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튀니지와 이집트 시민혁명 이후 바레인, 리비아, 예멘 등 10개 아랍독재국가에서 민주화 시위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2월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 인근에서 '대학생 나눔문화' 소속 회원들이 아랍권 민주화를 지지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 대학생 나눔문화, 아랍 민주화 지지 시위 튀니지와 이집트 시민혁명 이후 바레인, 리비아, 예멘 등 10개 아랍독재국가에서 민주화 시위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2월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 인근에서 '대학생 나눔문화' 소속 회원들이 아랍권 민주화를 지지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2011년은 유례 없는 세계혁명의 해로 기록될 것 같다. 올 들어 세계 전역에서 기존 체제에 대한 저항과 새로운 질서 수립을 요구하는 대중행동이 용솟고 있기 때문이다.

혁명의 바람은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재스민 색깔을 띠고 1월 초에 처음 일어났다. 대학 졸업 후 채소장사를 하던 젊은이가 경찰 탄압에 항의하여 분신한 것을 계기로 대대적 저항이 일어나더니 대통령이 쫓겨나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재스민 혁명에 이어 이집트에서 타르히르 광장 시위가 벌어져 30년 넘게 권좌를 차지해온 무바라크 대통령을 하야시켰고, 리비아에서는 내전으로 40년 독재자 가다피가 축출되었다. 그뿐 아니다. 바레인과 알제리에서도 정권에 도전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특히 예멘과 시리아에서는 수백, 수천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대중들의 저항이 그치지 않는다.

이번 '아랍의 봄'은 그동안 이 지역에서 일어난 소요들과는 근본적으로 양상이 다르다. 과거 중동에서 일어난 대중행동은 이슬람 근본주의와 같은 종교적 성격이 강했다면, 이번의 집단행동은 지배세력이 추진해온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저항으로서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성격을 띤다. 튀니지에서 재스민 혁명을 촉발시켜 '아랍의 봄' 바람을 불러일으킨 26세 청년 모하메드 보우아치치가 분신 도중 외친 구호는 "가난을 끝내라, 실업을 끝내라!"였다.

'재스민 빛' 아랍의 '봄바람', 유럽을 거쳐 전 세계로

2011년이 혁명의 해로 보이는 것은 아랍에서 일어난 혁명의 바람이 이제 전 세계로 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유로존에서도 대중행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유럽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에 먼저 반기를 든 것은 구제금융을 받고 긴축재정의 압박에 시달리는 그리스 대중들이다. 비슷한 경제위기에 처한 스페인에서도 '분노한 사람들'이 일어나서 수도 마드리드의 광장을 몇 달 동안이나 점령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동안 대중적 항의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만 보이던 이스라엘에서도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대중시위가 계속 조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시위에 나온 한 이스라엘 젊은이는 "살기가 어렵다. 우리는 군대에도 가야 하고 노동도 해야 하고 세금도 많이 내야 한다. 그런데도 겨우 살기도 어려울 정도로 벌이가 없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신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불만과 저항은 태평양 건너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1970년대 초 피노체트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줄곧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쳐온 칠레에서 대학생들이 늘어만 나는 교육비 삭감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의 투쟁은 한국의 대학생들이 지금 일으키고 있는 반값등록금 투쟁을 상기시킨다. 칠레 학생들의 불만은 "5년 공부하고 나면 15년에 걸쳐 갚아야" 하고, "공부 하려면 복권이라도 사야 할" 형편 때문에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혁명의 불씨가 아랍의 독재국가들, 유럽의 빈곤국, 남아메리카의 문제(?)국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영국과 미국 등 오늘날 세계자본주의 질서를 주도하고 있는 국가들에서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불만이 폭발적으로, 조직적으로 터져나오는 중이다.

대중의 불만이 가장 폭력적으로 드러난 것은 9월 초에 일어난 영국의 청소년 폭동일 것이다. 당시 런던을 비롯한 다수 도시에서 청소년들이 사나흘간 약탈과 방화를 일삼은 것은 금융자산가들에게는 혜택을 주면서 자신들이 가곤 하는 문화센터 등은 폐쇄해버리는 영국의 지배질서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었다고 봐야 한다.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 15일 오후 "우리는 99%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뉴욕 맨해튼 번화가인 타임스퀘어까지 행진했다.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 15일 오후 "우리는 99%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뉴욕 맨해튼 번화가인 타임스퀘어까지 행진했다.
ⓒ 최경준

관련사진보기


세계자본주의의 '동요기'... '나비의 춤'을 출 때다

하지만 2011년이 진정 혁명의 해라는 실감이 나는 것은 무엇보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사태들 때문이다. 사실 튀니지와 이집트 등지에 불기 시작한 혁명의 봄바람이 가장 먼저 닿은 비아랍권 나라는 미국이었다. 위스콘신 주에서 공화당 출신 신임 주지사가 공공부문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 2월 때로는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주의사당을 점거하는 집단행동을 감행했던 것이다.

최근에 들어와서 미국에서는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움직임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조짐이 보인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월가 점령' 운동을 보면서 "아,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지난 2월의 위스콘신 주 사태가 그 주만의 문제로 끝났다면, 이번 '월가 점령' 운동은 자본주의 헤게모니 국가 미국의 심장부 뉴욕의 월가만이 아니라 미국 전역으로, 아니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세계혁명의 들불로 바뀌고 있다. 

혁명의 불길은 한국도 비껴가지 않았다. 김진숙이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벌인 고공투쟁이 희망버스의 집결을 일구어냈고, 반값등록금 투쟁이 대학생들을 거리로 모으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 15일, 여의도 금융가와 서울시청 광장에서 '월가 점령' 운동과의 접선이 이루어졌다. 한국도 세계혁명의 동력학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체계는 안정기와 동요기를 갖는다고 한다. 안정기의 체계는 여간한 충격에도 끄떡하지 않는다. 40년 전에도 68혁명이라는 세계혁명이 일어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세계자본주의 체계가 아직은 안정기에 있었고, 68혁명도 그래서 실패했다. 지금은 이 체계가 극심한 동요를 맞고 있는 시점이다. 동요를 하게 되면 거대한 체계라 해도 작은 충격만으로 해체될 수 있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가 미국 발 금융위기로, 유로존 위기로 이어지고 있는 지금이 바로 그런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약소해 보이는 행동도 커다란 영향력을 갖는다. 베이징의 나비가 추는 춤이 뉴욕의 날씨를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혁명의 계곡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나비의 춤'을 출 때가 되었다.

덧붙이는 글 | 강내희 기자는 중앙대 영문학과 교수입니다.



태그:#월가 점령, #강내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