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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버스'는 오늘의 한국사회가 처한 노동의 위기를 보여주는 동시에, 토론과 행동, 좌절과 극복의 몸짓이 어떠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희망버스>를 탔건 안 탔건 1%의 탐욕이 강요하고 있는 '불안한 노동'의 세계에 99%의 우리가 살고 있음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노동이 삶을 가꾸는 게 아니라, 삶을 파괴하는 지경에 이른 오늘, 우리는 낯설지 않게 어느 '해고노동자의 죽음'을 접합니다. 어느 '알바생'의 마지막을 목격합니다. 생각하면 85는 김진숙씨가 버티고 선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숨은 85찾기 게임'을 제안합니다. '없었던 85만들기 게임'을 제안합니다. 85는 숫자에 불과하지만, 어느새 85는 그냥 85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과 노동을 돌아보는 절망과 희망의 숫자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85는 무엇입니까. - <85개의 85> 프로젝트 기획팀

 

 
 
 
 

 

여기 4개의 크레인이 있습니다.

 

첫 번째 크레인은, 사진가 정기훈이 담은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입니다.

 

두 번째 크레인은, 이 사태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지금 당장의 연대'를 위해 사진가 21인이 공동제작한 사진집 <사람을 보라>의 최초 표지입니다. 제목 아래 "남이 괴로운데, 나는 아무렇지 않다면, 옆에서 누군가 고통의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 내 귀에는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보는 것, 그것이 사람이다"라는 소설가 공선옥의 말을 넣었습니다.

 

세 번째 크레인은, 최종적으로 제작된 <사람을 보라>의 표지입니다. 출판사 내부에서 여러 논의를 했다는군요. 타이틀이 조금 작아졌고, 앞서 있던 문구가 빠졌습니다. 왜 그랬던 걸까요? 어느 것이 더 나을까요? 저간의 논의를 알려드리는 것보다는, 질문을 드리는 게 나을 듯합니다. 저 크레인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괴물'이니까요.

 

네 번째 크레인은, 김진숙의 얼굴 8500장을 엮어 만든 85호 크레인입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의 용접 노동자였습니다. '노동자였습니다'가 아니라 '노동자입니다'. 그의 얼굴은 일터를 사람사는 곳으로 만들고자 했던, 하지만 고통 속에 운명을 달리 한 박창수와 김주익과 곽재규 노동열사의 얼굴이기도 합니다. 또한 일터에서 쫓겨났으면서도 여전히 작업복을 벗지 못하고 있는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의 얼굴입니다. 아울러 불안한 노동으로 삶을 버티는 숱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얼굴이기도 합니다.

 

어제 김진숙의 얼굴은 김진숙의 얼굴일 뿐이었지만, 오늘 김진숙의 얼굴은 김진숙만의 얼굴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오늘(1일)로 300일, 겨울에 올랐던 크레인에서 그가 다시 겨울을 맞고 있습니다.

망연자실, 우리는 이 땅이 정녕 인간의 땅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남호 회장은, 사유재산을 점유하고 있는 김진숙에게 당장 내려오라 호통을 치지만, 저 크레인은 조남호의 당신의 크레인이 아닙니다.

손가락이 잘리고, 추락하고, 뇌수가 터지고, 소금땀 피땀을 흘리면도 저 일터를 지켜온 한진스머프들의 크레인입니다.

삶을 파괴하는 살인해고를 멈추라, 외쳤던 숱한 희망버스 탑승자들의 크레인입니다. 멀리서 응원했던 숱한 시민의 크레인입니다.

 

그리하여 조남호 회장께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크레인은 당신의 크레인이 아니지만, 저 고통의 크레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당신에게 있으니까요.

 

곱은 손 호호 불어가며, 다시 이 겨울을 85호 크레인에서 견뎌야 하는 겁니까.

당신의 열쇠로 크레인을 열고, 김진숙에게 올라갈 수는 없는 겁니까. 차갑게 언 손 감싸줄 수는 없는 겁니까.

당신에게 '인간의 최소함'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겁니까.

 

300일을 맞으며 우리는 김진숙에게 보내는 연대의 인사에 앞서,

조남호에게 보내는 연민과 측은함의 인사를 띄웁니다.

우리 자신에게 보내는 모멸감의 인사를 띄웁니다.

 

<85개의 85 + α>의 이미지와 글로 엮는 창고형 박물관

'저마다의 팔십오'로 김진숙을, 아니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85개의 85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누군가는 85세 할머니의 얼굴과 살아오신 이야기를, 누군가는 85학번 40대 중년의 일상을, 누군가는 8시 5분을, 누군가는 85번 버스를, 누군가는 85개의 머리카락을, 누군가는 85개의 단어로 엮은 시를, 누군가는 85권의 책을 이야기하겠답니다.

 

이런 상상도 해 봅니다. 잘 구운 85개의 커피콩을 사진에 담고, 그걸 곱게 갈아, 뜨거운 물로 내린 커피를 홀짝이며 떠오른 아주 짧은 생각. 김진숙에게 트위터로 배달하는 한 잔의 커피! 응원의 한 마디!

 

이런 것도 가능하겠지요. 어느 요리사가 찍어 보내온 85개의 숟가락! 85개의 떡볶이, 85분짜리 영화, 85만 원의 월급….

 

이 프로젝트는 숫자에 연연합니다. 매우 연연합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85에만 연연하지는 않습니다. 지나쳤던 85, 숨어있는 85, 즐거운 85, 슬픈 85, 그 모든 85를 환영합니다. 직접 찍어 보내시면 아주 좋고, 솔직담백한 글이 덧붙으면 금상첨화고, 그럴 수 없다면, 아이디어라도 환영입니다. 기발할수록 더 좋습니다.

 

대기 중(?)인 소수의 사진가들이, 가능한 선에서 그 아이디어를 이미지로 구현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찾아낸 85들이, 소금꽃이 웃음꽃으로 바꾸는 거름이 되길 바랍니다.

 

 

<참여방법>

1. 여러분 주변에 어떤 85가 있는지 살펴주십시오. 관찰한 85도 좋고, 만들어낸 85도 좋습니다.

2. 사진을 찍고(휴대전화로 찍은 것도 무방), 짧은(길어도 무방) 글과 함께 85archive@gmail.com 으로 보내주세요.

3. 85개의 85프로젝트 블로그 http://85archive.tistory.com에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블로그에 댓글로 아이디어를 남겨주셔도 좋습니다.

4. 이 아카이브는 배타적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퍼가셔도 좋고, 나눠주셔도 됩니다. 블로그에서 마음에 드는 작업을 발견하시거든, 트위터 등으로 나눠주시고, 더 많은 분들의 참여를 독려해 주십시오.

http://85archive.tistory.com에서 고해상 이미지를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태그:#85 크레인, #김진숙, #희망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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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이 목숨 걸고 싸우지 않아도 되는 세상, 해고노동자가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찾아 떠나는 85개의 이미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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