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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 참으로 역동적이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아슬아슬한 승리를 거둬 여당의 체면치레를 해준 오세훈 전 시장이 어이없는 자충수로 물러나고, 승리감에 들떠 있는 야당에게 곽노현 교육감 사건이 찬물을 끼얹는다. 여당의 기쁨도 잠시, 안철수 원장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되더니, 이내 5% 지지율의 박원순 변호사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한다.

이후 과정은 또 어떤가? 무소속 박원순 후보는 정당정치의 위기를 논할 정도로 야권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더니 경선 후에는 연두색 일색의 민주당 캠프가 만들어 진다. 네거티브 안하겠다던 나경원 후보는 네거티브 선거운동의 교과서라도 써볼 태세다. 

흔들리지 않을 것만 같던 지지율도 출렁였다. 역공에 역공. 언론사마다 '초박빙'을 쏟아내기 바쁘다. 박근혜의 등장에 이어 결국 안철수도 떴다. 대선 전초전이라 할 만하다. 오세훈 전 시장의 '주민투표 도박'으로 시작된 일련의 드라마가 이제 곧 작은 매듭을 짓기 직전이다.

선거를 장악한 네거티브의 정치학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가 서울시장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가 서울시장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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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의 특징을 꼽으라면 단연 '네거티브' 논쟁이다.

통상 네거티브 선거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지만, 모든 네거티브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정당한 네거티브는 책임 있는 당사자의 잘잘못을 평가하고 책임을 묻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오히려 네거티브에 대한 지나친 거부는 책임을 져야할 사람들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오용되는 경우가 많다.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 역시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상대와 자신이 무엇이 다른지는 정책보다 비판에서 먼저 드러난다. 정치는 이런 적대의 공간에서 탄생한다. 일제시기 항일독립투쟁도, 민주화운동도, 지금의 반MB연대도, 심지어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도 일종의 네거티브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문제를 지적하는 논리가 옳다는 것이 그 문제를 지적한 사람이나 세력이 더 좋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네거티브는 여러 착시 효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이명박 정권 또한 노무현 정부에 대한 네거티브 프레임을 전유함으로써 당선될 수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네거티브라는 용어 자체에서 오는 부정적 어감은 분명 과장되어 있다.

'격'이 있는 네거티브와 '저급'한 네거티브

문제는 네거티브에도 '격'(格)이 있다는 점이다.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관점으로, 팩트를 근거로, 새로운 가치에 부합되는 비판은 품격이 있다. 그러나 팩트도 아닐뿐더러 불순한 의도로 억지논리를 펼치는 네거티브는 냉소와 외면, 회피를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 둘을 판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비판을 통해 어떤 구체적인 실천과 행동을 요구하는 것인지, 아니면 냉소와 짜증, 외면만을 유도하는 것인지를 살펴보면 된다. 격이 있는 네거티브는 대안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비판을 대안으로 연결시키려 하지만, 저급한 네거티브는 그 자체에만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나경원 후보의 선거전략은 '자충수'라 할 만하다. 애초 나 후보는 "이번 선거는 정책선거로 네거티브를 하지 않는 당당한 선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책임 있는 집권 여당의 후보로서, 더구나 이번 서울시장 선거가 같은 당 오세훈 전 시장의 무리수로 인해 진행되는 선거라는 점에서 수가 빤히 보이는 언급이었다. 정책선거를 강조하며 일종의 방어막을 친 셈이다.

박원순 후보의 개인적 성향도 나 후보의 '공세차단' 전략에 유리했다. 야권 경선과정에서 박영선 민주당 후보의 공세에 지나칠 정도로 당황해하고 불쾌해하던 그의 품성 상, 나 후보 쪽에서 먼저 건드리지 않는다면 보는 사람이 밋밋할 정도의 정책대결로 흐를 공산이 컸다.

그러나 역시 한나라당은 네거티브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다. 박 후보의 학력과 경력, 재산문제 등 각종 의혹을 닥치는 대로 쏟아내더니, 개인적 인격과 자질 등 검증할 수 없는 사안까지 거침없이 내뱉었다. 나 후보 입장에서는 떨어지는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사실이건 의혹이건, 근거가 있건 없건 박 후보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히는 것이 절실했을 것이다.

당연히 해야할 네거티브조차 전혀 시도하지 않아 지지자들에게 '답답하다'는 원망까지 들어야했던 박원순 후보는 결국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네거티브 대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문제는 어떻게 네거티브의 '격'을 유지할 것인가에 있다. 네거티브적 공세에 대응하면서도 어떻게 대중이 냉소와 무기력에 빠지지 않게 만들 것인가?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다.

