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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딸 낳아서 귀엽고 예쁘게 키워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런데,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아…, 결국 아들만 둘 가진 아빠가 되는 것이 나의 운명이었나 보다. 딸 낳기가 그렇게 힘들단 말인가! 딸 낳게 해 준다는 확률 50%짜리의 땅 짚고 헤엄치기식 속설을 믿는 게 아니었다.

내가 지금 복에 겨운 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귀엽고 씩씩한 두 아들을 내려주신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리라. 그렇다, 커가면서 크고 작은 말썽에 힘이 들기도 하지만, 재롱 한 번에 모든 고민과 한숨을 다 날려 버리는 것이 또 아들 아니겠는가?

둘째 아들의 장래희망 1지망은 '피자배달부'

"너 장래희망 이번에는 뭐라고 쓸 거야?"

의사, 판·검사, 박사 등 이른바 '사'자 직업이었으면 좋으련만, 둘째 아들의 장래희망은 또 어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올해 학년 초 가정실태조사서에 아들이 버젓이 쓴 직업은 글쎄 '피자배달부'란다. 그것도 1지망으로 당당하게…. 

"생각만 해도 멋지잖아! 오토바이로 거리를 휘익 누비며, 또 먹고 싶으면 아무 때나 공짜로 먹을 수 있고…."

'뭐어? 피~자~배달부우우~~? 어디서 배달부를 찾고 있어! 아빠 때는 희망사항에 적을 수 있는 것은 판사 의사 밖에 없었어!'라고 소리칠 뻔했다. 이럴 때 '애정남'이라도 나타나서 딱 정해줬으면 좋겠다.

지난 2004년, 둘째 아들의 3번째 생일날
 지난 2004년, 둘째 아들의 3번째 생일날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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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예닐곱 살 때였나 보다. 당시 장래희망이 무인단속 경찰이었던 녀석은, 알고 보니 무인단속 과태료를 혼자서 다 챙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버렸다. 이후 택시기사가 멋진 스포츠카를 몰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거의 매년 바뀌어 왔다.

노란 차에 몸을 싣고 폼 나게 운전대를 잡으며 돈도 벌 수 있을 것 같았는지 피아노학원 차량 운전기사도 등장했다. 한 번씩 뉴스에 등장하여 머리띠를 동여매고 가열찬 투쟁가를 외치는 노동조합 지도자에 이어, 월드컵 열풍에는 축구선수, '슈퍼스타K'를 접한 이후에는 가수까지 등장했다.

그나마 1년에 한 번씩 신분상승(?)을 해서 다행이었는데, 이제는 과감히 '하향지원'을 선택하여 확 바꿔버렸으니 정말 울고 싶다.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아들의 장래희망이 피자배달부라고 하면 기분 좋아할 부모가 어디 있단 말인가. 안 된다고 화를 내도 도대체 누굴(?) 닮았는지, 황소고집이다. 결국은 어르고 달래서 '운동선수'로 적어서 보내기는 했지만, 찜찜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장래희망=피자배달부'라며 위세를 부리는 아들의 모습은 나의 어릴 적 모습을 꼭 빼다 박았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더니, 피는 역시 속일 수 없는 모양이다. 나도 한때는 서점직원이 장래 희망일 때가 있었다. 멋진 책방에서 책도 마음대로 보고 돈도 벌고, 아마 요즘의 재벌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영화관의 영사기사와 해양경찰을 꿈꾸다 그러고는 아마도 장래희망이 막막했던 거로 기억한다.

그러고 보니 아빠라는 이유로 위선적(?)인 태도를 곧잘 취하는 나를 발견한다. '아들이 나를 닮았으면…' 하면서도, '내 인생을 제발 닮지 않아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는 것을 보면 한편으로는 대단한 이중인격자가 아닐 수 없다.

씨도둑질 못 한다더니... 애비 꼭 빼 닮은 아들

저만치서 걸어오는 아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환영처럼 겹치는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말았다. 어쩌면 이토록 똑같을 수가 있단 말인가. 말 그대로, 쏙 빼어 닮았다. 그러고 보니 예전 할머니들의 말씀이 이제야 실감난다.

"저놈, 지 애비 닮은 것 좀 보소, 어디 가서 씨도둑질은 못한다더니!"

그렇다, 생김새는 물론 말투에 성격까지 똑같으니, 어디다 내버려도 내 아들임을 단번에 알 수 있을 놈이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아내의 말에 의하면 잘하는 것은 모두 엄마 닮았단다. 공부 잘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피아노에 글짓기까지….

잘하는 건 모두 엄마 닮고 딱 한 가지, 간섭은 물론 타협을 거부하고 성질머리 더러운 것만 아빠 닮았단다.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지만 역시 아내의 말이 정확했다. 아들은 "지금 그걸 저한테 믿으라는 거예요?"라며 무슨 말이든 꼬박꼬박 말대꾸부터 시작한다.

하루는 집에서 빈둥거리는 아들을 앉혀 놓고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야 이 녀석아, 요즘 뉴스에 많이 나오는 안철수 박사님은 네 나이 때 뭘 했는지 아니?"
"아뇨, 잘 모르겠는데요?"

"어린 시절부터 책읽기를 좋아해 도서관의 책은 모두 읽을 정도였어, 책읽기가 바탕이 되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지금은 '걸어 다니는 도덕교과서'라는 별명까지 붙었단다. 어려서부터 책을 보면서 그렇게 미래를 준비했으니, 당연히 사회에 대한 봉사정신이나 애국심도 투철한 것 아니겠어? 그런데 너는 어떻게 된 애가 매일 빈둥거리는 것도 부족해서 오로지 컴퓨터 게임만 할 궁리만 하고 있니?"
"그래요, 저도 안철수 박사님 잘 알아요!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긴 했지만, 아버지처럼 어른이 되어서는 서울대 의대출신으로 낮에는 의사 밤에는 백신 개발을 해서 국민들에게 무료로 보급했죠?"

