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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동항. 예인선이 다가오고 있다.
 물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동항. 예인선이 다가오고 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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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여행 둘째 날(9월 17일). 일출을 감상하고 발길을 돌리려는데 자욱한 물안개 사이로 중국 땅이 보였다. 아슴하게 보이는 육지는 목적지 중국의 '동항(東港)'이었다. 바다에는 크고 작은 중국 선박들이 오갔다. 북한 선박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반대편 갑판에서는 승객들이 놀라운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도 재미있어 하기에 돌고래가 쇼라도 벌이는지 궁금해서 다가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예인선((曳引船) 두 척이 고목나무의 매미처럼 동방명주호 앞뒤에 달라붙어 방향을 잡아주고 있었다.

동방명주호 방향을 잡아주는 예인선들. 좌측 사진은 중국 동항, 우측은 인천항 예인선.
 동방명주호 방향을 잡아주는 예인선들. 좌측 사진은 중국 동항, 우측은 인천항 예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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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어르신이 예인선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주위 사람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대구에 살면서 만주를 22년째 오가며 선교 사업을 하고 있다는 어르신은 중국은 물론 예인선에 대해서도 잘 아는 모양이었다.

"이 배(동방명주 호)를 컨트롤해주는 저 배(예인선)를 '머구리'라고 합니다. 속력은 없어도 파워는 대단하죠. 몇 만 톤짜리 배도 밀어주고 방향을 잡아줘요. 지금도 이 배는 키로 방향만 잡고 가만 있고, 머구리가 밀고 당김서 항구로 밀고 올라가잖아요. 큰 배가 수심이 얕은 곳에서 스크루를 돌리믄서 혼자 정박하다간 도크를 깨 뿔 수도 있으니까요."

어르신은 몇 만 톤급 여객선이나 무역선이 입항할 때는 예인선 4~5척이 달려들어 방향을 잡아준다고 부연했다. 수심이 얕은 군산항에서도 자주 봤던 장면이었다. 하지만, 직접 승선하고 있는 배가 도움을 받는 모습이 신기했고 느낌도 옛날과 달랐다.

어르신은 동항 부근 간척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둑 길이가 1km 정도 되며 대형 선박의 입출항이 용이하도록 압록강 하구에 쌓이는 토사를 준설해서 공사를 했단다. 그는 압록강 아래, 즉 한국 해안에만 갯벌이 형성되어 있지, 동항 북쪽엔 없다고 말했다.

배에 오른 지 17시간 40분 만에 땅 밟아

동방명주호가 동항 부두에 정박한 시각은 아침 8시 30분. 서둘러 하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객실에 도착하니까 일행들은 준비를 마치고 안내방송을 기다리고 있었다. 짐을 챙기는 데 걸린 시간은 5분 남짓. 일행이 커피를 가져다주기에 마시면서 환담을 하였다.

여객선터미널 직원들 출근을 기다리는지 30분이 지나도록 하선하라는 방송을 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중국은 오전 9시가 돼야 세관 검색대가 작동하기 시작한다"라고 했다. 모두 수긍하는지 그러냐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9시가 넘어도 방송은 하지 않았다.

승객들은 "어떻게 된 거냐!"라며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이래서 배타고 여행은 절대 안 해야 한다!"는 불평에서 "짱꼴라들이 손님을 배에다 가둬놓고 점심까지 팔아먹으려고 시간을 질질 끌고 있다!"라는 억지도 나왔다. 내실에서 기다리려니까 답답한 모양이었다.

배에서 내려다본 동항. 간척지 둑과 부두에 쌓인 석탄, 철광석, 화력발전소가 보인다.
 배에서 내려다본 동항. 간척지 둑과 부두에 쌓인 석탄, 철광석, 화력발전소가 보인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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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 한 사람이 밖에 나가서 기다리자고 해서 모두 갑판으로 나왔다. 동항 부두가 한눈에 들어왔다. 풍부한 지하자원을 과시하듯 부두에는 석탄과 철광석이 쌓여 있었다. 아직은 소금기가 남아 있는 간척지도 보였다. 하얀 연기를 내뿜는 굴뚝은 화력발전소라고 했다.

