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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선은 다릅니다. 다를 것입니다."
"어찌 다를 것인가. 어떻게 다르게 할 것인가, 답을 해 보거라."

피 비린내 나는 '왕자의 난'을 두 번이나 일으키며 천하를 탐했던 선왕 방원(태종)의 앞을 젊은 임금 이도(세종)가 막아서자 방원이 답을 내놓으라며 다그친다. 스스로 손에 피를 묻히며 새 하늘을 열었던 방원은 마침내 천하를 거머쥐며 자신의 발 아래 만백성을 무릎 꿇렸지만, 여전히 손에서 칼을 놓지 못한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피로 얼룩진 선왕의 통치가 몸서리치게 싫었던 임금 이도는 자신의 조선은 다를 것이라며 호기롭게 맞선다. 하지만 "너의 조선은 어떤 조선이냐"는 선왕의 물음에 임금 이도는 끝내 답하지 못한다.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의 한 장면이다.

사흘 앞으로 다가온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방원의 질문이 머리를 맴돈다. 나 역시 묻고 싶다. '당신의 서울시, 당신의 대한민국은 어찌 다를 것인가.'

'박원순의 서울시'에는 안철수가 없다

박원순 야권통합 서울시장 후보가 24일 지지방문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박원순 야권통합 서울시장 후보가 24일 지지방문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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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안철수 신드롬'을 타고 박원순 후보가 야권 단일 후보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그의 서울시장 당선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며칠 사이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가 가히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왔고, 급기야 "내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떨어지면 안 원장도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박원순의 발언이 전해졌다. 앞뒤가 잘렸으니 정확한 말의 의도야 알 수 없지만 다급함이 담겨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짧은 기간 오르내리는 지지율 변화를 두고 어떤 이들은 한나라당과 나경원 측이 근거도 분명하지 않은 갖가지 루머들을 막무가내로 쏟아낸 탓이라고 풀이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따지고 보면 나경원 역시 부친의 사학 재단에 대한 감사 무마를 청탁했다는 굵직한 의혹이 제기되는 등 박원순 못지않게 도덕성에 흠집이 났다. 따라서 문제는 다른 곳에도 있다.

알다시피 박원순이 보이고 있는 40%가 넘는 지지율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장이 일으킨 바람으로부터 힘입은 바 크다. 이른바 '안철수 현상'이라 불리는 '정치 반란'이 박원순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상식과 정의가 돈과 권력 앞에서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지켜보던 우리의 평범한 이웃들이 책을 뒤적이고 강연장을 헤매며 해법을 찾다 결국 선거라는 공간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것이 '안철수 현상'의 실체다. 그리고 안철수 현상이 보여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폭발력도 놀랍지만 그것이 단지 몇 마디 말로 다른 인물에게 고스란히 옮겨간 점도 놀랍다. 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안철수가 박원순의 손을 잡아 주기 전까지 박원순의 지지율은 5% 정도에 머물렀다. 아마도 박원순이라는 인물이 가졌던 인지도가 대략 그쯤 되었을 것이다. 이는 그가 몸 담았던 '참여연대'나 '희망제작소', '아름다운 가게'에 대한 세상의 관심에도 못 미친다. 그만큼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고, 어쩌면 그 덕분에 안철수에 대한 지지를 고스란히 물려받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텁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채 막 산에서 내려온 듯한(실제로도 그랬지만) 그에게 안철수에게서 느꼈던 것과 같은, 기존 정치인에게서는 느낄 수 없던 무색·무취·무당파의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안철수의 이미지를 어렵지 않게 투영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눈에 비친 박원순의 모습일 뿐, 그의 실제 모습은 아니다. 박원순은 분명 안철수와 다르다.

알다시피 박원순이란 인물을 빼놓고는 대한민국의 시민운동사를 쓸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그는 안철수만큼이나 자기 색이 분명한 인물이다. 실제로 선거 운동이 시작되면서 박원순은 자신이 오랜 세월 '지역'에 관심을 두며 쌓아온 청사진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시민이 시장입니다"라며 자신의 몸에 밴 시민운동가의 언어로 이야기를 풀어가자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박원순의 서울시'가 자신이 안철수에게 기대했던 서울시의 모습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찌해야 할까.

'안철수의 대한민국'에 기대를 걸어도 될까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자. 너무 앞서가는 이야기지만 말이 나온 김에 '안철수의 대한민국'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과연 '안철수의 대한민국'에 기대를 걸어도 될까.

이 물음에 답하기에 앞서, '왜 안철수일까'라는 물음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왜 문재인이나 심상정, 또는 조국이 아니라 하필 안철수인가를 묻는 것이다. 왜 단 한 번도 대선 출마 의지를 뚜렷하게 밝힌 적 없는 그가 선거라는 정치 공간의 한 가운데서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느냐는 물음이다.

앞서 '안철수 현상'에 대해 '상식과 정의를 향한 평범한 사람들의 정치 반란'이라고 풀이했는데, 위의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안철수라는 인물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알다시피 그는 자신이 가진 탁월한 능력과 통찰력으로 부와 존경이라는 성공을 거머쥔 인물이다. 여기에 더해 그는 인간주의에 기반을 둔 따뜻한 감성을 지녔으며, 세대를 뛰어넘어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또 들을 수 있는 능력도 지녔다. 만일 시대정신이란 것을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다수가 공유·지향하는 이념, 또는 삶의 가치(욕망)'라고 정의한다면, 인간 안철수는 오늘날의 '시대정신과 가장 닮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우리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우리 시대의 멘토이자 가장 '닮고 싶은 인물'인 셈이다.

