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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들의 첫 번째 잘못은 '쇄신파'라는 허울 좋은 이름만 얻은 채 당과 정부의 실질적인 변화와 개혁을 이루어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18대 국회에 들어 4번에 걸쳐서 쇄신운동이 있었습니다만 병만 키운 채 이제껏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한나라당 의원 25명의 서명을 받은 '쇄신 연판장'에 담긴 자기 반성이다. 지난 6일 김성식·정태근·구상찬 의원 등 쇄신파는 대통령의 사과와 국정운영 기조 전환을 촉구하는 '대통령에게 드리는 글'을 공개하면서 먼저 고개를 숙였다.

 

이들의 반성대로 2008년 촛불정국 이후 제기됐던 '한나라당발 쇄신론'은 모두 처음에는 청와대와 당을 삼킬 듯 일었다가 제대로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소멸하고 말았다.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 한나라당발 쇄신론

 

첫 쇄신 움직임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졸속 협상으로 촉발된 촛불시위로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자 촉발됐다. 당내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쇠고기 수입 재협상과 국정 쇄신 요구가 나왔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후 국정쇄신과 청와대·내각의 인적 쇄신 요구는 매년 크고 작은 선거가 있을 때마다 되풀이됐다. 2009년 4·29 재보선 결과, 인천부평 국회의원 선거 등 한나라당이 5대 0으로 참패하자 초선 의원 모임인 '민본21'을 중심으로 쇄신론이 제기됐고 쇄신특위까지 구성됐다. 당시 원희룡 최고위원이 쇄신특위위원장을 맡아 청와대 인적쇄신, 공천개혁, 당청관계 개선 등 개혁안을 냈지만 초선 의원들마저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간 계파 대리전을 벌이면서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10년 6·2 지방선거 참패 이후에도 민본21이 주축이 돼 당·정·청 전면 개편을 요구하는 연판장을 돌려 쇄신론에 불을 붙였지만 곧 사그러들었다. 특히 문제 제기만하고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던 소장파들은 7월 전당대회에서 김성식 의원이 개혁소장파의 독자후보로 당권에 도전했지만 지도부 입성에 실패했다. 이 역시 친이·친박의 틈바구니 속에 민본21 회원들도 독자후보인 김성식 의원보다 계파의 이해에 따라 움직인 결과였다.

 

지난 4·27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천당 아래 분당이라는 성남 분당을과 강원도에서 패배한 뒤엔 '새로운 한나라'를 중심으로 이재오 특임장관 2선 후퇴론 등이 제기됐지만 미풍에 그쳤다. 

 

이처럼 한나라당 쇄신 운동의 전력을 보면 인적쇄신, 당청관계 재정립, 공천개혁 등 레파토리도, 쇄신안을 들고 무대에 오른 인물들도 모두 같았다. 뒷심 부족으로 구체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번번히 좌초한 결말도 똑같았다. 

 

청와대 벽을 넘지 못한 쇄신... 쇄신파 뒷심 부족도 한몫

 

반복된 쇄신 실패의 중심에는 청와대가 있다. 매번 제기된 청와대 참모진 개편, 중도개혁으로의 정책 전환, 수평적 당청 관계 요구에 청와대는 "국정기조 변화는 없다", "국면 전환용 청와대-내각의 개편은 없다"며 당의 요구를 외면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일부 친이직계 의원들은 '청와대 친위대'로 나서기도 했다. 2009년 4·29 재보선 패배 후에는 '48인 초선 모임'이 당의 쇄신 요구를 "국정 흔들기"로 규정하며 대통령의 방패막이로 나섰다. 6·2 지방선거 패배 후에도 "선거 패배에는 당 책임이 더 크다"는 논리로 청와대를 감쌌다.

 

이 과정에서 계파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소장파들의 자중지란도 용두사미 쇄신에 한몫했다. 이들은 모두 청와대의 완고한 벽 앞에서 머뭇거리거나 뒷걸음질쳤다.

