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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꼼수」는 대안언론 중에서도 특히 파격적이다. (경향)
"'대안적 미디어의 속성을 갖는 인터넷 라디오방송'이라는 점에서 '나꼼수'의 시도 자체가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PD저널)
"나꼼수가 대안매체로서의 통쾌함과 정치 이면에 숨어있는 호기심을 풀어준다"(머니투데이)
검열·심의 시대의 대안방송(한겨레21)

기존의 언론들은 나꼼수 앞에 '대안'이라는 수식어를 쓰기를 좋아한다. 이 용어 안으로 들어가면 나꼼수의 실체적 진실이 보인다. 나꼼수는 대언언론이 아니라 정통언론이다. 그런데 기존 언론, 특히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들이 정통언론을 자임하고 있기 때문에 나꼼수에 '대안'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언론이란 언론기능을 통해 여론을 환기시키는데, 언론기능은 현상의 실체적 진실을 대중 앞에 드러낼 때 가능하다. 진실은 대중 앞에 조각난 모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정통 언론이란 조각난 진실들을 조합해 실체적 진실을 대중에게 드러내 줌으로써 여론을 환기하고, 대중이 중대한 현안을 직시할 수 있게 하는 언론을 말한다. 당연히 대중은 이러한 정통언론을 믿고 사랑하게 된다.

언론인들이 들으면 불편하겠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언론기능을 하고 있는 언론은 나꼼수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나꼼수는 대안언론도 아니고 그냥 '언론'이며, 수식어를 붙인다면 '정통언론'이다.

실질적으로 언론기능을 완벽히 수행하는 '나꼼수'를 기존 언론이 '언론'으로 부르는 순간, 기존 언론의 자리가 사라져 버린다. 이 공포감이 만들어낸 용어가 바로 '대안 언론'이다. 대안이 되지 못하는 언론이 존재 가치가 있을까?

1900년 미국의 여성 언론인으로 접근한 나꼼수

세계 저널리즘의 역사는 짧지만 '언론 기능'의 관점으로 보면 인류사를 관통한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사간원에서 언론 기능을 담당했다. 하지만 양반들의 관점이 지나치게 반영돼 있기 때문에 진정한 언론 기능이라고 하기 어렵다.

저널리즘은 광고와 선동의 부분과 탐사 보도의 영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광고/선동의 부분이 먼저 태어났다. 상인들이 상품을 팔기 위해서 종이 형태로 발행한 것이 신문의 최초의 형태라는 것이 정설로 자리잡혔다. 그리고 이 효과성을 알아본 국가는 언론을 활용해 선동을 했다. 언론은 태어날 때부터 '공기'(公器)는 아니었다.

공기로서의 저널리즘 역사를 처음으로 만든 사람은 1900년 미국의 전설적인 여성 저널리스트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이다. 그는 현재 삼성보다 100배는 더 강력한 미국의 석유 재벌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을 평생 취재하여 실체적 진실을 대중들에게 고발했다.

이를 위해서 그는 오늘날 '탐사보도'라는 형식을 도입했다. 그 방법을 보면

타벨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수백장, 아니 수천장의 문서를 낱낱이 조사한 다음, 회사 경영진과 경쟁업체 사람, 기업 규제 담당 공무원, 과거와 현재의 학술 전문가를 일일이 만나고 인터뷰해서 알아낸 사실을 기술했다. 다시 말해서 타벨은 오늘날 탐사보도라고 일컫는 기사 작성 방식을 1900년에 고안했다. 이 덕분에 완벽히 새로운 형태의 저널리즘이 등장했다.
-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생각비행) 12쪽

타벨이 탐사보도 형식을 쓴 이유는 당시 기존 언론의 언론 행태 때문이었다. 즉, 자신의 견해를 독자들과 나누면서 사실 정보만 나열하는 전통에 맞선 것이다. 타벨이 볼 때 인간은 복잡한 존재여서 전적으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이 관점에서 스탠더드 오일을 파헤쳤다.

나꼼수의 문제의식과 100% 일치한다. 우리나라 언론의 가장 비겁하거나 무능력한 점은 바로 팩트 뒤에 숨거나, 팩트에 빠져서 허우적거린다는 점이다.

타벨의 기사는 전 미국인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1890년 기준으로 스탠더드오일은 미국 내 88%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었는데, 트러스트라는 지주회사 방식의 독점 형태였다. 법원은 반트러스트(반독점)법을 통해서 스탠더드 오일을 34개의 독립된 회사로 쪼개는데 여기서 역설적인 일이 일어난다.

반트러스트 입법을 통해 대표이사인 록펠러는 미국에서 가장 돈 많은 억만장자가 될 수 있었다. 불법승계에 대한 법원의 판결 덕분에 삼성이 합법적 승계가 가능해진 것과 같다. 재벌을 다루는 정교한 칼은 그때나 지금이나 만들기 어렵다.

타벨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도 <빠리의 노트르담>('노트르담의 곱추'라고 부르는 작품)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전 프랑스인들로 하여금 전통 건축물에 대한 보호 의지를 불살랐다. 하지만 타벨은 당대 가장 중요한 문제이자 가장 강력한 권력을 직접 겨냥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저널리즘의 효시라고 볼 수 있다. 나꼼수가 이 전통을 이어받은 정통언론이라고 불려도 되는 까닭은 가장 강력한 권력을 상대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위키트리에도 올렸습니다


태그:#나는 꼼수다, #나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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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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