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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시골 농협에는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은 농민들이 찾아와서 거액을 송금하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큰돈을 송금할 때는 반드시 창구의 직원들을 통해서 한 번 더 확인해주었으면 한다.
▲ 부여농협 동부지점 아직도 시골 농협에는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은 농민들이 찾아와서 거액을 송금하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큰돈을 송금할 때는 반드시 창구의 직원들을 통해서 한 번 더 확인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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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여기는 우체국인데요. 현금카드가 등기로 와 있습니다."
"우리는 우체국에 통장을 개설한 적도 없고 거래하지도 않는디유?"
"그러니까요. 고객님의 신상정보가 유출돼서 현금카드가 등기로 와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우체국장님을 바꿔줄테니 국장님한테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네. 제가 우체국장인데요. 고객님의 신상이 유출됐다는 사이버수사대의 연락을 받고 전화 드렸습니다. 통장에 돈이 얼마나 있습니까?"

"예에? 사이버수사대라구유? 제 신상이 유출됐다구유?"
"그래서요. 고객님의 통장에 있는 돈을 저희가 알려준 계좌로 옮겨놓으시면 안전하게 보관했다가 조합장님을 통해서 돌려드리고 있습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되쥬?"
"저희가 알려드리는 대로 하시면 안전하게 고객님의 돈을 보호해드립니다. 통장에 돈이 얼마나 있으시죠?"
"집을 새로 지으려고 농협에 3천만 원 정도 정기예금에 넣어놓은 게 있는디…."

"그러면 2380만 원을 제가 불러주는 계좌 번호로 입금을 시켜주시면 저희가 안전하게 보관했다가 조합장님을 통해서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시면 신상이 유출돼서 다 빠져나갈 수도 있습니다."
"아이고! 예에…. 고맙습니다. 이렇게 직접 전화까지 해주시고…. 계좌번호 불러주세유."
"네. 그러면 계좌번호 받아 적으시고요. 다른 사람들한테 알리지 마시고 농협에 가셔서 현금인출기 앞에서 이 번호로 다시 전화주세요."

대화 내용을 보고 단번에 '보이스피싱 사기'라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이런 보이스 피싱 사기에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위의 대화 내용은 실제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한 사람의 말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이다.

전화 사기를 당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노정아씨
 전화 사기를 당한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노정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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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농사로 번 돈을 사기꾼 말 한마디에...

충남 부여읍 정동리에 사는 노정아(61)씨는 지난 주 어느 날 아침에 이런 전화를 받았다. 신상정보 유출이니, 사이버수사대니 하는 말에 당황한 노정아씨는 사기꾼들이 시키는 대로 평소에 거래하는 농협으로 갔다. 사기꾼들은 대담하게도 노정아씨에게 송금 한도액을 늘린 다음에 현금인출기로 송금을 하라고 했다.

노정아씨는 창구의 여직원에게 통장을 보여주고 송금 한도액을 늘려달라고 했지만 통장이 남편 이름으로 되어 있어서 본인이 직접 와야 된다는 대답을 들었다. 노정아씨는 다시 사기꾼들과 통화를 한 후에 그들이 시키는 대로 2380만 원을 창구를 통해 송금하기로 했다.

노씨는 창구의 여직원 김혜숙(49)씨에게 통장과 도장과 주고 사기꾼들이 적어준 계좌번호로 2380만 원을 입금해줄 것을 부탁했다.

"고객님, 이렇게 많은 돈을 어디로 송금하세요?"
"알 거 읎슈. 그럴 일이 있슈."
"하우스 설치하세요?"

김혜숙씨는 농업 인구가 많은 부여 지역의 특성상 큰돈을 거래하는 경우는 대부분 시설하우스를 설치하는 자재 대금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렇게 물었다.

"알 거 없다니께 그러네…."

김혜숙씨는 행동이 자연스럽지 않은 노씨가 못내 의심스러워서 망설이다가 입금을 시켜주고 말았다. 입금증을 노씨에게 건네주던 김혜숙씨는 다시 한번 이렇게 많은 돈을 어디에 송금하느냐고 물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했는디…."

순간, 김혜숙씨는 방금 송금한 노씨의 송금에 대한 '정정처리' 버튼을 눌렀다. 1초나 되었을까 하는 짧은 순간이었다.

"잠깐만요. 전화 사기 당하신 것 같아요. 전화기 좀 줘보세요."

김혜숙 씨는 전화기를 건네받으면서 정당한 거래라면 양해를 구하고 다시 송금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혜숙씨가 노씨가 통화하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서 사기꾼들인 거 다 알고 있으니까 더 이상 사기치지 말라고 했더니 그쪽에서 전화를 끊는 소리가 들렸다. 보이스피싱 사기 전화가 맞았다.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든 노씨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농협 여직원 김혜숙씨의 재치 있는 대처로 입금 정정처리가 되어 살아 남은 돈
▲ 노정아씨가 입금한 2380만원 농협 여직원 김혜숙씨의 재치 있는 대처로 입금 정정처리가 되어 살아 남은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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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적인 기지로 2000만원을 지켜준 농협 직원

부여농협 동부지점에 근무하는 김혜숙씨의 기지와 빠른 판단력이 아니었다면 노씨가 새 집을 지으려고 모아둔 돈은 고스란히 사기꾼들의 손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김혜숙씨에 의하면 노씨가 평소에 거래를 많이 하는 고객이라 눈여겨보았고 큰돈을 송금하면서 말을 안 하는 고객을 유심히 보라는 보이스피싱 예방 교육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김혜숙씨는 아직도 한 달이면 두세 번 정도 노씨와 같은 보이스피싱 사기 전화를 받고 당황해서 찾아오는 고객들이 있다고 한다. 김혜숙씨는 큰돈을 입금할 때는 되도록이면 현금 자동화기기를 사용하지 말고 창구를 이용해줄 것을 부탁했다. 창구를 이용하면 그만큼 생각할 수 있는 시간도 벌 수 있고 직원들과의 대화를 통해 사기임을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동화기기를 이용해서 송금을 하면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조차 파악할 수 없다고 한다.

노씨가 사기를 당할 뻔했던 아찔한 순간을 지인들에게 들려주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런 전화를 받았고 당황해서 금융기관으로 달려간 적이 있었다고 맞장구를 쳤다고 한다. 농업인들이 많은 지역의 특성을 세상 물정에도 어두운 것으로 착각하는 사기꾼 일당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객의 돈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김혜숙씨 같은 금융기관 직원이 있어 다행이다.

보이스피싱 사기 전화를 받고 송금한 고객의 돈을 발 빠른 판단력으로 정정처리해서 되찾아준 농협 여직원 김혜숙씨
▲ 김혜숙씨 보이스피싱 사기 전화를 받고 송금한 고객의 돈을 발 빠른 판단력으로 정정처리해서 되찾아준 농협 여직원 김혜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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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보이스 피싱, #전화 사기 , #농협, #사이버 수사대, #신상 정보 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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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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