사실 비슷한 반란이 10여 년 전에도 일어난 적이 있다. 당시 그 중심에는 노무현이라는 걸출한 정치인이 있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이 일으킨 바람의 크기는 최근의 안철수 현상에 비쳐 봐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2002년 1월 당시 노무현은 지지율이 3.5% 밖에 안 되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정치인이었으나,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이라는 팬덤에 이어 개혁국민정당이라는 정당의 결성을 이끌어 내며 마침내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이른바 삼김시대가 막을 내린 뒤 대중이 처음으로 선택한 정치 지도자이기도 했다.

박원순 야권통합 서울시장 후보가 지난 23일 저녁 광화문 광장에서 거리유세를 벌이고 있다.
 박원순 야권통합 서울시장 후보가 지난 23일 저녁 광화문 광장에서 거리유세를 벌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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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의 극복과 참여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정치적 이상과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따뜻한 철학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는 안철수 못지않은 탁월한 능력과 통찰력 그리고 따뜻한 감성과 철학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안철수와는 달랐다. '멘토'이자 '닮고 싶은 인물'인 안철수와 달리 그는 처음부터 '믿고 따르고 싶은 정치 지도자'였다.

이렇듯 10여 년을 사이에 둔 두 현상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 차이는 반란을 일으켰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처지가 변한 탓이다. 지난 20여 년간 세계 경제를 불안하게 지탱해 온 자산 거품이 맥없이 무너지는 사이 한국 사회는 양극화라는 헤어 나오기 힘든 늪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고,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소박한 꿈을 지켜내는 것조차 벅찬 일이 돼버렸다. 이제 사람들은 막다른 골목에서 오로지 성공을 꿈꿀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이것이 안철수 현상을 일으킨 주요한 시대적 배경의 하나이며, 또한 '왜 안철수인가'에 대한 답이다.

'닮고 싶은 멘토'와 '따르고 싶은 정치 지도자'의 차이, 그것이 바로 안철수와 노무현의 차이이자 10년 만에 다시 맞닥뜨린 거대한 정치 반란을 지켜보면서도 그의 대한민국에 선뜻 기대를 걸지 못하는 이유다.

하지만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반드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걸었던 길을 되풀이하거나, 또 다른 노무현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10년 사이 세상은 변했고 이미 안철수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는 노무현에게는 없던 그 무엇을 가지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더불어 '닮고 싶은 인물'이 정치 지도자로 성장하거나, 전혀 새로운 정치 지도자 상을 만들어낼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 그러니까 정치인을 닮고 싶어 하길 기대하는 일이 더 어려운 시대가 돼 버렸을지 모른다).

또한 그는 아직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은 것이 많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자신의 대한민국이 어떠할 것인지, 정치 지도자 안철수는 어떤 모습일지 그는 아직 우리에게 들려주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섣불리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조금 더 기다려볼 생각이다.

내가 박원순을 지지하는 이유

앞서 선왕 방원의 물음에 답하지 못했던 젊은 임금 이도는 마침내 답을 내놓는다.

"권력의 독을 감추고, 칼이 아닌 말로써 설득하고, 모두의 진심을 얻어내어 모두를 오직 품고, 하여 방진의 1(이방원을 가리킴)만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2, 3, 4, 5, 6...... 모두가 제 자리를 찾고 제 역할을 하게 하는 그런 조선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내하고 기다릴 것이옵니다."

이어 이도는 집현전을 열어 인재를 모으는가 하면, 방원이 못마땅하게 여기던 '경연'을 되살려 관료와 학자들을 불러내 끊임없이 토론하며 백성의 소리를 듣고자 노력한다. 그렇게 자신이 '성리학의 이상'이라 믿는 바대로 "토론하고 쟁명하여 상대방을 설득하고,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고 인내하고 참고 기다리며" '자신의 조선'을 만들어 나간다. 어쩌면 훗날 그가 우리 역사 속 가장 위대한 임금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천재성 때문이 아니라, 그가 옳은 결론을 얻기까지 들인 치열한 노력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나는 박원순 후보를 지지한다. 그가 단순히 반 한나라당 후보여서도 아니고, 그가 내세운 서울시 청사진이 마음에 꼭 들어서도 아니다. 그가 '서울시를 시민에게 돌려드리겠다'고 한 약속을 믿기 때문이다. 물론 고삐 풀린 시장과 금융 자본으로부터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꿈을 지키는 일도, 가난한 이들이 다시 설 수 있도록 집과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일도, 또 모든 아이들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따뜻한 밥 한 끼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일도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박원순의 서울시에 이 모든 것을 담아내기엔 무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서울시를 시민에게 돌려드리겠다'는 그의 약속 안에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만을 좇지 않고, 또 자신과 생각이 같은 이들의 말만을 듣지 않고, 세대와 재산과 정치적 입장과 철학을 떠나 모든 서울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 만일 이번 선거를 통해 우리 사회가 딱 반 발자국만 앞으로 내딛을 수 있다면, 주저 없이 그런 사회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이 무너진 '상식과 정의'를 되살리고 지켜낼 가장 위력한 방도이자, 안철수가 우리 시대의 멘토가 될 수 있던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며, 안철수에 열광했던 이들이 박원순의 서울시에 바라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부디 600년 전 조선의 한 젊은 임금이 품었던 아름다운 이상을 박원순과 안철수가 우리 앞에 펼쳐 보여주길 바란다.


태그:#서울시장, #안철수,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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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전북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 혁명>(2023),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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