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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판식과 시제를 마치고 제각 앞마당에서 기념촬영 하는 문중 어르신들
 현판식과 시제를 마치고 제각 앞마당에서 기념촬영 하는 문중 어르신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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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일요일(10월 30일)에는 형님(69세)을 따라 옥천(玉川) 조씨(趙氏) 태사공 할아버지(趙 璵) 제각 준공식 및 시제에 다녀왔다. 예순이 넘도록 부모와 조부모 제사만 지냈지, 문중 행사는 처음 참석이어서 낯설었다. 그러나 내 뿌리를 알게 된 역사적인 날이기도 했다.

옥천 조씨 시조는 고려 때 광록대부(光祿大夫)로 '검교대장군', '문하시중'을 지낸 조장(趙璋)이다. 우리 문중에서는 조장의 3세(世)로 고려 때 '문하시중평장사'를 지낸 조여(趙璵)를 태사공 할아버지로 모신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아침 7시에 일어나 형님과 함께 옥천 조씨 태사공파 조창훈(75세) 회장 내외를 모시고 군산을 출발, 오전 10시쯤 제각이 세워진 전북 임실군 오수면 봉천리 냉천마을에 도착했다. 시간이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잠시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이곳이 바로 나의 할아버지 동네구나!

제각 중앙에는 태사공 할아버지 호(退休齊)가 새겨진 현판이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다. 염수제(念修齊)가 새겨진 좌측 현판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20여 년 전에 돌아가신 한국 서예의 거목 강암 송성용(1913∼1993) 선생 낙관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

조 회장은 40년 전 제각을 지을 때 자신의 아버지가 강암 선생에게 받은 글이라고 말했다. 건물이 오래되어 2009년 5월 수리하려고 했는데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해서 상의 끝에 2010년 8월 공사를 시작, 1년 2개월 만에 준공식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제각 앞에서 바라본 마을. 멀리 전라선 열차가 지나가고 있다.
 제각 앞에서 바라본 마을. 멀리 전라선 열차가 지나가고 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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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냄새가 싱그럽게 느껴지는 냉천마을은 옥천 조씨 집성촌으로 노령산맥 줄기가 병풍처럼 마을을 감싸고 있었으며 앞으로는 들녘이 펼쳐졌다. 경적을 울리며 오가는 전라선 열차들이 아슴하게 보였고, 옆으로는 산에서 내려오는 냇물이 노래하듯 흘렀다. '배산임수(背山臨水)'가 따로 없었다.

그러나 도로도 시멘트, 주차장도 시멘트, 새로 지은 건물도 시멘트, 냇가도 시멘트로 덮어놓아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70년대 새마을 사업하느라 시멘트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그 아름다운 산천을 시멘트로 덧발라 놓다니···. 그래도 아직은 흙냄새가 풍기고 물이 마르지 않아 다행이었다.

지붕에는 기와를 얹고, 흙과 돌로 담을 만든 냉천마을 고택들.
 지붕에는 기와를 얹고, 흙과 돌로 담을 만든 냉천마을 고택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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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는 기와를 얹은 고택이 많았으며, 자주 눈에 띄는 조씨 성의 문패들은 집성촌임을 설명하는 듯했다. 마을 이름은 어느 스님이 이곳의 냉수를 마셨는데 물이 매우 차가워 마치 냉천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제각 앞의 '냉천경로당'과 마을 주민들이 세웠다는 작은 '애향비'가 눈길을 끌었다. 특히 비문 중 "우리 마을은 같이 일하고, 같이 먹고, 같이 노는 넉넉한 농부들의 전통을 이어받아 400여 년을 한결같이 이 땅을 가꾸며 살아왔다"라는 대목은 '이곳이 바로 나의 할아버지 동네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마음을 넉넉하고 훈훈하게 했다.

