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오는 주말 오후, 집에 계시는 분들 많으실 듯하네요. 할 것도 딱히 없다 보니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틀면 전부 식상한 드라마뿐이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흘러 시장기가 슬슬 밀려들죠. 주방에 가봐야 별다른 것도 없는데 냉장고는 자꾸 열어보게 되고요. 이렇게 몸도 마음도 눅진한 주말에는 멸치로 국물 낸 수제비, 대청마루에서 어머니가 열심히 밀어 만들어주신 칼국수, 유부 한 조각에 쑥갓 살짝 올린 우동이 너무 간절하죠. 아차차! 하나 더 있네요. 이런 날 꼭 먹어야 할 음식으로 완당도 빼놓을 수가 없다니까요.
완당은 '구름을 삼킨다'는 의미를 가진 중국음식 '운탄'(雲呑)에서 기원했습니다. 이제는 부산의 명물로 자리 잡은 완당은 간단히 말하자면 만둣국입니다. 그런데 그 만두가 조금 특이한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얇게 만두피를 빚어 안에다 쥐똥만큼 만두소를 넣고 휘리릭 쥐어 만두를 빚은 후, 육수에다 넣어 끓인 것이 바로 완당입니다.
만두가 작은데다가 피가 굉장히 얇아서 국수 먹듯이 후루룩 소리 내어 먹는 것이 특징이고, 이때 만두피 자락이 입천장에 가닿는 느낌이 꽤 식감을 자극합니다. 야들야들, 후들후들한 만두피는 씹을 새도 없이 목구멍 안으로 훌쩍 넘어가버려, 그 매력을 아는 이들이 단골로 찾는 완당. 어느덧 60여 년의 세월과 함께 부산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중국인들이 아침식사로 즐기는 완당은 일본인들에 의해 더 세련되게 발전했다 합니다. 그 이름도 나라와 지역마다 다 다른데, 중국 북동쪽에서는 '훈툰'이라 하고, 중국 광동 쪽에서는 '완탐', 일본 오사카 쪽에선 '완탐멘'이라 부릅니다. 그러니 부산의 완당은 중국 광동 쪽 발음에 더 가까운 이름입니다. 만드는 법이나 맛은 어디건 다 비슷하지만 중국에서는 주로 새우나 미역 등으로 국물을 내고, 한국의 부산에서는 닭이나 돼지의 뼈를 이용합니다.
만두피의 얇은 두께 덕분에 텁텁한 맛도 느껴지지 않아서 먹기 편하고 소화도 잘되는 부산 완당. 고기육수인데도 무슨 비법을 썼는지 맑고 개운해서 해장 손님들이 이 음식을 많이 찾더군요. 입안에 들어가는 순간 사르르 녹아 없어지기에 노인분들도 많이 찾습니다. 완당 하나만 먹으면 근기가 없을까봐 곁들여서 고기덮밥과 초밥을 함께 먹기도 합니다. 비 오는 주말 오후, 뜨끈한 완당 한 그릇에 몸도 마음도 쉬고 싶지만, 그저 지난 사진만 보며 침 삼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