 

특히 쇄신파 스스로 구태정치를 반복하기도 했다. 4·29 재보선 이후 "민심 이반은 이명박 정부의 오만과 독선에 기인한 것"이라는 비판을 가했던 '7인회' 의원들은 조전혁 의원이 주도한 전교조 명단 공개 동참을 통해 색깔론 공세의 선봉에 섰다. 

 

또 올해 4·27 재보선 참패 이후, 쇄신파는 황우여 원내대표를 당선시키고 수직적 당·청관계를 바로잡겠다며 'MB노믹스'의 핵심인 감세를 철회시키는 등 기세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권재진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기용은 사실상 방관하다시피했다. 언론에 대고는 반대 목소리를 높이던 의원들도 의원총회에서는 침묵을 지켰다.

 

쇄신파의 한 의원은 "그동안의 쇄신 논란에서는 청와대의 입김과 계파의 이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초선들의 한계가 그대로 드러났다"며 "변해야 한다는 당위는 있었지만 크고 작은 선거 패배 속에서 드러난 성난 민심보다는 숫자에 불과했던 당과 대통령의 지지율 고공행진에 지레 포기했던 면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쇄신론에 불을 붙이면서 항상 "이번엔 다를 것"이라고 했던 쇄신파는 '양치기 소년'이 됐다.

 

5번째 쇄신 운동도 초반부터 잡음... 당내 반발 속출

 

이번 10·26 서울시장 선거 참패 이후 불거진 쇄신 운동도 초반부터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소장파들은 이번에도 연판장을 돌리며 "마지막 기회"라며 청와대와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하는 등 배수진을 쳤다. 하지만 당내 신·구주류간, 또 친이·친박간 쇄신 방향에 대한 견해차가 불거지면서 당내 쇄신 논의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다.

 

쇄신파들은 당내 의원 25명의 서명을 받은 연판장을 통해 대통령 대국민사과, 747 공약 폐기, 청와대 참모진 교체 등 인사 쇄신, 권위주의적 실정 개혁, 측근비리 신속처리 등 5대 요구사항을 청와대에 전달했지만 청와대는 물론 당내 친이계가 반발하고 있다. 청와대는 문제제기 방식에 대해 유감을 표했고 이 대통령은 침묵으로 사실상 거부의사를 밝혔다. 친이계는 "자기희생 없는 혁신 연판장이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장제원 의원)는 비판을 내놨다.

 

정책 기조 전환의 상징으로 쇄신파가 제기하고 있는 '버핏세'(부자증세)에 대해서는 "보수우파정당의 근간을 흔드는 정책", "과잉 의욕이 부른 자해행위"(나성린 의원)라는 반발을 샀다. 당 최고위에서는 중앙당사 축소 등 홍준표 대표가 준비하던 쇄신안이 연일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당내 잡음이 커지자 당 지도부는 당내 의견 수렴이 먼저라며 수습에 나서고 있다. 김정권 사무총장은 "당 쇄신안은 당 지도부 한 사람이 정하는 게 아니라 모든 의원들과 당원들의 의사가 결집돼야 할 문제"라며 "의원총회를 몇 번이라도 열어서 언로를 터주고 의원들의 생각을 공유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9일 의원총회 개최... 쇄신풍, 이번에는 청와대 문턱 넘어설까

 

한나라당은 9일 의원총회를 열어 당 쇄신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계획이지만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당 쇄신은 차치하고라도 청와대의 벽을 넘어서는 게 가능하겠느냐는 회의론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쇄신파의 한 의원은 "당 쇄신 방안은 그동안 여러 차례 쇄신의 결과물로 이미 나와 있는 상태"라며 "이것을 어떻게 보완하고 실천할 것이냐의 문제만 남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관건은 청와대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느냐"라며 "이번 쇄신 연판장에 대한 청와대와 대통령의 태도를 보면 막막한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한 고위당직자는 <오마이뉴스>와 만나 "청와대가 변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먼저 당이 제대로 변하는 모습을 보이고 나서 청와대에 요구할 것을 요구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번은 다를 것"이라는 한나라당 쇄신파의 5번째 도전은 어떤 결말을 맺게 될까.


태그:#한나라당, #쇄신파, #쇄신특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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