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면 야자를 못하게 될 텐데 놀기 좋아하는 우리 얘는 어쩌죠?""두발이 자유화되면 머리 손질하고 염색하느라 공부에 소홀하게 될 텐데 걱정이에요.""집에만 오면 게임만 하려들 텐데, 그 꼴 안 보려면 학원과 독서실을 보낼 수밖에 없어요.""혈기왕성한 얘들한테 갑자기 시간을 주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허구헌날 딴 생각만 하게 될 테니 부모로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에요."학생인권조례의 본격적 시행을 앞두고 이따금 학부모들이 상담하자고 전화를 걸어 하소연하는 내용들이다. 온통 '불안해서 못 견디겠다'는 툰데, 그럴 때마다 그들을 달래고 설득하는 일에 혼이 쏙 빠질 정도다. 체벌을 금지시켜 좋긴 한데, 그렇다고 학부모로서 학생인권조례를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는 반응이다.
교사로서 들려줄 말은 뻔하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오해이고, 절대 해될 일은 없을 거라며 그들에게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일단 불안감을 해소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화기에 대고 조례 제정의 취지와 의의 따위를 일일이 설명할 수 없는 노릇인데다, 설령 그렇게 한다고 해도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학부모들을 납득시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명문대 진학 숫자를 보람으로 여기는 교사들
"학교에서 하루 종일 딱딱한 의자에 앉아 책과 씨름하는 가엾은 아이들에게 되레 가정은 훨씬 더 절실한 교육 터전입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주구장창 게임만 한다고 나무라기 전에 학교로부터 되찾은 여유 시간에 아이들이 다른 걸 해볼 수 있도록 배경을 만들어주세요. 자녀가 대체 뭘 잘 하는지, 또 뭘 경험해보고 싶은지를 부모로서 함께 대화하고 곁에서 지켜봐주세요. 그게 진짜 교육이고, 부모의 당연한 책무입니다."
자녀가 집에서 잠시라도 빈둥거리는 꼴을 도저히 못 보겠다는 학부모들에게 교사로서 진심을 담아 건네는 말이지만, 시큰둥한 그들을 상대로 반복해서 녹음기 틀어주는 듯한 느낌이 들 지경이다. 이내 학부모들의 천편일률적인 반응에 주제넘게 괜한 소리를 했다는 후회, 또한 늘 하게 된다.
"선생님 말씀 틀린 것 하나 없지만, 어디 현실이 그렇습니까. 그렇게 해줄 수 있는 부모가 우리나라에 과연 몇이나 있겠어요. 요즘 부모들, 마음은 굴뚝같겠지만, 그럴 시간도, 경제적 여유도 없어요. 현실적으로 학교가 학부모들의 처지를 십분 헤아려 그걸 해주는 수밖에 없죠. 예를 들어 학생인권조례다 뭐다 해서, 만약 학교가 야자를 하지 않고 아이들을 밖으로 내친다면, 다시 학원이나 독서실에 보낼 밖에요."대다수의 학부모와 학생들은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을 학교 안팎에서 행해지는 모든 교육 행위의 목표로 삼고 있다. 심지어 제자들의 명문대 진학 숫자를 보람으로 여기며 뿌듯해하는 교사들이 허다하다. 이럴진대 학생인권조례 제정의 취지 자체가 교육현장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훼손될 공산이 크다. 야자에 관한 학부모들과의 갈등, 그건 비근한 예일 뿐이다.
기실 야자를 강제하지 못하도록 한 건, 학생들의 선택권 보장 차원에서 입안되었다기보다 아이들의 기본적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장치이다. 이른 아침부터 자정 가까운 시간까지 오로지 책과 씨름하게 만드는 건 공부가 아니라 노동이며, 교육이 아니라 학대라는 인식에서이며, 방과 후에 동아리 활동도 하고, 영화도 보고, 가족들과 밥상머리에서 도란도란 대화도 나누는 일상이 훨씬 더 소중하다는 공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밤에는 쉬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아이들에게 부디 하루 중 잠시라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있는 짬을 달라고 간청하면, 학부모들은 이를 '사치'라며 단박에 말을 잘라버린다. 학교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장이 돼버린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도무지 가당키나 한 얘기냐는 것이다. 아주 가끔씩은 그랬다가 아이가 원하는 대학에 못 가면 책임질 거냐는 폭언도 감수해야 한다.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는 유치원생에게 영어를 공부시키는 것도, 초등학생에게 밤 10시가 다 되도록 '학원 뺑뺑이'를 돌리는 것도, 중학생에게 고등학교 과정을 선행학습을 시키는 것도, 고등학교에서 야자가 사라지면 아이들이 비뚤어질 것이라고 여기는 것 역시도 모두 학부모들의 뼛속 깊이 박혀있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들의 눈에는 당신들의 자녀를 제외한 주변의 모든 아이들이 '엄친아', '엄친딸'들이다.
"너만 유별난 공부하니? 너만 고생해?"학부모의 불안감은 자녀들에게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릴 적부터 일상이 그들에게 철저하게 길들여진 탓이다. 수능을 앞둔 고3 수험생은 말할 것도 없고 고2만 돼도 토요일은 물론, 일요일에도 등교하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적잖다. 보충수업 받느라 불과 일주일도 채 안 되는 방학 기간을 불안해서 못 견뎌하는 아이들을 보노라면 정신적 질환이 의심될 정도다.
