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순흥과 풍기를 노래한 '죽계별곡' 이야기

 죽계별곡
죽계별곡 ⓒ 이상기

안축의 문집인 <근재집(謹齋集)>에 실린 '죽계별곡'은 고려말의 경기체가로 다섯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적으로는 소백산 자락에 위치한 천년 역사의 고장 풍기와 순흥의 명소를 찾아다니며 느낀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자연과 사람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안빈낙도의 철학을 보여준다. 이 중 2장이 죽계구곡을 포함한 소백산 자락길을 이야기하고 있다.

"숙수사의 누각과 복전사의 누대 그리고 승림사의 정자, 초암동 욱금계 그리고 취원루에 올라 술에 반쯤은 취하고 반쯤은 깨어 바라보니, 붉고 흰 꽃이 산속에서 비를 맞으며 피어난다, 이처럼 절에서 노니는 모습, 그것이야 말로 어떻습니까? (宿水樓福田臺。僧林亭子。草菴洞郁錦溪。聚遠樓上。半醉半醒。紅白花開。山雨裡。良爲遊寺。景幾何如)"

 신필하가 명명한 죽계구곡
신필하가 명명한 죽계구곡 ⓒ 이상기

안축의 '죽계별곡'에 근거해, 죽계구곡이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풍기군수 주세붕 선생이다. 죽계구곡에 관한 내용이 <죽계지>와 <흥주지>에 나온다. 그런데 그 후 영조 때 순흥부사를 지낸 신필하(申弼夏)에 의해 죽계구곡의 명칭이 바뀐다. 그리고 구곡의 상하가 뒤바뀌고 전체 길이도 짧아진다. <순흥지(順興誌)>의 기록에 따르면, 신필하가 명명한 죽계구곡은 초암사 위쪽에 금당반석(金堂盤石)을 1곡으로 하고, 내려가면서 순서를 정해 하류의 이화동을 9곡으로 하였다.

이때 이후 죽계구곡에 큰 혼란이 생겨났다. 누구의 것을 따라야 하는지도 문제지만, 구곡의 위치 비정에도 문제가 생겼다. 특히 문제가 되는 곳이 제5곡 목욕담, 제6곡 청련동애, 제7곡 용추비폭이다. 이화동 상류에서 목욕할 정도의 못을 찾기 어렵고, 폭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소백산 자락길 탐사에서 죽계구곡의 제5, 6, 7곡을 찾는 걸 포기했다.

정확히는 찾는 걸 포기한 게 아니고 위치 비정을 포기했다고 하는 게 맞다 그 동안 자연이 너무 변했고, 또한 이곳에 사람들이 들어와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이 너무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암사로 올라가는 도로를 내면서 하천이 정말 많이 훼손되었다. 결국 사람들의 짓이다. 그렇지만 사람들만 나무랄 수도 없다. 사는 게 먼저니까.

배점리에서 만난 배순 정려

 배순정려비
배순정려비 ⓒ 이상기

배점리에서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월전리로 가는 길과 덕현리로 가는 길이다. 월전리로 가면 초암사를 만날 수 있고 덕현리로 가면 성혈사를 만날 수 있다. 초암사 쪽으로는 죽계구곡이 이어지고, 석륜암골을 지나 국망봉에 이르게 된다. 덕현리 쪽으로는 석천폭포골을 지나 상월봉에 이를 수 있다. 초암사에는 문화유산으로 삼층석탑과 부도가 있다. 그리고 성혈사에는 꽃살문으로 유명한 나한전이 있다.

이곳 배점리에는 배순(裵純)의 정려비가 있다. 비에는 '선조대왕 3년 상복을 입은 충신 백성 배순지려'라고 쓰여 있다. 배순은 조선 중기 이 마을에서 대장간을 운영하며 살고 있었다. 배순의 정려가 세워지게 된 이야기는 <풍기읍지>에 아주 자세하게 나온다.

 소백산 국망봉
소백산 국망봉 ⓒ 이상기

"명종 1년 배순이라는 사람이 순흥 배점에 와서 대장간을 차려놓고 좋은 철 물건을 만들어서 양심적으로 수요자에게 공급했다. 특히 행실이 착하고 어버이에게 효와 조상을 모시는 정성이 지극하여 퇴계선생께서 불러 '과연 들은 바와 같다' 하며 칭찬했다고 한다.

그 후 퇴계선생이 돌아가심에 철물로 상을 만들어 놓고 3년복을 입었으며 선조대왕이 승하하시자 매월삭망(每月朔望)에 정성들여 장만한 음식을 들고 뒷산에 올라 북쪽 궁성을 향해 곡제사(哭祭祀)를 3년 동안 지냈다. 그 슬픈 소리가 궁 안에 까지 들려 나라에서 정려(旌閭)를 내리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그가 음식을 들고 올라 궁성을 바라보며 곡을 했다는 산이 국망봉이다."

