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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일 개막했던 2011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23일 막을 내립니다. 올해 4회째를 맞은 이번 전시의 주제는 '도가도비상도圖可圖非常圖, d=D≠d, design is design is not design 디자인이 디자인이면 디자인이 아니다'입니다. 철학적 레토릭(rhetoric)의 이 주제문은 노자 도덕경의 첫 문구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를 차용한 것입니다. 

'도라고 칭하는 것이 다 영원한 도가 아니며, 이름하는 것이 다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라는 문장의 길 도(道)를 그림 도(圖)로 바꾼 것입니다. 그림 도(圖)는 사각 틀 속에 마을을 그리는 것이 근원적인 의미라고 합니다. 실용(實用), 즉 디자인의 효용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노자 도덕경의 문구중 道可道非常道의 道를 圖로 치환한 주제문에도 디자인적 센스가 엿보입니다.
 노자 도덕경의 문구중 道可道非常道의 道를 圖로 치환한 주제문에도 디자인적 센스가 엿보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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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총감독은 파주출판도시의 건축코디네이터를 맡았던 건축가 승효상과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북경태생의 설치예술가 겸 건축가인 아이 웨이웨이Ai Weiwei가 공동으로 수행했습니다.

올해도 중외공원의 비엔날레관을 주 사이트로 광주 시가 10곳에 폴리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번의 전시구성은 전시주제를 설치, 미디어, 그래픽, 조경, 건축, 공연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한 '주제전Thematic' 지난 백년간 디자인을 견인한 100개의 이름을 선정한 '유명Named', 우리 주변 일상의 사물과 환경을 디자인적 오브제로 해석하는 관객 참여형 전시인 '무명Un-Named', 옛 읍성터의 흔적을 찾아 역사를 의식 속으로 끌어내어 세계 유명 건축가 및 디자이너에게 작은 공공건축물(Folly)의 설치를 의뢰한 '장소/Gwangju Follies',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낸 커뮤니티를 소개하는 '커뮤니티Communities', 비엔날레 전시 공간 자체를 복합적인 도시환경으로 해석한 '비엔날레 시티The Biennale City', 이번행사와 관련한 담론인 워크샵과 심포지엄의 '아카데미Academy' 등 7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졌습니다. 총 44개국 130여 명의 디자이너와 73개 기업의 참여로 130여개 작품이 출품되었습니다.

각 섹션별로 9명의 큐레이터가 기획을 맡았으면 그중에 7명이 건축가입니다. 모티프원을 설계한 조민석건축가가 안토니 폰테노와 함께 '유명Named'를 맡았습니다.

광주비엔날레와 광주디자인비엔날레

헤이리 주민들은 주민회의 주체로 일년에 두 차례 문화와 역사의 현장을 탐방하는 행사를 갖습니다. 작년 가을에는 '원주와 박경리'의 문학탐방, 올 봄에는 '파주와 역사현장'을 탐방한데이어 이번에는 광주의 디자인비엔날레를 그 대상으로 했습니다.

헤이리에서 광주까지 360km를 넘는 먼 거리 탐방이므로 아침 6시 30분에 서둘러 출발했습니다. 황금빛 아랫녘 들들도 이제 군데군데 추수를 끝내고 새로운 대지의 디자인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헤이리의 몇몇 열정적인 이웃들은 지난 6월 13일, 직접 광주를 방문해서 광주비엔날레전시관에서 이 재단의 조인호 정책연구실장님을 직접 뵙고 재단의 결성과 운영, 조직체계와 예산, 전시의 기획과 집행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대화를 나눈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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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현대미술축제인 광주비엔날레는 1995년 창설되었고 작년에 8회째로 개최되었습니다. 광복50주년과 광주의 문화예술전통, 5.18광주민중항쟁으로 비롯된 광주의 민주정신을 새로운 문화적 가치로 승화하기 위한 이 비엔날레가 한국과 아시아에서 굳건한 브랜드로 성장했지만 실제적인 광주 도시의 변화를 역동적으로 이끄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절감했습니다.

180억이 넘게 예산이 투입된 비엔날레관의 신축과 기구축된 인프라와 인력의 효율적인 활용과 광주 도시환경과 디자인산업의 실제적인 도움을 위해 2005년 디자인비엔날레가 새롭게 창설되었습니다. 이에는 단연코 이미 국제적 인지도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창설 10년째를 맞은 광주비엔날레가 바탕이 되었습니다. 이 두 행사는 2000년 제3회 행사부터 짝수 년으로 바뀐 광주비엔날레와 홀수년에 개회되는 디자인비엔날레로 정착되었습니다.

