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고 전해남 지부장의 아내입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느릿느릿 자신을 소개하는 한마디만 겨우 내뱉었다. 그러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흐르는 눈물을 연신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그는 다시 마이크를 들지 못했다. 그의 흐느낌으로 기자회견장은 숙연해졌다.
"전해남 지부장 죽음은 KT-KTcs에 의한 사회적 타살"지난 10월 3일 공주시 탄천면 대학리 인근 도로에서 화재로 불타버린 차량이 발견됐다. 당시 차량 안에서는 화재로 인해 심하게 훼손된 시체가 있었는데 20일이 지난 후에서야 KT 자회사인 KTcs 지부장(희망연대노조)인 전해남씨로 확인됐다. 경찰의 조사 결과 타살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자살'이 분명했다. 전씨의 나이 만 50살이었다.
KT에서 명퇴한 뒤 자회사인 KTcs로 옮긴 전씨는 당시 회사로부터 사직을 강요받고 있었다. 그가 강제사직을 거부하자 회사는 원거리 발령과 업무전환배치, 임금 절반 이하 삭감으로 압박했다. 이로 인해 그는 심각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자살을 선택한 10월 3일은 '임금 절반 이하 삭감'을 최종 통보받고 출근하기 하루 전날이었다.
전씨처럼 2009년 KT에서 명퇴된 뒤 자회사인 KTcs와 KTis로 옮겨와 사망한 경우는 2010년 3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21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망자 21명 가운데 자살사는 5명이다. 전환배치받은 후 업무에 적응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남편이 자살한 뒤 부인이 따라서 자살한 경우도 있었고, 돌연사도 4명에 이른다.
'죽음의 기업 KT와 계열사 책임 촉구 및 노동인권 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KT공동대책위)는 9일 광화문 KT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T와 KTcs가 전해남 지부장의 자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회사 측은 "사직을 강요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KT공동대책위는 "KT와 KTcs 사측은 문제해결을 위한 대화요구에 일체 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고 전해남 지부장 죽음에 기본적인 애도조차 하지 않았다"며 "이러한 사측의 무책임한 태도에 유족들은 분노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이번 참담한 사태는 KT와 KTcs에 의해서 자행된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라며 ▲이석채 KT 회장과 김우식 KTcs 사장의 사과 ▲강제사직 강요한 책임자 처벌 ▲부당한 전환배치-일방적 임금 삭감 철회 등을 촉구했다.
대책위는 이날 이석채 KT 회장에게 보낸 항의서한에서도 "올해만 15명이 자살, 과로사, 돌연사 하는 등 최근 잇달아 KT 직원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더욱이 현직 노조 지부장이 죽음으로 내몰린 이번 사태는 결코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커다란 사회적 문제"라고 강조했다.
"전해남 지부장은 한국 노동자들이 처한 비통한 현실 보여줘"
김진억 희망연대노조 위원장은 "6만5000여 명의 최대 공기업이던 KT가 1990년대부터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해 3만 명이나 명퇴했다"며 "전해남 지부장도 (2009년) 3년 고용과 임금 70%를 보장받고 500명의 직원들과 함께 KTcs로 옮겨와 민원처리 업무를 맡아왔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그런데 올해 KT가 VOC(고충처리)업무를 회수하면서 500명에게 강제사직을 강요하자 이를 이기지 못하고 400명이 사직했다"며 "3년 전 KT에서 강제사직을 당한 데 이어 자회사에서도 다시 강제사직을 당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김 위원장은 "강제사직을 거부한 100명에게는 원거리 발령을 냈고 전해남 지부장도 왕복 100km의 부여와 대전 사이를 오가며 (나이 등에) 전혀 맞지 않는 100 콜센터 업무를 해왔는데 이는 '괴로우면 나가라'고 얘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결국 사측은 전해남 지부장에게 일방적으로 임금삭감을 통보했다"며 "이것이 얼마나 힘들고 참담했으면 (임금삭감 통보 후 첫 출근하기 전날인) 10월 3일 자살을 선택했겠나"라고 침통해했다.
김 위원장은 "대주주와 극소수 경영진의 탐욕을 보장해주기 위해 노동자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가운데 전해남 지부장이 생명의 끈을 놓았다"며 "이것은 KT와 KTcs에 의한 사회적 타살"이라고 주장했다.
이해관 KT 새노조 위원장은 "대기업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이 됐다가 실업자로 몰려야 했던 전해남 지부장은 대한민국 노동자들이 처한 비통한 현실을 보여준다"며 "대통령을 잘 뽑아야 복지사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노동자들의 죽음이 없어야 복지사회가 된다"고 말했다.
특히 허영구 대책위 공동대표는 "KT가 민영화되면서 공공성을 상실한 이후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관으로 전락했고, 특히 정권과 자본이 결탁해 초국적 금융자본의 이익을 대변해왔다"고 지적하면서 '민주노조의 부흥'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후 공동대책위는 광화문 KT 본사 앞에서 '고 전해남 지부장 추모 및 KT 규탄 촛불문화제'를 연달아 열고, '고 전해남 지부장 사망 진상조사단'을 꾸려 자체 조사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