두 아들 중 특히 꼬박꼬박 말대꾸를 해 가면 자기주장을 굽히지 둘째 때문에 인내심이 바닥이 날 지경이다. 그러나 더욱 웃기는 것은 나 자신도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으면서, 내가 이뤄내지 못한 것을 아들에게 은근히 강요하는 이기적인 한 아빠의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두 아들은 한때 거실을 PC방처럼 꾸며 온라인게임에 열중했다. 어느새 초등학교 6학년과 3학년으로 훌쩍 자랐다.
 두 아들은 한때 거실을 PC방처럼 꾸며 온라인게임에 열중했다. 어느새 초등학교 6학년과 3학년으로 훌쩍 자랐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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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시간끌기' 전략, '백전백승'

"야, 이 녀석아, 빨리 먹어!"
"싫어! 나, 밥 안 먹을 거야. 절대로…."

우리 집에서 일주일이면 서너 번 들려오는 일상적인 대화다. 뭐가 심술이 났는지 한 번씩 꿍한 얼굴의 둘째는 엄마의 협박에도 날선 공방을 벌인다. 여기까지는 어지간히 익숙해진 터인데, 이번에는 진짜로 두 끼나 안 먹고 버틴다. 말을 걸 때마다 강력히 고개를 흔들며 고집을 부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내는 요동도 않는다.

"놔둬, 저러다 배고프면 지가 찾겠지, 뭐…."

그런데 엄마와 아빠를 번갈아 바라보며 시시각각 변하는 아들의 표정을 보니 웃음부터 나온다.

'어? 엄마가 왜 아무 말도 안 하지? 속 터지게…. 그래 누가 이기나 보자'

조금이라도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밥 안 먹는다고 협박하는 장면은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 '투쟁'의 방식이다. 그게 부모에게 투쟁할 수 있는 최대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니 아들의 맘도 이해(?) 못하는 아내가 오히려 더 야속하다. 결국 나는 속이 터지며, 슬슬 걱정스럽다.

"그래, 알았어, 참 서운했겠구나. 밥 먼저 먹고 이야기하자. 알았지?"하며 손을 잡고 이끄니 아들은 못 이기는 척하며 식탁으로 다가온다.

보통은 아빠의 호통에 아이들이 꼬리를 내리고 포기함으로써 막을 내리지만, 별종(?)에 속하는 아들의 전략은 시간이 더디지만 항상 승리로 끝난다. 그야말로 아빠가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마니, 백전백승이다.

꼬박꼬박 대꾸하고 달려드는 어린 아들에게서 간혹 나의 어릴 적 모습이 보일 때마다, 내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다. 목욕탕 스킨냄새에 담배냄새까지 조합하면 아빠가 생각난다는 이도 있지만, 난 이럴 때 아버지가 사무치게 떠오른다.

여름 밤, 모기향을 피우면 아들 삼형제가 연기에 '쿨럭' 댈까 봐 항상 잠자기 전에 모기향을 피웠다가는 잠이 들 때 끄셨다. 그래도 극성인 여름밤 모기들…. 아버지는 세 아들이 잠든 옆에 팬티만 입은 맨몸으로 누우셨다. 그렇게 좋은 집보단 좋은 가정을, 부자아빠보단 친구 같은 아빠, 재산보다는 사랑을 물려주신 아버지셨다.

늘 아버지를 능가하지 못한 존재 '아들'

평생 웃는 모습만 아들에게 보여주시던 아버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 곳이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은 아니었을 텐데…. 나 자신의 우울한 마음에 갇혀 반항하던 그때,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셨던 아버지, 어머니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던 그 품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원천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오히려 마음대로 화를 내던 반항의 대상 또한 아버지였다. 자신의 작업복은 다 해어지고 신발은 다 낡았지만 아들만을 챙기셨던 아버지의 모습. 위인이든 평범한 아버지든 아들을 제대로 키우기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며, 반대로 아들 노릇하기도 그리 쉽지만은 않으리라. 제아무리 똑똑한 아들이라도 늘 아버지를 닮지 못한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떨까.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터와 집을 오가며 단순히 가정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주는 존재로만 인식되고 있지는 않을까? 그럼에도, 이해받을 수 있는 아버지가 되기란 얼마나 고된 일인가.

또, 그 아버지에게 자란 그 아들은 얼마나 노력하고 있을까.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바라는 것처럼 예쁘게 자라주면 너무나 고마운 일이다. 미래의 나는 어떤 아버지로 거듭나며 나의 아들은 나를 어떤 아버지로 여기게 될까?

사랑한다, 아들아

언제부터인가, 네 생각은 뒷전이었고
뭐든지 어른인 아빠의 기준으로만
이끌려고 했음을 감히 고백한다.

내 아들만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바보 같은 생각이 없다는데…

나의 희망이고, 나의 전부라는 욕심으로
상처받고 서운했을 너를 헤아려보니, 
이 아빠도 한때는 그렇게 투정만 부리던 철없는 아들이었구나.

어느새 아빠가 되어서
실수와 실패를 겪어보니
결코 아들에게 완벽한 존재는 될 수 없는 것처럼
이젠 애써 강요하지 않고 결코 욕심내지 않으리.

다음에 네가 네 아들과 함께 걸을 수 있는
그런 장소와 추억 하나 쯤 있어도 좋지 않을까?

이번 주말엔 아들과 함께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구나.

사랑한다. 아들아…


태그:#아버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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