아이가 우렁찬 목소리로 "저 왔어요!"하며 문을 열고 밝게 인사한다. 매일 학교 받아쓰기 점수가 낮았던 아이는 "저 오늘 백점 맞았어요!"라고 자랑을 한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에게 하는 얘기가 아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아이들이 오는 곳인 지역아동센터의 교사들에게 하는 말이다.

지역아동센터는 저소득층 가정으로 기초생활 수급자, 차상위 계층, 한 부모, 조부모, 맞벌이 부부 등의 자녀들을 돌보고 공부를 가르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강동꿈나무지역아동센터 김신옥진 센터장은 "우리가 교육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취약계층"이라 말했다.

"아이들이 어린나이에도 내면 깊이 상처를 안고 살기도 하죠. 유난히 외로움을 많이 타기도 해요. 간혹 몸에서 심한 냄새가 날 정도로 청결하지 못한 아이들도 있어요."

공동육아 공동체교육 교사협의회 윤지선씨가 말을 거든다.

"부모들이 맞벌이를 많이 하다보니 아이들을 돌볼 수 없고 방치돼요. 놀이터에 나가보면 애들이 우후죽순으로 노는데 옆에 고등학교 형들이 담배피우고 있고, 욕설도 나오고 해요. 이 아이들을 돌볼 선생님이, 어른이 조금만 있어야죠."

97년 IMF이후 서민경제가 어려워지자 자생적으로 생겨난 '지역 공부방'이 2004년 법제화된 이후 지역아동센터로 바뀌면서 전국 3802개(2011년 5월 기준) 시설이 생겼다.

아이들의 간식과 저녁식사를 챙기고 숙제를 돕고 다음날 학교 준비물을 챙기는 일은 모두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의 몫이다. 하지만 이들의 처우가 낮아 이직률이 높고, 사회복지계열 종사자들 또한 지역아동센터에 지원을 꺼리는 등 많은 문제가 지적되고 있었다. 이에 교사들이 전국지역아동센터교사협의회(이하 전지교협)를 통해 첫 기자회견을 열고 권리 찾기에 나섰다.

"아들이 '자기 알바비 보다 적다'며 센터 그만두래요"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들의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전지교협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전지교협 기자회견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들의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전지교협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노동세상

관련사진보기


14일 오전 11시 전지교협은 서울시의회 별관 앞에서 '지역아동센터 종사자 처우개선비 지원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지난 9월 말 부터 보름동안 서울지역의 지역아동센터를 방문해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서울의 지역아동센터 종사자 총 1127명 중 844명(74%)이 처우개선 서명에 응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가한 송파희망세상지역아동센터의 양정란 생활복지사는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잘 돌보고 싶지만 여건이 받쳐주지 못한다"고 발언했다.

양씨가 일하는 곳에는 시설장, 생활복지사, 급식조리사 3명의 종사자들이 30명 아이들의 방과후를 책임지고 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근무하도록 되어있지만 이보다 훨씬 일찍 나와 업무를 준비해야 한다. 구청에 급식 메뉴와 실제 급식사진을 찍어 보내야 하고 진행해야 할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일과를 소개하며 지역아동센터의 열악한 현실을 알렸다.

"12시가 지나면 초등1년생 7명이 센터 문을 여는 것을 시작으로 20평 남짓한 공간이 아이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해요. 아이들과 간식을 먹고 숙제를 봐주고 학습지도를 하죠. 30명 분 간식과 저녁식사를 챙기기 위해 급식조리사는 주방을 나오지 못해요. 아이들 모두를 꼼꼼히 돌봐주고 싶지만 손이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아이들이 귀가하고 나서야 행정업무를 볼 수 있어요. 교사일지와 아이들 관찰일지, 당일 진행한 프로그램 일지, 프로그램에 함께한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보고서 작성, 다양한 프로그램 제공을 위해 문화바우처나 기관과의 연계도 해요. 일을 마치면 저녁 9시를 훌쩍 넘기도 해요."

양씨는 "30명의 아이들을 책임지기엔 3명의 종사자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인원을 더 채용하고 싶었지만 구청에서 지원되는 350만 원으로는 인건비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급여를 쪼개고 쪼개 월 80만 원을 준다는 모집광고를 냈지만 단 한명도 지원하지 않았다"고.

4대 보험을 제한 양씨 한 달 급여는 83만 원이다. 그의 월급을 본 후 21살짜리 아들이 "자기가 방학 때 백화점 보안요원으로 번 140만 원 알바비보다 더 적다"며 "당장 그만 두라"고 했단다. 하지만 그만둘 수 없었다.

"다들 그만두라고 얘기해요. 같이 일하던 한 선생님도 월급이 적어 생활에 보탬이 부족해 떠나갔어요. 하는 일이 힘들고 한 사람이 맡은 일이 너무 여러 가지예요. 하지만 다 떠나고 나면 누가 남아요. 아이들은 누가 돌봐요. 이제껏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은 철저한 자기희생을 해왔어요. 이 일을 하려면 봉사하고 헌신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지만 나 역시 가정에선 아이들의 엄마로서 생활을 해나가야 하는 생활인이에요. 앞으로 봉사차원으로만 쭉 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학교 밖 안전망, 사회가 함께 책임져주길

 지역아동센터 종사자 월평균 급여 현황
ⓒ 전지교협

관련사진보기


 지역아동센터 주간 운영일수 및 하루 운영시간
ⓒ 전지교협

관련사진보기


전지교협 윤혜경 준비위원은 "기존 종사자들도 어려운 센터여건에 하나 둘 발걸음을 돌리고 대학과 평생교육원 등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사람 역시 우리들의 생활을 보고 이 길을 포기한다"며 "이제는 학교 밖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로서 당당하게 존중받고 싶다"고 호소했다.

윤 위원은 얼마 전 학부모가 한 이야기를 꺼냈다.

"센터가 있어서 아이를 맡기고 늦게까지 안심하고 일을 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그런데 아이를 데려가면서 선생님의 힘든 모습을 봤어요. 처음엔 몸만 힘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낮은 임금과 처우 속에서 일한 줄은 정말 몰랐어요."

윤 위원은 "이제는 학교 밖 안전망을 이 사회가 함께 책임져 주기를 요구 한다"며 "지역아동센터교사들이 온몸으로 바쳐왔던 그 그물망을 이제 사회가 함께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민선 정책기획팀장은 "지역아동센터교사의 97.2%가 대졸자임에 비해 평균 급여는 91만4598원이며 지역아동센터의 42%가 평균 10시간 이상을 운영하고 있어 2년 이상 일하는 경우가 드물다"며 "특히 교사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30~40대 기혼여성의 경우 가사와 자녀양육까지 책임져야 함을 고려하면 장시간 근무와 낮은 처우는 힘겨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행복한 교사가 행복한 아이들을 만들 수 있다는 마음으로 열악한 지역아동센터의 제반 여건을 개선시키는데 힘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모인 이들은 다음 주 서울시장 보궐선거 참여한 박원순, 나경원 두 후보 캠프에 처우개선비 지원 등 정책요구안을 전달한 이후 18일 '교사행동의 날'을 진행한다. 11월 중순에는 전국지역아동센터교사협의회준비위원회 출범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태그:#전지교협, #지역아동센터, #서울시 보육, #방과후
댓글

노동자의 눈으로 본 세상, 그 속엔 새로운 미래가 담깁니다. 월간 <노동세상>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