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산 밑 논배미에도 가을 햇살이 머무릅니다.
 산 밑 논배미에도 가을 햇살이 머무릅니다.
ⓒ 이승숙

관련사진보기


날이 제법 선득해졌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집 안에서 옹송그리며 한나절을 보내고 말았다. 문득 시계를 보니 오전 시간이 거의 지나가고 있지 뭔가.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는 자괴심이 들었다. 이렇게 하루를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입은 옷 그대로 밖으로 나섰다.

오늘은 '강화나들길'의 4코스를 한번 걸어보리라. '해가 지는 마을 길'이란 이름이 붙어있는 4코스는 강화군 양도면에 있는 '가릉'에서 출발해서 하일리를 지나 건평리를 거쳐 외포리까지 가는 길이다. 가는 중간에 조선 중엽의 학자인 하곡 정재두 선생의 묘소와 조선 말엽의 올곧은 선비였던 영재 이건창의 묘소도 지난다. 그 분들이 살았던 시대에서 학문을 익힌다는 것은 곧 과거 시험을 거쳐 주류 사회로 들어가기 위함이었는데 그 분들은 당시에 환영받지 못했던 양명학을 공부했다. 과연 양명학 속에는 어떤 정신이 들어 있길래 비주류의 길일 것을 알면서도 공부를 했을까.

집을 나서자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한다는 생각에 뿌듯하기까지 했다. 사실 걷는 행위는 스스로 의미를 두지 않으면 지루하고 자칫 고통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의미를 부여하고 나서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고 주변의 풍경들 또한 새롭기까지 했다. 나는 단순히 즐기기 위해 길을 걷기보다는 이 길을 걸을 사람들을 위해 길 상태를 점검하고 또 미비한 점들을 알아내기 위해 나선 길이 아닌가.

꼭 있어야 할 자리에서 길을 알려주는 나들길 안내 표지.
 꼭 있어야 할 자리에서 길을 알려주는 나들길 안내 표지.
ⓒ 이승숙

관련사진보기


가릉 근처에 있는 탑재 삼거리를 향했다. 간밤에 기온이 떨어졌던 모양인지 고구마 잎이 꺼멓게 풀이 죽어 있었다. 고춧잎들도 더러 시들어 있는 게 보인다. 지난 밤에 무서리가 내렸나 보았다. 마치 가을이 줄달음질치며 지나가고 있는 듯 했다.

탑재 삼거리에서 가릉주차장을 향해 올라간다. 군데군데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는 길안내 리본이 바람에 팔랑인다. 노랑과 진녹색의 색상 배합이 기품이 있어 보인다. 길을 안내하는 목적에서 보자면 진녹색은 썩 바람직한 색깔이 아닐 수도 있다. 녹음이 짙은 여름날의 산 속에서는 초록의 물결에 섞여서 선뜻 눈에 띄지 않을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잎을 다 떨어뜨린 겨울의 산에서는 또 다를 터이다. 눈이라도 내린 날이면 진녹색 리본은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낼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니 지금 자신의 존재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고 서둘러 탓하지 말고 믿고 기다려주는 여유가 필요할 듯싶었다.

가릉은 고려 원조의 왕비인 순경태후의 무덤이다. 가릉을 마주보고 오른쪽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가면 강화나들길의 3코스를 거꾸로 걷는 길이 되고 왼편의 길을 따라가면 4코스가 시작된다. 말하자면 가릉은 3코스의 마지막 지점인 동시에 4코스의 시작점이 되는 셈이다.

가릉 인근에 사는 나는 지레짐작으로 이미 길을 다 알고 있는 양 생각했다. 가릉 앞의 도로로 차를 몰고 숱하게 다녔으니 그리 생각해도 지나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오산이었다. 차가 다니는 길과 산 속 길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숲 속으로 한 발 들여놓자 산 밑 세상과는 다른 세계가 펼쳐졌고, 나는 호기심과 기대감에 가슴이 설레었다.

