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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남자의 시선은 기쁨인가, 슬픔인가

지난 11월 5일, 토요일의 헤이리는 주중의 고요와는 전혀 딴판이다. 거리에는 차와 사람으로 가득하다. 손에는 대체적으로 카메라가 들려있고 각자의 시선으로 헤이리의 가을을 담기에 여념이 없다.

그들 카메라에 어떤 모습으로 가을이 담길까. 눈부신 가을? 아니면 상실의 가을? 문득 그들이 바라보는 가을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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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바라본다, 최인호'

전시장 앞의 작은 배너가 써니갤러리에 전시가 있음을 알린다. 배너 속 남자가 나를 응시한다.

"저 남자의 담긴 시선은 기쁨인가 아니면 슬픔인가?"

나는 간절함이 묻어나는 그 시선에 끌려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써니갤러리의 높은 천장의 전시장 벽면은 노출 콘크리트 면이 그대로 작품을 껴안고 있다. 벽에 걸린 무채색의 그 남자는 계속 바라보고 있자니 점점 더 슬퍼지는 마음으로 변했다.

나는 닷새가 지나도 그 남자의 표정이 잊히지 않았다.

71x40 패널위에 혼합재료
 71x40 패널위에 혼합재료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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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 속에서 만나는 자화상

오늘 작가에게 전화를 했다. 그 남자를 만든 남자가 궁금했다.

- 전시장, 화폭 속의 사람들의 표정에서 감정을 읽을 수 없다. 감정을 빼버리니 자연히 희로애락의 감정 중에서 '애'만 남은 것 같다. 바라보는 자의 시선이 향한 곳은 어디인가?
"나는 타이틀을 가지고 전시를 한다. 2008년에는 '바람이 잔다'였고, 2009년에는 '첫꿈'이었다. 이번의 '바라본다'는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고 내가 바라보는 '삶'이다.

- 최 작가가 보는 세상과 삶은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우울하다', '칙칙하다'라고 얘기들을 하는데 나는 혼자 사는 사람이다 보니 외로움같은 요소가 묻어나올 수는 있다. 하지만 나를 오랫동안 알았던 사람들은 오히려 내 그림에서 긍정을 발견한다. 원래 나는 긍정적인 태도로 세상을 사는 사람이다.

- 그럼 그림 속의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시선이 닫는 '세상'과 '삶'은 밝은 곳인가?
"작가가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지 않은가? 개선이 되어야 할 곳과 현상들에 시선이 닿을 수도 있고, 또한 자신보다 못한 사람의 삶을 살펴보기도 해야 되지 않은가?"

- 이번에 바라본 곳은 희망으로 가득한 곳이 아니라 '그리되기를 바라는 곳'이겠다.
"이번 작품 중에 '바바리맨'이 있는데 여고 앞에서 '나봐라!'하는 것이 분명 여고생들의 수치심을 자극하고 인격을 파괴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매일 쏟아지는 뉴스 속의 범죄들은 참으로 포악하고 흉폭해졌다. 바바리맨은 약과다. 말하자면 그런 것들의 희화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바바리맨 112x112 캔버스에 혼합재료
 바바리맨 112x112 캔버스에 혼합재료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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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바리맨의 얼굴은 혹시 작가 자신인가?
"그렇다. 내 그림에는 내 얼굴이 많이 등장한다. 아마 거울을 자주 보니 내 얼굴이 익숙해져서 그런가보다."

- 본인의 얼굴이길 다행이다. 다른 사람의 얼굴을 얹었다면 분명 거칠게 항의를 받았을 것 아니겠나. 성적인 코드를 자주 구사하나.
"동양에서는 비교적 성에 대해서 엄격하지 않은가. 그것을 깨는 방식으로 터치해보고 싶었다. 나는 입체작업도 하는데 최근에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의 하체만 3m짜리로 작업을 했다. 나는 이 작풍이 공원 같은 곳에 놓이기를 원하는데 그리되면 그 작품 앞에서 가족이나 연인들이 사진을 찍곤 하겠지. 그리고 남자들은 필경 슬쩍 그 여자의 치마 속을 들여다볼 것이다. 나는 이 작품에 거울팬티를 입혔다. 결국 여자의 치마 속을 보고 싶었던 남자들은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들켜버린 것에 놀라겠지. 여자의 한쪽 가슴만 크게 하고 내가 막 뛰어가서 그 가슴에 부딪치는 작품도 있는데 나는 건강한 성, 모성 같은 보편적인 것을 얘기하고 싶은 거다."

노동이 실린 작업

-개 목줄을 하고 산책하는 사람의 손에 쥐어진 '음메에'의 네 발 달린 짐승의 얼굴도 작가 같다.
"맞다. 나는 여자가 남자보다 더 우수하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여자 말을 잘 들어야한다는 생각이다."

-그럼 개줄을 쥔 뒷모습의 사람은 여자인가.
"머리가 짧은 여자다."

음메에 117x98 천위에에 혼합재료
 음메에 117x98 천위에에 혼합재료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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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작업에는 패널이나 캔버스에 흙이 사용되기도 했더라.
"나는 재료를 가리지 않는다. 패널이나 캔버스뿐만 아니라 스티로폼이나 종이, 천 등 가리지 않는다. 흙, 재를 아크릴에 혼합해 사용한다. 골덴풀이 접착력이 좋아 작업하기가 좋다."

- 특별한 작업습관이 있나.
"나는 손으로 공구를 사용해서 하는 노동을 좋아한다. 요즘은 회화를 하는 사람들도 기계가 주인이 되어가는 경향이 있다. 쉽게 작업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이 실린 작업의 가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 파리에도 오랫동안 있었다.
"나는 원래 서울태생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파리로 가서 13년을 살았다. 그리고 귀국해서 부산에서 12년을 살았다. 25살에 서울을 떠나 25년만인 작년 여름에 서울의 외곽으로 되돌아왔다."

그를 자주 만나는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두고 '디지털 보석'이라고 하기도 하고 '디지털 외로움'이라고도 얘기한단다.

그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지만 모두 디지털로 내닫고 있는 시대에 여전히 손을 통한 노동을 고집하고 있으니 디지털의 시각으로 보면  보석 같은 존재이며, 디지털과 담을 쌓고 있으니 디지털 쪽에서 보면 외로운 존재로 보일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닷새가 지났지만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 남자를 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이 실린 도록의 첫 장에 그의 이번 전시 작품을 아우르는 한 줄의 텍스트가 실려 있다.

"따뜻해서.... 눈물이 난다"

그러나 전시장을 돌고 나오면 이 말은 이렇게 수정되는 것이 옳겠다.

"왠지 눈물이 난다. 그러나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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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최인호 개인전>

바라본다

기간 2011. 11. 05(토) ~ 11. 27(일)
장소 헤이리 써니갤러리
문의 www.sunnygallery.co.kr
031-949-9632



태그:#최인호, #바라본다, #써니갤러리, #헤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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