늦은 밤 교실 불빛 아래에서 공부하기는커녕 그냥 앉아있기조차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한 아이가 교무실을 찾아왔다. 멍한 눈으로 하릴없이 보내는 야자시간이 너무 아깝다며 차라리 서점 돌아다니며 읽고 싶은 책 찾아 읽어보고 몸이 약하니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면 바람을 얘기했다. 그런데, 문제는 부모님이 도무지 허락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너만 유별난 공부하니? 너만 고생해? 남들 하는 대로 그렇게 따라가면 된다. 친구들 그 늦은 밤까지 책과 씨름하고 있는데, 빈둥거리다 성적 떨어지면 나중엔 따라가기 정말 힘들어. 명문대에 가고 싶지 않아? 이렇게 엄마랑 말다툼하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네 친구들은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을 거야. 힘든 건 알지만 조금만 참아."어릴 적부터 공부하며 단 한시도 불안하지 않은 적 없었다는 그 아이는 부모의 표정과 말투를 흉내 내며 힘든 내색을 했다. 부모님이 사랑을 그렇게 표현하신 거라며 애써 위로했지만, 아이의 말 못할 고통이 전해져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이에게 100% 공감했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두둔하고 그의 부모를 뒷담화 할 수 없는 '끼인' 처지라 정말 괴로웠다.
언제부턴가 우리 교육은 서로의 불안을 자극하고, 타인의 불안을 이용해 벌어먹고 사는 난장판이 돼버렸다. 교과서 지식이 진정 쓸모가 있고 없고를 떠나 정규수업에다 보충수업까지 학교에서 배우고 또 배운 내용을 다시 학원에 가서 배우라고 종용하고, 야자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면 '대포자(대학 진학을 포기한 문제아)'로 낙인찍으며, 3년간은 죽었다 생각하라며 아이들에게 밤잠조차 마음 편히 재우지 않는, 우리 사회는 그런 곳이다.
그런 '협박'들은 아이들을 더욱 위축시켰다. 학교 울타리 밖의 삶을 아예 '죽음의 정글'로 여기며, 교과서나 수험서가 아닌 다른 책을 공부하는 것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대학을 가려는 이유를 물으면, 아직 자신의 꿈이 뭔지도 잘 모르는 아이들이 태반일진대, 단지 '다들 가기 때문'이라고 스스럼없이 답한다. 자신들을 그렇게 길들인 학부모들의 인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아이들 각자의 다양한 재능과 개성을 발현시킨다는 교육의 당위적 목표는 적어도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 끝 모를 불안감에 포박된 우리 교육은 '평균적'이고 '획일적'인 인간만을 대량생산해내는 체제다. 지금 아이들에게 '도전'과 '모험' 따위의 말은 위인전이나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단어지, 그들의 머릿속에선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부모들의 바람을 어릴 적부터 내면화시킨 탓일까. 학년초 아이들이 적어낸 장래희망조차 마치 사전에 또래 친구들과 입이라도 맞춘 듯 한결같이 변한다. 처음엔 판검사, 의사를 꿈꾸다 종국에는 공무원으로 낙착되는 과정이라니. 물론, 공무원이 '마지노선'이며 더 이상은 내려가지 않는다.
불빛 환한 고등학교, 항문외과의 수입원?학생인권조례가 본격 시행되면 강제적 야자가 학교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 과연 바람대로 이뤄질까. 학부모들의 '걱정'과 일부 교사들의 '완고함', 그리고 다른 친구들 대부분이 밤늦도록 불 밝히며 공부하고 있는 교실을 어떤 아이가 불안감을 떨쳐내고 유유히 걸어 나올 수 있을까.
학교가 '감옥'이고 되레 교문 밖이 '해방구'라는 인식과, 행복한 삶을 위한 참된 지식은 교과서가 아닌 다른 책에 있다는 '되바라진' 생각을 떠올리지 않는 한, 학생인권조례가 아니라 그 어떤 법률로 강제한다 해도 전국 고등학교 교실의 불빛은 쉽게 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일부에서 떠들어대는 것처럼,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했다고 할 일 다 했다는 식의 자축은 그래서 섣부르다. 고작 이제 첫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다.
밤 10시. 부쩍 차가워진 밤공기에 수능이 코앞임을 실감하게 되는 요즘, 오늘도 야자 하는 아이들로 고등학교 교실은 '불야성'이다. 대낮보다 더 환한 그 불빛 주변으로 한 병원의 초록색 십자가가 눈부시다. 대형 항문외과 병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들어 치질의 고통을 호소하는 아이들이 부쩍 늘었는데, 곳곳에 항문외과 병원이 성업 중인 이유를 알겠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넷 중 한 명이 치질을 앓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장기간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하는 자세와 운동 부족에 기인한 병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병원 입장에서 밤늦도록 불빛이 환한 고등학교가 환자를 끊임없이 공급해주는 수입원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많은 학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잠도 줄이고, 의자에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고통조차 견뎌내라 한다. 퀭한 눈의 아이들도 주위의 다른 친구들의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기꺼이 감내한다. 과연 이 아이들의 미래는 그들의 바람대로 진짜 장밋빛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