새로움의 열망, 기존의 대립구도로의 회귀

 24일 박원순 야권통합 서울시장 후보를 지지하며 안국동 캠프를 방문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박 후보와 손잡고 있다.
 24일 박원순 야권통합 서울시장 후보를 지지하며 안국동 캠프를 방문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박 후보와 손잡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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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후보에 대한 초반의 지지는 대중이 박원순의 진면목을 알았기 때문이라기보다 새로움의 열망이 만들어낸 일종의 거품이었다. 즉, 새로움의 가치를 상징하는 안철수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안 원장의 지지선언으로 박 후보에게 옮겨간 것일 뿐이다.

이런 거품은 선거가 진행될수록 빠지게 되어 있다. 설령 안철수 원장이 시장에 출마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네거티브 선거가 진행되면 거품이 빠지는 속도도 빨라진다. 

따라서 박원순 캠프는 거품이 빠진 자리를 박원순의 진면목으로, 내용 있는 새로움으로 채워 넣어야할 과제를 안고 있었다. 기존의 정당과 운동에게서는 새로움을 느끼지 못했지만, 안철수에게는 열광하는 대중에게 박원순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러나 박원순 캠프에서는 이런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했다. 야권 경선 이후 박원순 캠프는 흡사 민주당 캠프로 변했다. 박 후보가 민주당 후보라는 것을 각인시켜 전통적인 민주당원의 지지를 끌어내겠다는 전략이었다. 민주당은 핵심 요직을 자치하고 전통적인 민주당색인 연두색으로 박 후보의 이미지를 도색했다.

이런 전략은 박원순의 장점을 오히려 감춰버렸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갖지 못했던 참신함과 새로움을 상징하는 어떤 것이 점차 사라진 것이다. 박원순은 이미 민주당을 넘어선 어떤 것을 가지고 있었는데, 민주당 것을 챙기느라 있는 것을 버린 셈이다. 

선거는 조직력 확보에 중점을 두는 전통적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새로운 정치의 내용을 구체화하기보다 기존 정당 조직의 네트워크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물론 평일 치러지는 선거의 특성상, 무작정 '바람'에 기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런 전략은 안철수 바람을 타고 새롭게 등장한 이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서기 힘들 것이다.

대안적 정책은 있었으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은 아니었고, 토론회는 했지만 강렬한 메시지가 없었다. 게다가 박원순 캠프는 <오마이뉴스> 주최의 토론회조차 거부하는 등 지나치게 소극적인 자세로 대응했다. 여기에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공세가 결합되면서 새로움에 대한 열망은 MB와 반MB의 대립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기댈 것은 안철수 원장뿐이었던 것은 자연스런 결과다. 안철수 원장과 박근혜 전 대표의 대리전이라는 관전 포인트는 결국 박원순 후보가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는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투표가 던져주는 의미와 과제

 박원순 야권연대 후보
 박원순 야권연대 후보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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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투표를 코앞에 두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못마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이후에 해도 되는 이야기를 굳이 이 시점에서 하는 이유는 우리의 한계를 제대로 인식하는 투표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불가피하게 선과 악의 대결, 흑백논리처럼 전개될 수밖에 없는 선거지만, 이번 투표는 우리의 한계는 물론, 선거 이후의 우리의 과제와 책임까지 인식하고 진행해야 할 '무게'를 가진 선거다. 장밋빛 희망으로만 덧칠된 투표, 당선만 되면 만사 오케이인 선거가 아니라 선거 이후가 더 중요하게 받아 들여져야할 선거인 것이다. '당신이 바로 서울시장'이라는 박 후보의 메시지 역시 이런 한계를 함께 풀고자 하는 의지로 읽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 어느 정도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다른 한편으로는 나름의 가능성을 던져주는 선거이기도 하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대중의 열망만으로 순식간에 수백만의 지지자를 만들어 냈고, 자금과 조직력을 갖춘 거대 정당과의 경선에서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다.

이것은 어떤 식으로든 실체를 드러내면, 유권자의 힘은 정당의 기득권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무소불위라는 것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우리는 이미 2002년 민주당 경선에서, 2% 지지율의 후보가 대중 참여를 통해 어떤 결과까지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지켜본 바 있다.

적극적인 행동과 승리의 경험을 축적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강남 3구의 실로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위력 역시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지속적으로 확인해온 승리의 경험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들은 행동함으로써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킨다.

반면, 대부분의 서민들은 냉소함으로써, 무관심함으로써 스스로의 힘을 해체시켜 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10월 26일, 외면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

약간의 불만이 있더라도, 조그만 차이 밖에 느낄 수 없더라도, 우리의 위력을 과시할 경험, 승리의 경험을 축적해야만 한다. 약간은 불만이 있더라도, 부족함을 느끼더라도 분명한 과제를 인식하면서 진행해야할 선거다. 어쨌든 변화를 요구하는 거대한 흐름은 내년 총선에서, 또 대선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결과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냉소와 외면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을 것이다. 우리는 위협조차 줄 수 없는 존재는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저급한 네거티브에 맞서기 위해 최소한 격이 있는 네거티브 투표라도 동참해야만 한다.

그것이 최소한 우리의,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길이다.


#10.26#박원순#재보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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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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