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나이더(Glenn H. Snyder)의 동맹안보딜레마(alliance-security dilemma)는 동맹관계에 있는 국가 간의 연루(entrapment)와 포기(abandonment)라는 국가의 이중적인 갈등현상을 의미한다. 국제정치적 현실주의(realism)의 시각은 무정부 상태의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최대 목표인 생존을 위해 스스로 안보를 지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외부의 위협에 자조(self-help)할 수 없는 입장에 놓인 약소국인 경우, 안보이익을 위해 강대국과 동맹관계를 맺는 경향이 있으며, 강대국은 약소국의 전략적인 이해득실을 고려하여 약소국과의 동맹을 맺는다.
그런데, 동맹관계는 제3국과의 분쟁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난관을 만나는 경우, 강대국의 입장으로서는 동맹의 지속 또는 포기라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만약 강대국인 A라는 국가가 약소국인 B라는 국가와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상황에서, C라는 국가가 B국가와 전쟁을 벌이는 경우, A국가는 B동맹국과의 동맹을 유지할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에 관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B국과 C국의 전쟁이 자국의 이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경우 이러한 딜레마는 A국의 선택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B국과 C국의 전쟁이 A국의 입장에서 볼 때에 단지 동맹관계의 유지를 위해 국가 내부의 극심한 반대에 직면하거나 실익이 아닌 손해가 극심하다면, A국은 지속과 변화라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현 정부 및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추세에서 촉발된 오세훈 전 시장의 정치적 도박은 박 전 대표에게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었다. 그의 정치적 생명을 건 무상급식 투표는 대다수의 국민들로부터 선택받지 못한 선택을 받음으로써 한나라당 소속 서울시장 후보의 보궐선거 당선 가능성은 애당초 높지 않았던 상황이었고, 이미 한나라당의 복지담론에 대한 국민들의 반대 의사가 확인된 만큼 오 전 시장의 뜻을 계승한 나경원 후보는 더욱 당선 가능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뿐만 아니라 나 후보가 박 전 대표의 계파와 갈등을 겪어온, 그리고 복지정책적 시각에서도 달랐던 친이계라는 점에서도 박 전 대표는 나 후보 지원이 그리 달가운 입장이 아니었을 것이다. 더욱이 위기에 빠진 당 내의 상황에서 유력한 대권후보로서의 역할론도 박 전 대표로서는 그간 행보해온 마이웨이식 독자노선을 고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입장은 분명 동맹딜레마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나경원 후보가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결정된 이후, 박 전 대표가 선뜻 선거지원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못한 이유도 바로 이러한 딜레마에 대한 고민이 깊었음을 의미한다. 박 전 대표가 나 후보를 지지하고 선거지원을 하는 경우, 만약 나 후보가 승리를 쟁취한다면 박 전 대표의 위상과 존재가치는 더욱 제고됨으로써 향후 대선가도에도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점을 예상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당 내의 계파갈등도 일시에 해소될 뿐 아니라, 박 전 대표 일인독주체제 중심의 당 개편도 더욱 가속화될 수 있을 것이며, 이로 인해 내년 총선에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의 경우, 즉 박 전 대표가 나 후보를 지원함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 이기지 못하게 된다면, 이러한 낙관적인 전망은 곧바로 절망적인 위기로 다가오게 될 것을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박 전 대표가 당 지도부에 속하지 않은 만큼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그동안 제기되어온 '역할론'과 '대세론'은 타격을 입게 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이 9회 말 투아웃의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박 전 대표는 구원투수로 등판하여 성공적으로 그 역할을 다해왔고, 한나라당이 국민의 뜻에 직시하지 못할 때마다 박 전 대표는 당의 입장과는 다른 자세를 견지하여 당 내의 유력인사들에 비해 차별화를 유지함으로써, 박 전 대표 이외의 대세론이 공간을 확장하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이러한 역할론과 대세론은 박 전 대표로 하여금 높은 지지율과 함께 유력한 대권 후보로 주목할 수 있는 절대적인 바탕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따라서 현 정부와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우호롭지 못한 상황 속에서, 그리고 이미 한나라당의 복지정책이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았음이 확인된 만큼, 나 후보가 아닌 그 누가 후보로 나서더라도 한나라당으로서는 승산이 높지 않았던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박 전 대표로서는, 비록 계파는 다르지만 '적'이 아닌 '동맹'의 관계에 연루되어있는 이상, 결국 같은 당 후보인 나 후보에 대한 지원을 선택하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반대로 나 후보로서는 '약소국'의 입장에서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강대국'이었던 박 전 대표의 지원이 절실했고, 박 전 대표로부터 외면 받는 방기의 상황은 있을 수도 없는, 있어서도 안되는 위급상황이었다. 한나라당의 선거 승리를 보장할 수 없는 당시의 상황에서 박 전 대표의 상징적 그리고 전략적 가치가 보강된다면,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만은 아니었으리라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박 전 대표의 지원사격으로 인해 역전의 기회도 가능하다는 자신감도 들었을 것이다.
'무상 복지 포퓰리즘,' '친북 종북 좌파' 등등의 극단적 좌우 이념적 구분으로 한국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단순화시켜왔던 한나라당은 지난 선거에서도 진보 대 보수의 극명한 대립구도를 유발시킴으로써 보수진영의 단결을 통해 당 내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한편, 박원순 야권통합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전략을 사용함으로써 지지율의 열세를 반전하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한나라당의 선거 전략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나라당의 극단적인 이념구분과 네거티브 전략은 아직도 그 효과를 확인시켜 주었다. 전반적인 정치적 환경의 열세와 초반의 높은 지지율 격차와는 달리, 선거결과 한나라당은 불과 7.2%라는 득표 차이로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하였다.
많은 언론들은 이 득표 차이를 상당한 차이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두 자리 수의 넉넉한 격차를 내지 못한 그리고 오차범위를 약 두 배 정도 겨우 넘긴 이 차이는 국내정치적 상황과 범야권이 통합하여 한나라당에 대항했다는 점을 종합해 볼 때, 결코 "상당한" 격차라고는 할 수 없다.
제로섬적인 정치적 현실 속에서, 한나라당과 나 후보의 선거 패배는 패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겠지만, 7.2%라는 높지 않은 득표 차이는 역설적으로 보수진영의 결집력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점 그리고 나 후보의 정치생활은 끝이 아니라 오히려 오 전 시장을 대신할 보수세력의 대표주자로 떠오르게 된 점을 확인해 볼 수 있었던 계기였다. 또한 선거 초반의 차이를 한 자리 수에 머무르게 한 점도 박 전 대표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선거기간 동안 예측할 수 없는 돌발변수의 등장이나 선거 그 자체의 역동성을 고려해본다면, 선거를 승리한 범야권진영도 충분히 낙관할 수 있는 처지는 되지 못할 것으로 본다. 서울시장에서 승리는 하였지만, 서울 양천구와 강원도 인제에서, 그리고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원한 부산, 그리고 여전히 경상도 지역에서 한나라당이 선거를 승리한 점을 볼 때, 한 자리 수의 득표율 격차는 언제라도 뒤집어질 수 있다. 정치는 결국 "타이밍이 모든 것(Timing is everything)"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딜레마에 빠진 박근혜 전 대표 ②"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