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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터키.
강진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터키. ⓒ BBC

규모 7.2의 강진이 터키 동남부를 강타한 23일(현지 시각). 터키 공군 중위 오누르 에리아사르(이하 에리아사르)는 강진 소식을 접한 직후 기지를 떠나 에르지시로 달려갔다. 에르지시는 이번 강진의 최대 피해 지역으로, 공군 기지가 있는 반(Van)에서 100km 정도 떨어져 있다.

에리아사르가 에르지시로 달려간 것은 약혼녀인 굴 카라코반(25·교사)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에리아사르는 카라코반의 친구와 동료들에게 약혼녀의 행방을 물었다. 그 결과 지진이 발생하기 전 카라코반이 한 식당으로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카라코반이 점심식사를 하던 식당은 강진으로 무너진 상태였다. 그러나 에리아사르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둠이 내린 식당 주변에서 약혼녀 이름을 목 놓아 불렀다. 연인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절규였다.

카라코반과 함께 무너진 건물 밑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에리아사르의 외침을 들었다. 갇힌 사람들과 그렇게 연결된 에리아사르는 주변에 있던 구조팀 중 하나를 설득해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파게 했다.

건물 잔해에 묻혀 죽을 위기에 처했던 카라코반은 두 동료와 함께 구조됐다. 갇힌 지 18시간 만이었다. 카라코반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들것에 실려 구급차로 옮겨졌다. 에리아사르는 "오직 그녀가 살아 있기만을 바랐다"고 말한 후 구급차에 함께 탔다.

극적으로 구조된 사람들

<로이터통신>이 24일(현지 시각) 전한 터키 강진 피해 현장의 한 장면이다. 에르지시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것은 카라코반만이 아니다. 구조팀은 지진으로 무너진 인터넷 카페 건물 잔해에서 세 살 정도 돼 보이는 남자 아기를 구해냈다.

건물 아래에 갇혀 추운 밤을 견뎌야 했던 한 남성은 구조된 후, 밤새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잔해 위에 앉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길가로 내려선 이 남성은 휘청거리며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6층짜리 건물 잔해의 콘크리트 판 아래에서 구출된 모녀도 있다. 잔해에 갇혀 있던 피단이라는 여성은 쉰 목소리로 "나 여기 있어요, 나 여기 있어"라고 외쳤다. 이 목소리를 들은 구조팀은 두 시간 넘게 여성과 대화를 나누며 이 여성이 갇힌 곳까지 들어갈 길을 여는 작업을 했다. 마침내 여성의 딸의 발이 보였고, 그렇게 모녀는 자유의 몸이 됐다. 가까스로 구출된 모녀의 몸은 심하게 부어오른 상태였다. 이 모녀가 갇혀 있던 건물에서는 네 구의 시신이 나왔다.

BBC는 무너진 가게 아래에 갇혀 있는 다섯째 동생을 구하고자 네 형제가 잔해를 파헤치는 모습도 보였다고 보도했다.

"나 살아 있어... 그런데 꼼짝할 수가 없어"

<로이터통신>은 이처럼 극적으로 구조된 이들도 있지만, 수백 명 이상이 여전히 무너진 건물 아래에서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Van)에 사는 한 여성은 숙모와 어린 사촌이 무너진 건물 아래 어딘가에 묻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성은 수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던 24세 아들이 잔해 아래에 갇혀 있는데 행방을 알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들은 약 40가구가 살던 7층짜리 아파트가 무너진 현장에서 가족과 친척을 찾고 있었다.

4층짜리 아파트가 무너진 또 다른 현장에서는 한 여성이 친구인 하티스 하시모글루(24·유치원 교사)가 구조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여성은 지진 발생 후 하시모글루가 자신에게 휴대전화를 걸어 "나 살아 있어, 그런데 계단 근처 잔해에서 꼼짝할 수가 없어"라고 상황을 전했다고 말했다. 하시모글루와 6시간 동안 통화했다는 이 여성은 "하시모글루가 '난 빨간색 잠옷을 입고 있어'라고 말했다"며 구조를 서둘러달라고 요청했다.

BBC는 에르지시와 반에서 강진으로 집을 잃고 여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한 텐트들이 들어선 야영장이 늘었다고 밝혔다. 강진이 발생한 터키 동남부는 고원 지대로, 이맘때면 해가 진 후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곳이다. BBC는 잔해 아래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물론 야영장에 있는 이들도 길고 추운 밤을 견뎌야 하는 처지라고 보도했다.

또한 BBC는 몇몇 대도시에서는 생존자를 찾는 데 중장비가 동원되고 있지만 일부 구조 요원들이 장비 부족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구조 요원은 "우리는 원시적인 장비를 가지고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터키 정부와 껄끄러운 관계인 쿠르드족 거주 지역의 일부 생존자들은 텐트를 비롯한 구호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에서 약 50km 떨어진 할칼리 마을의 세리프 타라키는 "텐트가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먹을거리도 없다, 아직 어떤 구조팀도 여기에 오지 않았다"고 불만을 털어놨다고 BBC는 보도했다.

BBC는 이번 강진으로 279명이 사망하고 1300명이 다쳤으며, 사상자는 대부분 에르지시와 반에서 발생했다고 터키 부총리가 밝혔다고 24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추운 날씨가 터키 강진 생존자들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고 보도한 BBC.
추운 날씨가 터키 강진 생존자들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고 보도한 BBC. ⓒ BBC


#지진#터키#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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