소백산에 대한 기록은 조선 성종 때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나온다. 충청도 영춘현 산천(山川) 조에 보면 "소백산은 현의 동남쪽 40리에 있고, 경상도 풍기군과 경계를 이룬다." 그리고 국망봉에 대한 기록은 1750년대에 발간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나온다. 이 책에 따르면 국망봉은 충청도 영춘현에 있고 소백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그러나 현재 국망봉은 비로봉에 이어 소백산에서 두 번째 높은 봉우리다.

제4곡 이화동에는 죽계9곡이라는 석각이...

 이화동: 죽계구곡
이화동: 죽계구곡 ⓒ 이상기

배점 마을을 지나면 길은 다시 계곡을 따라 상류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초암사까지 3㎞ 남았다는 장승 표지판이 보인다. 한 100m쯤 올라갔을까? 오른쪽으로 다리가 보인다. 이곳이 바로 제4곡 이화동이다. 다리 옆으로 검은 바위가 하나 보이는데, 그곳에는 흰 각자(刻字)가 있다. 문제는 각자가 죽계4곡이 아니라 죽계9곡(竹溪九曲)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신필하가 이화동을 죽계9곡이라 명명하고 각자를 했기 때문이다.

이화동이라면 복숭아꽃 살구꽃 피는 동네라는 뜻이다. 아마 이곳에 봄이 되면 연분홍 꽃이 피어 절경을 이루었을 것이다. 산속이기 때문에 산 벚꽃도 흐드러지게 피었을 것이다. 그 옛날 봄날이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이곳을 찾아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겼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 주변이 온통 사과 과수원으로 경계를 설정해 놓아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다. 그나마 봄철이면 사과꽃과 산벚꽃을 볼 수 있으니 다행이다.

이화동 주변에는 영주문화연구회가 세운 문화생태탐방로 '소백산 자락길' 죽계구곡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는 현재 상수원 관리사무소가 있고, 계류 위로는 다리가 놓여 있다. 다리 아래로는 바위 사이로 계류가 빠르게 흘러가며 수량도 많은 편이다. 지금은 주변에 건물 등 인공구조물이 세워져 조금은 답답해졌지만, 과거에는 주변의 자연과 계류가 잘 어우러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제5곡에서 제7곡은 정말 찾기 어려워

 등짐 진 거북이
등짐 진 거북이 ⓒ 이상기

이제 죽계구곡에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계속해서 들어서고 있다.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 하천에 다리를 놓기 때문이다. 최근에 다리 놓이는 것을 보니 개울의 바위를 받침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그 바위의 모양이 꼭 거북이 같다. 거북이 등 위에 다릿발을 세운 양상이다. 저 거북이는 평생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가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요즘 서양 사람들도 풍수에 신경을 쓰는데, 그동안 풍수를 따지던 우리가 자연과의 조화에는 조금 무뎌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곳에서 조금 올라가니 소백산 탐방지원센터가 나온다. 과거에는 이곳에서 입장료를 받았는데, 입장료 폐지 후 그 기능이 탐방객들을 지원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사실 소백산은 여름 장마철과 겨울의 혹한 때를 제외하곤 큰 위험이 없어 탐방지원센터 사람들이 여유 있게 근무를 하는 편이다. 지원센터 직원이 산으로 오르는 사람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한다.

 소백산 탐방지원센터
소백산 탐방지원센터 ⓒ 이상기

탐방지원센터 위로는 전광판이 하나 작동되고 있다. 그런데 그곳에 지나가는 문구가 웃음을 자아낸다. '가을 단풍 곱다고, 나까지 술에 물들지 말라'다. 위트로 보기에는 지나치다. 웃음도 쓴웃음이 나온다. 탐방지원센터 뒤로는 비교적 넓고 평평한 공간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 물이 많이 고여 있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여기를 제5곡 목욕담 정도로 생각한다. 목욕담은 목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맑고 깊은 못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 위로 초암사 까지는 세 개의 다리가 있다. 이 다리의 이름이 죽계교다. 그리고 다리가 놓이면서 자연이 더 훼손되어 6곡과 7곡을 찾기란 쉽지 않다. 기록에 의하면 제6곡은 청련동애다. 동쪽에 절벽이 있고, 그 아래 물이 연꽃처럼 푸르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연꽃처럼 푸른 물이 있는 절벽을 찾을 수가 없다. 이제 7곡이 남았다. 제7곡은 용추비폭 또는 용추폭포다. 물결이 흩날리는 폭포가 있고, 그 아래 깊은 물인 용추가 있다는 뜻이다.

 제7곡(?)
제7곡(?) ⓒ 이상기

제7곡은 현재 죽계2교 옆 나무다리 상류 쯤으로 생각된다. 이곳에 폭포라고 할 수는 없지만, 돌 사이로 아주 맑은 물이 떨어져 내리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구곡을 찾아가 보면, 다 과장이 심해 실제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제7곡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죽계1교가 나오고 그 위가 초암사 영역이다. 절이 부처님의 땅이라면, 죽계1교가 승과 속을 구분해 주는 다리가 된다. 이제 우리는 속계를 떠나 불가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곳에 초암사가 있고, 죽계8곡이 있다.


#죽계구곡#죽계별곡#배순#이화동#죽계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