육십 평생 처음 참석한 제각 현판식과 시제

흐뭇한 표정으로 현판식에 참여한 옥천 조씨 어르신들
 흐뭇한 표정으로 현판식에 참여한 옥천 조씨 어르신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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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제각 앞마당에서 조재익(64) 승지공파 대표 사회로 간단한 현판식이 열렸다. 조창훈 제각사업 추진위원장은 효, 의, 인 정신이 깃든 태사공 할아버지의 이력과 경력을 소개하고 제각 사업에 도움을 준 종원(宗員)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조 위원장은 "600여 년 성상(星霜)을 이루지 못했던 제각이 완공되어 자손으로서의 떳떳함과 도리를 다함에 긍지를 느낄 수 있는 이 시기에 흔들리지도 마르지도 않으며 영원한 발전과 번영이 함께하는 옥천조씨 태사공파가 되도록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조 위원장 인사가 끝나고 항렬이 높거나 나이 든 어르신 20여 명이 앞으로 나와 흰 천을 걷어내는 것으로 제각 개막식과 현판식을 마쳤다. 마당에 모인 종원들은 박수로 화답했으며 사회자의 선창에 따라 "태사 할아버지 만세! 옥천 조씨 태사공파 만만세!"를 외쳤다.

술잔을 올리는 옥천 조씨 조창훈 회장(우)과 도와주는 조재익 종원(좌)
 술잔을 올리는 옥천 조씨 조창훈 회장(우)과 도와주는 조재익 종원(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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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사상 앞에 나란히 앉은 옥천 조씨 어르신들
 제사상 앞에 나란히 앉은 옥천 조씨 어르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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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는 하늘의 신을 부르는 강신,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독축 순으로 이어졌다. 사회자는 "오늘은 경사스러운 날이니 격식을 따지지 않겠다"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도 각 종파에서 두 명씩 나와서 제주를 올리고 절을 했다.

우리나라 국민은 사돈 아니면 친척이었다. 웃음도 나왔다. 여덟 할아버지 지방 옆에 영광 김씨, 해주 오씨, 동래 정씨, 보은 성씨, 함양 오씨, 죽산 안씨, 남원 양씨, 의령 남씨, 제주 고씨, 협계 태씨, 전의 이씨 등의 할머니 지방도 놓여 있기 때문이었다.

사회자는 육중한 체구에도 유머와 위트가 넘쳤다. 시제를 마치고 점심을 먹는데 사회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건배를 제의하겠다며 '빠삐용'을 외치자고 했다. 빠삐용은 '빠지지 말고', '삐치지 말고', '용서하자'는 뜻이라고 해서 웃음을 선사하기도.

 제각 현판식과 시제를 모시고 옥천 조씨 태사공 할아버지 묘소를 참배하는 어르신들
 제각 현판식과 시제를 모시고 옥천 조씨 태사공 할아버지 묘소를 참배하는 어르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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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점심을 먹고 참석자들은 부근에 자리한 태사공 할아버지 묘소를 참배했다. 묘소에 오르니 섬진강 지류와 오수면 소재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80년대 아버지와 함께 선산을 정리했다는 조재익 대표가 묘를 올려다보며 고했다.

"고합니다. 태사할아버님, 오늘 조창훈 후손이 할아버님 제각을 완공하고, 우리 후손들이 6대 계파 모두 모여서 제각 개막식과 아울러 현판식을 끝내고 할아버님 시제를 모시고 참배하러 왔습니다. 후손들에게 큰 감복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조 대표의 고하는 말이 끝나고 참배자들 모두 절을 올리는 것으로 일정을 모두 마쳤다. 산에서 내려와 종원들과 헤어져 집으로 오는데 아버지 모습이 아른아른 그려졌다. 지하에서나마 만족해할 것 같았다. 자신이 못한 일을 큰아들이 해냈으니 얼마나 기쁘겠는가.

운전하는 형님에게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3대 독자로 태어난 아버지도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느니 차라리 '군산 조씨'를 만드는 게 좋겠다!"라며 탄식했던 족보를 몇 년 전 형님이 어렵게 문중 어른을 찾아 만들었는데 도움을 드린 게 하나도 없어서였다.

입동(立冬)을 일주일 앞두고 익어가는 들녘을 바라보는 마음은 풍성했고, 뿌듯했다. 육십 평생 처음 참석한 제각 현판식과 시제에서 내 뿌리를 발견했으며 보람도 느꼈기 때문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옥천 조씨, #제각현판식, #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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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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