죽음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도축장디자인

광주의 거리 곳곳에서는 먼저 세계김치문화축제의 배너와 현수막이 우리를 맞았다. 비엔날레관 입구의 중외공원에서는 수많은 김치판매 부스들이 공원내 거리를 따라 도열해  있고 이 행사의 공연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김장철을 맞아 많은 시민들이 각 부스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 김치문화축제는 광주비엔날레의 창설과 비슷한 시기인 1994년에 창설되어 18번째로 개최되는 행사였습니다. 맛의 고장 광주를 모토로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광주는 빛의 도시, 전통문화도시, 민주와 인권의 도시, 예술의 도시, 맛의 도시 등 여러 겹의 도시 이미지가 이방인인 제게도 중첩되어 다가왔습니다. 자칫 도시의 정체성이 혼란스러워질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뚜렷하게 도시의 정체성을 각인할 주제가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도슨트의 안내를 따라 각 주제관들을 돌았습니다. 도슨트의 설명이 각 작품들의 의도를 정의내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자칫 디자인 속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관람자의 자유로운 작품에 대한 접근과 상상을 제한할 수 있겠다는 염려가 되었습니다. 도슨트의 해설은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만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거나 감상자들에게 또 다른 창조적인 감상이 가능한 여지를 남기는 방식일 필요가 이겠다 싶습니다.

130여개가 넘는 작품을 단지 몇시간안에 감상을 마쳐야하는 아쉬움이 적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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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신체의 조건이 모두 다른 세계의 다양한 종목의 운동선수들의 실물크기 사진을 30미터 길이의 벽에 나열한 하워드 샤츠와 베벌리 온트타인의 운동선수 신체디자인, 명나라 도자기의 꽃무늬 디자인의 기법을 차용한 전통의 방법으로 현대건축물의 비계나 내부의 배관파이프처럼 직교하게 배치한 아이 웨이웨이의 필드, 사용자가 페달을 작동해서 구동할 수 있는 친환경적 설비인 안지용과 이상화의 바이크행어, 무엇보다도 인도적 도축장의 설계가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콜로라도 주립대학교 동물학과 교수인 템플 그랜든은 자폐아였습니다. 그녀는 희생적인 어머니와 주변의 도움으로 '모자라는 게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자각하도록 도와 결국 동물학 박사가 될 수 있게 했고, 그녀는 동물의 행태학에 관심을 갖고 인간의 필요에 의해 불가피하게 도축되지만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스트레스를 감소할 수 있는 농장관리시설과 도축시스템을 설계하였습니다. 현재 전미 도축장의 50% 이상이 그녀의 설계방식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감각기관을 가진 사람이 배려하지 못한 도축장으로 들어가는 육우들의 감정을 읽고 그들의 스트레스를 줄여줄 생각을 한 자폐아였던 템플 그랜든. 그러므로 자폐를 비롯한 우리가 장애자로 부르는 모든 사람들은 ‘모자란 사람이 아니라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임에 분명합니다.
 정상적인 감각기관을 가진 사람이 배려하지 못한 도축장으로 들어가는 육우들의 감정을 읽고 그들의 스트레스를 줄여줄 생각을 한 자폐아였던 템플 그랜든. 그러므로 자폐를 비롯한 우리가 장애자로 부르는 모든 사람들은 ‘모자란 사람이 아니라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임에 분명합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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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오만과 디자인의 겸손

크게 대비되는 2개의 디자인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하나는 일본의 한 건설회사가 작년에 발표한 인공섬입니다. 2025년을 목표로 태평양 바다 한 가운데 띄우겠다는 프로젝트, 그린 플롯(Green Float)입니다.

일본 건설사 시미즈(Shimizu)는  친환경 녹색 기술을 이용해 탄소중립도시로 1만~5만 명의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인공섬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해일이나 낙뢰로 부터 이 수상도시를 방어할 수 있는 여러 기술이 동원된다는 이 디자인은 실현이 된다하더라도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자만과 오만으로 비칩니다. 태풍과 지진에 진력난 사람들의 상상력 실험으로 끝났으면 하는 바람을 감출 수 없습니다.

 거대한 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 했던 인간 오만의 상징인 바벨탑. 기쁨보다는 우려를 자아내게 만드는 이 '그린 플롯' 디자인은 바벨탑을 쌓고자하는 욕망을 여전히 버리고 못한 인간의 욕망을 증명합니다.
 거대한 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 했던 인간 오만의 상징인 바벨탑. 기쁨보다는 우려를 자아내게 만드는 이 '그린 플롯' 디자인은 바벨탑을 쌓고자하는 욕망을 여전히 버리고 못한 인간의 욕망을 증명합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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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는 지난 세월에 지어진 단층의 미니멀한 공간의 사진전시입니다. 쾌적하고 효율적인 공간의 효용을 보여줍니다.