오전 9시 30분이 지나서야 하선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몇 사람에게만 해당될 뿐이었다. 앞에서 기다리는 승객들이 하선을 마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비까지 한두 방울씩 떨어져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

승객들에게 고충을 설명하는 동방명주호 승무원 양병렬씨
 승객들에게 고충을 설명하는 동방명주호 승무원 양병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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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명주호 승무원 양병렬씨는 "부두에서 여객선터미널까지 버스로 5분 가까이 걸리는데, 3대만 운행되고 있어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며 "버스가 50인승이므로 부두에서 승객을 한꺼번에 많이 싣고 나가면 터미널이 막힌다"라고 설명했다.

동항에 9시 도착으로 되어 있는데 이렇게 늦느냐고 따지니까 양씨는 "배가 동항에 도착하는 시각이 오전 9시이지 하선하는 시각은 아니다"며 "여행사에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말라고 당부했는데도 말을 듣지 않는다"라며 난감해 했다.

양씨는 터미널을 확장한다고 해놓고 5년이 지나도록 손도 대지 않는 중국 측을 탓했다. 기간산업을 민간인에게 팔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지금(9월)이니까 이 정도이지, 성수기(여름) 때는 맨 처음과 마지막 하선하는 승객이 두 시간씩 차이 난다"고 덧붙였다.

배에서 내려가는 계단, 계단 간격이 넓고 흔들거려 위험했다.
 배에서 내려가는 계단, 계단 간격이 넓고 흔들거려 위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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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있으니까 버스가 도착했다. 배에서 내리는데 계단이 흔들흔들, 위험했다. 버스에 올라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40분. 배가 동항 부두에 정박한 지 두 시간이 지나서야 육지를 밟았다. 승객을 버스로 실어 나르면서 대합실이 비좁으니까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지루했다.

백두산 관광은 5월과 9월이 가장 좋아

중국이 아무리 개방을 했다지만, 사회주의 국가는 달랐다. 도시 홍보를 위해 거액의 출연료를 주고 연예인을 동원하거나 전단지를 수십만 장씩 제작하는 우리와 달리 여객터미널 대합실에서조차 사진촬영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동항(인구 12만)은 단동과 38km(버스로 50분 소요) 떨어져 있었다. 동항에서 북한 평양까지 거리는 220km, 서울까지는 420km라고 했다. 한나절이면 충분한 거리를 하루 가까이 걸리다니, 중요한 물건을 누군가에게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

중국 동항 여객선터미널 전경. 화장실이 멀리 떨어져 있어 무척 불편했다.
 중국 동항 여객선터미널 전경. 화장실이 멀리 떨어져 있어 무척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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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50분쯤 입국 절차를 마쳤다. 대합실을 통해 밖으로 나가니까 우리를 3박 4일 동안 안내할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인원을 점검하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50인승으로 시설이 별로인데, 가이드는 단둥 시장도 타고 다닌 차라며 자랑을 해댔다.

가이드는 30대로 유머가 풍부했다. 그는 북한에서 태어나 자랐고 소학교에서 대학교까지 평양에서 마쳤다며 그렇다고 탈북자로 오해하시지 말라고 해서 승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와이담도 수준급인 가이드는 자신의 얼굴과 신분이 언론에 공개되는 것은 싫어했다.

자신을 '화교'라고 소개한 가이드는 9월 말쯤 북한에 들어갔다가 내년 4월쯤에 다시 나온다고 했다. 백두산 관광이 5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라는 것. 백두산 관광은 천지(天池)를 볼 확률이 가장 높은 5월과 9월이 좋다고 부연했다.

가이드는 조선족 동포들의 변화에 대해서도 화두를 던졌다. 그는 중국에서 50대 이상 어른들에게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냐고 물으면 "한국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데 10대~40대들은 "중국의 소수민족"이라고 답한다는 것.

버스는 북한의 신의주와 접하고 있는 단둥을 향해 출발했다. 아침도 그곳에서 먹기로 했다. 식당까지는 1시간 정도 소요된단다. 최종 목적지 통화(通化)까지는 7시간쯤 걸린다고 했다. 뒤에서 "밤새도록 배타고, 오늘도 차 타고 댕김서 개고생허게 생겼네!" 소리가 들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동방명주호, #동항, #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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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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