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도 이젠 끝을 향하고 있다. 내가 사는 경기 북부 지역의 은행나무들은 요즘 드문드문 내린 비에 남아있던 잎들을 거의 털어버렸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은 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한다. 그리하여 자칫 계절을 잊기 쉬운 도시를, 도시의 바쁜 현대인들에게 계절의 정취를 듬뿍 느낄 수 있게 한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은행나무는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린다. 3억5000만 년 전에도 살았던 은행나무가 이처럼 오랫동안 멸종하지 않고 우리의 가을을 노랗게 물들일 수 있는 이유는 치명적인 병충해도 없고 환경오염에도 강해 어떤 환경에든 쉽게 적응하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사찰이나 정자 등에 많이 심었는지라 우리나라 곳곳에는 오래된 은행나무들이 많다. 대기오염에 강하기 때문에 요즘에는 도심의 가로수로 많이 심는데, 서울의 가로수는 은행나무가 거의 다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은행나무 수피는 백과수피, 뿌리는 백과근이라 하여 관상동맥경화, 흉통, 심장통, 심계, 고혈압, 천식, 해수 등에 처방하기도 한다. 백과근은 익혀 먹으면 허약체질에도 도움이 된다. (중략) 은행잎에는 알코올 성분도 있어서 석유대체 자원으로도 검토된다. 약품 생산 후 남은 잎은 섬유질로 활용해서 벽지로 개발할 수 있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은 구충 효과가 좋아서 서책을 보관하거나 해충을 구제하는 데도 사용된다. 단단하고 질이 좋은 은행나무 목재는 고급상자, 공예품 가구, 바둑판, 공산품, 밥상, 도마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그 외에도 은행차, 국수, 과자, 된장 등에 활용가능하다. 은행나무는 버릴 것 하나 없는 진정한 웰빙 수목이다." -<우리 땅 생물 콘서트>에서오염에 강한 은행나무... 그런데 중금속 오염?은행나무는 여러모로 고마운 존재다. 흔히, 대체적으로 잎과 열매의 효능만 많이 알려졌지만 이처럼 뿌리와 줄기(혹은 수피) 역시 우리의 건강에 도움이 많고 석유 대체 에너지의 가능성까지 있다니 말이다. 이외에도 살균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모기 퇴치용으로도 쓰인다.
여하간 열매와 잎의 혈액순환 개선 효과 때문인지 은행 열매 수확기인 9월 중순부터 10월말까지,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며 은행 열매를 줍는 사람들을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우리 어머니 역시 그중 하나. 올해도 한 말씩이나 주웠다며 자랑이다.
올 가을에도 어김없이 몇몇 지자체에서 가로수로 심어진 은행나무의 열매를 수확해 불우이웃 돕기에 쓰기로 했다는 훈훈한 소식이 전해졌다. 그냥 두면 악취가 진동해 누군가의 코를 움켜쥐게 하지만, 잘만 쓰면 누군가에게 따뜻한 온정이 되는 것이다.
"환경오염에 매우 강해서 오염이 많은 도심의 기로수로 가장 적합하다. 가을이 되면 은행나무에서 은행을 터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지만, 도심 속 은행을 먹는 건 금물이다. 오염에 강한 은행나무가 오염물질을 스펀지처럼 잔뜩 머금고 있어서다. 도시화와 산업화로 고도성장이 이루어지면서 대기 오염물질이 주민의 건강뿐아니라 주변 생물들을 괴롭힌다. 그래서 오염에 잘 견디고 오염물질을 잘 흡수하는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심었다. 그런 만큼 은행에는 납, 카드뮴 같은 자동차 배기가스에서 나오는 중금속 등 오염물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우리 땅 생물 콘서트>에서그런데 이처럼 몸을 살리고자 먹는 은행 열매가 오염물질들을 다량 함유, 경우에 따라 더욱 치명적인 병을 안겨주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니 조심할 일이다.
천연기념물 지정 은행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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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용문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0호, 이하 각 지정 나무 천연기념물 생략) ▲금산 보석사 은행나무(365호)▲청도 적천사 은행나무(402호)▲영동 영국사 은행나무(223호)▲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175호)▲원주 반계리 은행나무(167호)▲강화 불음도 은행나무(304호)▲괴산 읍내리 은행나무(165호)▲청도 대전리 은행나무(301호)▲서울 문묘의 은행나무(59호)▲담양 봉안리 은행나무(482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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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처럼 길가(혹은 가로수)의 은행나무에서 은행을 얻었다면, 그곳이 대기오염이 심한 곳이라면 중금속 오염을 여부를 고민해야 한다.
다행히 은행열매를 수확해 불우이웃 돕기에 쓰겠다는 몇몇 지자체 중 한 지자체가 은행열매의 중금속 등과 같은 오염물질 함유량을 알아본 후 쓰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글쎄? 한편으론 우려스럽다. 모든 지자체가 이미 이를 염두에 두고 나름의 검사를 하고 있는 걸까? 은행을 털어 불우 이웃을 돕는다는 내용 뿐, 그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심사숙고해 볼 문제다.