 구시대의 이 단출한 주택이 지금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구시대의 이 단출한 주택이 지금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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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밀한 현재의 환경을 보여주는 홍콩새장 아파트의 사진과 전시장을 벗어나는 길에 눈을 사로잡은 컵에 꽂힌 비닐꽃 몇송이. 버려진 과자봉지와 검은 비닐봉지를 꽃송이로 접었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지구자원을 독점하고 남용해온 인간의 디자인적 만용에 대한 반성처럼 보였습니다.

 홍콩의 비좁은 땅과 높은 물가가 고스란히 주거환경에 반영된 홍콩의 새장 아파트
 홍콩의 비좁은 땅과 높은 물가가 고스란히 주거환경에 반영된 홍콩의 새장 아파트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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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게 이번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방문에서 가장 가슴에 파문으로 남은 폐비닐 꽃송이.
 제게 이번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방문에서 가장 가슴에 파문으로 남은 폐비닐 꽃송이.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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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우리 세대의 사후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마지막 세대인 것처럼 지구의 모든 자원을 고갈시키는 방법의 디자인에 대한 반성을 '관디자인'이 촉구하는 듯싶었습니다. 아프리카 가나에서는 자신이 평소 열망하던 것을 관으로 주문합니다.

물고기, 비행기, 자동차, 휴대폰 등 다양한 모양이 주문되고 디자인됩니다. 이번에 전시된 관은 열대어 아기관 하나와 '잎새주' 소주병 관입니다. 과음이 원인된 죽음의 영혼을 이 관이 영면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요? 어떤 디자인이 낭비벽심한 인간의 욕망을 잠재울 수 있을까요?

 가나 사람들의 관 디자인에 반영된 소주병 관.
 가나 사람들의 관 디자인에 반영된 소주병 관.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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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전시품의 고장이나 파손이 그것입니다. 특히 심성보, 유성준의 '광주에서 걸려온 전화'라는 작품의 경우 사운드와 청각만으로 광주의 시간과 공간을 담아낸 작품입니다. 사운드로 감상해야하는 이 작품은 정작 전화 부스만 덩그마니 서있고 소리의 감상 채널인 수화기는 3대 모두 고장나 있었습니다. 소리디자인에서 소리 없는 작품은 전시장에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 것입니다.

 소리가 사라진 소리디자인.
 소리가 사라진 소리디자인.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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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빛과 그림자

연륜을 쌓아오면서 대외적 입지를 구축한 광주비엔날레와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두 행사가 빛고을 광주에 빛만을 던진 것은 아닙니다. 45억을 들인 올해의 디자인 비엔날레가 관람객의 70%가 광주전남 지역민으로 세계화를 지향한 이번 행사가 외국인의 관람객 1% 미만의 '안방잔치'라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물론 횟수가 거듭될수록 외연이 확장되는 성장을 도모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비엔날레를 통한 계량되지 않는 여러 성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두 행사를 통해 광주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갖게 된 광주에 대한 인상은 충분히 가치 있는 성과입니다.

 디자인은 창조주의 창조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행위입니다. 당신은 과연 창조주의 뜻을 거역하지 않는 Good Designer인가요?
 디자인은 창조주의 창조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행위입니다. 당신은 과연 창조주의 뜻을 거역하지 않는 Good Designer인가요?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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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때문에 광주의 도시 재생을 염두에 둔 광주폴리의 사이트를 방문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대신 함께했던 아트디렉터 김명자선생님의 안내로 방문한 조선대학교미술관의 '김보현·실비아 올드 미술관'의 방문이 그 아쉬움을 절반으로 줄여주었습니다.

2004년 광주시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조선대학교 본관의 리모델링을 거쳐 올 9월에 개관한 김보현미술관은 해방직후 좌우익의 이념의 대립속에서 고초를 겪다가 미국 뉴욕에 정착해 동서양 사상을 조화시켜 현대회화를 한 차원 높이 올린 거장으로 칭송되는 김보현화백과 김화백의 부인인 실비아 올드 여사의 작품을 상설전시하고 있습니다.

1946년 조선대학교 예술학과를 창립한 첫 전임교수의 인연으로 이 대학에 310점의 작품이 기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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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버몬트의 시골에서 30만 평이나 되는 정원을 가꾸며 사셨던 타샤 튜더는 92세로 돌아가시기 전 내가 3년만 더 공부하면 장미에 전문가가 될 수 있었을 거라고 말했답니다. 올해 95세의 김보현 화백께서는 60년대의 추상표현주의, 70년대의 극사실주의, 80년대의 자유형상 작품을 해 오신 분으로 앞으로 10년 계획으로 또다시 새로운 화풍의 작품에 정진하고 계신답니다. 모두들 돌아가실 생각은 안하세요."

김명자선생님의 유머에 모두가 폭소를 터트렸지만 우리 모두의 분발을 촉구하는 죽비의 일갈이었습니다.

밤 10시 우리는 다시 출발지점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이웃들과 함께한 온전한 하루는 작품의 감상만큼이나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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