안으로 물을 품고 있을 듯합니다.
 안으로 물을 품고 있을 듯합니다.
ⓒ 이승숙

관련사진보기


나들길을 걸을 때면 전지가위를 들고 간다. 찔레나 아까시 또는 산초나무 같이 날카로운 가시가 있는 나뭇가지들이 길 쪽으로 뻗어있으면 전지해주려고 챙겨들고 다닌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로 길은 깔끔했다. 절로 감탄이 나왔다. 이 정도로 말끔하게 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돌봤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만 주변 환경은 시시때때로 변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길이 오늘 한 차례 소낙비가 지나가고 나면 깊게 물고랑이 나기도 한다. 또 바람에 뿌리 채 뽑힌 나무가 길을 막고 있을 수도 있다. 눈이 내리면 아예 길이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자연은 늘 그대로인 것 같지만 한 때 한 순간도 그대로 있지 않고 늘 변하고 진화한다. 풀과 나무는 또 어떤가. 살아있는 생명체는 끊임없이 세력을 넓히는 게 제 본령이다. 그것을 인위적으로 막아본들 오래가지 않는다. 얼마동안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보면 풀과 나무는 어느새 왕성하게 팔을 벌려 주변을 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니 이처럼 반듯하고 말끔한 상태의 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손길이 있었다는 징표다.

호젓하고 오붓한 산길
 호젓하고 오붓한 산길
ⓒ 이승숙

관련사진보기


갈림길이 나타날 때마다 작은 안내판이 가야 할 길을 가르쳐준다. 손바닥 두 개를 합친 것 정도 밖에 되지 않을 듯한 그 나무판은 별스럽게 나대지도 않는다. 그 엄전한 품새가 새삼 마음에 들어온다. 꼭 있어야 할 자리에 반드시 있는 그 천연함을 보며 나는 과연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서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그리 깊은 산도 아닌데 마치 깊은 산중에 있는 듯 사위가 고요하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산 밑에는 차들이 오가는 길이 있지만 지금 이 산 속 오솔길에는 적요함만이 감돈다. 우리 집 근처에 이토록 고요하고 안정된 곳이 있었다니. 새삼 그동안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게 진정 아는 것이었는지 의문마저 든다. 나는 그동안 우리 집 근처를 다 안다고 생각했다. 앞 들판은 물론이고 집 뒤 산도 숱하게 오르내렸으니 나는 다 아는 양 생각했다. 그러나 한 발만 뒤로 물러서자 그 곳은 내가 모르는 딴 세계였다. 이처럼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사실 잘 모르는 것은 아닐까. 겉모습만 보고 다 안다고 생각하며 건성으로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나는 겸손해졌다.

길을 걸어가노라니 이승을 떠나 영원으로 간 분들이 쉬고 있는 묘소들이 더러 보인다. 한 자락을 돌면 산소가 보이고 또 한 모퉁이를 돌면 봉긋하게 봉분이 솟아있다. 어쩐지 길을 걷는 내내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듯이 느껴졌는데 이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나지막하게 앉아있는 봉분들이 품어주는 기운 덕분이었던 모양이다. 산 자와 죽은 자는 처한 곳이 다르지만 지향하는 바는 별다르지 않을 터이다. 바로 평온함이 양자가 바라는 바일 것이다. 이 길을 따라 걷는 내내 고요함과 평온함에 젖을 수 있었으니, 나들길 4코스는 오롯이 자신 속으로 들어가는 평온의 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가을날의 노란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내려온다.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 두어 시간을 보냈다. 길은 끝이 없고 시간은 마음먹기에 따라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니 나는 또 찾아오리라. 그 때 이 길은 또 어떤 모습으로 나를 품어줄까. 기대와 설레는 마음을 안고 온갖 소리가 떠다니는 세상 속으로 다시 내려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자신 속으로 들어갑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자신 속으로 들어갑니다.
ⓒ 이승숙

관련사진보기



태그:#강화나들길, #해가 지는 마을길, #강화나들길 4코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