우리 땅 우리 생물 이야기, 폭넓고 깊이 있네"지구생태계는 비생물적 요소와 생물적 요소가 함께 공존하는 곳이다. 주변 환경이 악화되면 가장 먼저 생물이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기존의 책들은 생물과 환경을 따로 구분해서 다루고 있어 서로의 관계성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생물과 환경의 상호관련성을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우리 땅 생물콘서트>는 한반도에 살고 있는 동식물들의 실제이야기다. 비좁은 한반도에도 무수한 생물들이 살고 있다. 그 중 한경악화로 위기를 맞이한 생물도 많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연예인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관심을 갖지만, 우리 땅 동식물들의 속사정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우리 땅 생물콘서트> 저자의 말 중에서<우리 땅 생물콘서트>(동아시아 펴냄)는 그들(동식물)의 멸종은 곧 우리의 위기임에도, 이처럼 우리와 깊은 연관이 있음에도 다른 문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우리 땅 생물들의 속사정, 그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지난 20년간 곤충에 대한 관심을 시작으로 식물 및 우리 땅 생물 전체에 대한 관심의 폭을 넓혀 다양한 관찰 연구 활동과 관련 프로그램 자문 및 자연생태 강의, 관련 책들을 꾸준히 쓰고 있는 한영식씨(현재 곤충생태교육연구소 소장)다.
참고로 그는 <딱정벌레 왕국의 여행자> <반딧불이 통신>,<봄여름가을겨울 곤충도감> <지구생태계의 수호자 곤충 없이는 못살아> <물삿갓벌레의 배낭여행> <곤충들의 살아남기>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곤충이야기> 등을 썼는데, 이중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곤충이야기>는 초등학교 교과서(1학년 2학기, 3학년 1학기 국어)에 수록되었다.
저자는 오늘도 우리와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토종 동식물을 가려 모아 그 중 은행나무, 개구리, 부엉이, 꿀벌, 모기, 흰개미, 참나무, 하루살이 등처럼 주변에서 가장 흔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동·식물 24종을 뽑아 각 꼭지의 주제로 삼은 다음 관련 동·식물과 그에 따른 생태계 문제 등을 포괄적이며 깊이 있게 들려준다.
흔히 동·식물 이야기는 지루하고 딱딱하다는 편견이 있다.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 볼 것을 권한다. 기존의 책들이 그 식물 혹은 그 동물에 대한 것들만 다루는 것과 달리 이 책은 우리의 생활과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를 시작으로 기존의 책에서는 쉽게 읽지 못했던 동·식물들의 비밀스런 사생활들을 쉽고 재미있게 들려주기 때문이다.
시골태생인지라 예사로 함께 자란 동·식물에 관심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그래서 관련 책들이 출간될 때마다 구해 읽곤 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지난 몇년 동안 읽었던 생물 생태계 관련 지식이 훨씬 확장된 걸 느꼈다.
그동안 각각의 책을 통해 단편적으로 읽었던 것들은 물론 그 너머의 이야기까지 이 책이 한 꼭지의 글로 조목조목 정리해 들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책을 읽고 있노라면 묵묵한 감동이 밀려온다. 한 꼭지 한 꼭지가 한편의 드라마틱한 논픽션 다큐멘터리라고 할까.
덧붙이자면, 이 책을 읽는 청소년들이 특히 많았으면 좋겠다. 버드나무에서 얻는 아스피린이나 은행나무에서 얻는 심혈관치료제 등과 같은 약품부터 거미줄 성분의 방탄제품, 장구벌레에서 얻은 잠수함의 원리 등 동·식물에게 인류가 얻는 것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세계 각 나라에서 관련 연구 또한 활발하다고 한다. 그런만큼 이 분야 미래가 밝기 때문이다. 어떤 동·식물에서 어떤 물질이 발견되었으며 인류에게 어떻게 쓰일까는 물론 폭넓은 자연생태계 지식들을 흥미롭게 들려주기 때문에. 또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꿀벌이 사라지면 맛있는 아이스크림도 먹을 수 없다? ▲쥐가 사라지면 인간도 멸종할 수 있다? ▲청거북 겨드랑이에서 암내가? ▲이상고온 현상으로 나무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히려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아진다? ▲수리부엉이가 20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짝을 찾는 이유는? ▲호주에서는 주택을 팔고 살 때 흰개미가 없다는 '흰개미검사필증'이 있어야 한다? ▲천연기념물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한국호랑이는 국가마다 달리 불린다? ▲우리 땅에서 호랑이 씨를 말린 사람들은 일본인들? ▲가시박은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서로 다른 얼굴을 할까? ▲하루살이들은 왜 떼 지어 춤을 출까? ▲최근 발견된 골칫거리 꽃매미, 이미 1932년에 우리 땅에 들어왔다? ▲로드킬 최다 희생자 고라니는 우리나라에서만 산다? 등이다.
덧붙이는 글 | <우리 땅 생물콘서트>ㅣ한영식 씀ㅣ동아시아ㅣ2011.8ㅣ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