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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상담을 받고 교육비 지출이 상대적으로 과도하다는 결론을 얻은 이영순씨(가명. 40세. 기혼)는 금세 울상이 됐다. 공사현장에서 기술자로 일하는 남편의 소득은 일정치 않지만 대략 평균을 내보니 220만 원 정도. 가게를 운영하다가 일이 잘 안 돼 큰 빚을 졌고, 현재 신용회복중인 남편에게 항상 적자를 면치 못하는 살림에 대해 우는 소리를 할 수 없어 작년부터 영순씨도 식당에 나가 일을 하는 중이다.

문제는 영순씨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밤 9시~10시 정도가 된다는 점이다. 아침에 좀 늦게 나가도 되니까 애들 아침은 영순씨가 챙기고, 남편이 상대적으로 일찍 퇴근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저녁을 먹이고 숙제도 봐주기로 합의했다. 그렇지만 늘 영순씨가 돌아오면 집안은 엉망이고 애들이랑 남편은 저녁도 안 먹고 TV만 보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안이 발표된 가운데 지난 8월 20일 서울 중계동 학원가에서 학생들이 학원으로 향하고 있다.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안이 발표된 가운데 지난 8월 20일 서울 중계동 학원가에서 학생들이 학원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언젠가는 학원에서 우리 아들이 오지 않았다고 하는 거예요. 분명히 학교 끝나고 학원 간다고 통화했는데... 순간 눈앞이 노랗게 돼서 하던 일 다 멈추고 집으로 달려와서는 애 찾아 미친 듯이 돌아다녔어요. 나중에 놀이터에서 찾았는데, 친구랑 뛰어 노느라 정신이 팔려서 학원에 못 갔다고 하더라고요. 그맘때 친구랑 어울려 노는게 나쁜 일도 아니고, 이상한 일도 아닌데 세상이 워낙 위험하다 보니 제가 좀 과민반응을 보인건지..."

갈 곳 없는 아이들의 사교육비가 월 100만 원

이 일 이후 영순씨의 두 아이는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방과 후 일정이 꽉 짜여졌다. 학교 끝나고 영어학원에 갔다가, 태권도 학원에서 운동하고, 보습학원에 가서 수업 듣고 공부하고 있으면 엄마가 퇴근길에 데려오기로 한 것이다. 둘째 딸은 피아노학원과 무용학원을 거쳐 보습학원으로 온다. 혹시 아이가 오지 않으면 반드시 전화를 달라고 해당 학원 선생님께 신신당부를 했다. 

"이렇게 일정대로 학원 보내면 아이 하나당 학원비만 50만 원이 들죠. 둘 합치면 백만 원이 드는데, 저도 줄이고 싶죠. 그런데 어딜 줄이면 좋을까요?"

피아노를 잘 치라고, 무용을 잘 하라고, 태권도를 잘 하라고 학원을 보내는 게 아니다. 그저 아이들이 학교 끝난 후 시간을 뭐든 하면서 보내야 하기 때문에 노느니 배우라고 보내는 학원이다. 돈 아끼겠다고 중간 시간을 빼면 아이들은 말 그대로 방치된다. 또래 친구들과 안전하게 어울려 놀 수만 있다면야 걱정이 없겠지만, 문제는 아이들이 방치되면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보습학원에서 그나마 애들 공부 진도와 숙제를 챙겨줘서 영순씨는 마음이 한결 놓인다고 한다.

"제가 일을 안 나가고 집에 있다고 해도 솔직히 애들 학습 진도와 숙제 이런 거 잘 챙겨 줄 자신이 없어요. 엄마가 모든 걸 다 잘 할 수는 없잖요. 제가 돈을 벌어야 그런 전문적인 곳에 애들 보내서 다른 애들보다 뒤떨어지지 않게 해줄 수 있죠."

중학교 2학년 아들을 데리고 정기적으로 게임중독 치료센터를 다니는 강주연씨(가명. 43세. 기혼)는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아들을 망친 게 아닌가 하는 한탄과 함께 눈물을 흘린다.

"제가 계속 집에 있었어야 했어요. 일자리를 구해서 돈 벌러 나가는 게 아닌데... 저희 부부는 평소 사교육비를 지나치게 쓰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생각해 잠실에서 경기도 외곽으로 이사했어요. 사실 교육이란 게 환경이 중요하잖아요. 다들 열심히 시키는데 내 애들만 안 시킬 수도 없는거구요. 애들도 어느 정도 컸고 또 엄마도 늘 뒷바리지만 해주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할 일 찾아서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게 교육적으로 좋다고 생각해 직장을 다시 구했어요. 남편과 나 둘 다 서울 강남에 직장이 있으니 같이 출퇴근하는 경우가 많았고, 집에 돌아오면 오후 8시 정도 되죠."

학원 안 보냈더니, 게임 중독에 걸린 아이

문제는 남매만 덩그러니 남겨진 시간이었다. 컴퓨터 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닌지라 아이가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기 시작할 때도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주연씨의 아들은 게임 중독으로 학교에도 나가기 어려울 정도다.

"뉴스를 보니 전체 초등학생 5%정도인 15만여 명이 하루 평균 3시간 이상 게임을 하는 게임 중독 증세를 보인대요. 밤 12시 이후에 게임을 중단시키는 '셧다운제'를 실시하겠다고 하지만 전 솔직히 원망스러워요. 게임 업체들은 순위에 오를 정도의 부자가 된다는 기사가 버젓이 뜨는데 우리 아들을 포함한 정말 많은 아이들과 그 가족들은 게임 중독에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게임산업이다 뭐다 하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떠들게 아니라, 도박처럼 아예 금지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판단력이 아직 제대로 서지 않은 아이들을 이렇게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리는 게임은 정말 무서운 거잖아요."

주연씨는 차라리 잠실에서 애들을 학원가로 뺑뺑이 돌렸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이 괴롭다는 주연씨는 아이들을 돌보는 '보육'이 부족한 현실에서 알량한 '교육적 효과'만이 강조되는 사교육 시장이 문제라고 강변한다.

"뭘 시키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어느 정도의 비용을 들여서라도 특정 시간 동안 아이들을 각종 유해 환경에서 보호해야 해요. 부모의 노력만으로는 버거워요. 그런데도 아들이 이렇게 된 게 엄마탓이라고만 하니..."

교육열에 빠진 엄마들이 조장하는 사교육 시장이란 말은 현실에선 소수의 특정 사람들 얘기였다. 그들이 아이들에게 100만 원을 쓰든 1000만 원을 쓰든 그것은 관심도 없다. 서민들에게 고민스러운 것은 안 쓸 수 없는 '보육비'로서의 사교육비다. 각종 유해환경에서 아이들을 지키고, 점차 올라가는 또래의 학습 수준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아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뛰는 부모들의 눈물이 현재의 '과도한 사교육비'의 실상이다.

"재벌 되었다는 그 게임 업체 젊은 사장한테 말하고 싶어요. 그렇게 돈 벌고 싶으냐고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렇게 번 돈, 게임으로 망가진 아이들을 위해 전문적인 클리닉 센터라도 열어 달라고요. 그게 사회적 도리 아닌가요."

덧붙이는 글 | 박미정 시민기자는 (사)여성의 일과 미래 재무상담센터에서 경제교육과 재무상담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교육비#보육비#게임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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