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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풍리 마을 이야기

충북과 강원의 경계지역에 있는 의풍리
 충북과 강원의 경계지역에 있는 의풍리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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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30분에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 마을에 닿았다. 공기가 차다. 몸을 풀기 위해 간단히 맨손체조를 한다. 그리고 나서 길을 함께 걸을 길벗 16명이 다시 배낭을 메고 소백산 자락길 제8코스 삼도 접경길로 들어선다. 접경길이라는 이름은 충북, 강원, 경북이 만나는 접경지대에서 나왔다.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를 중심으로 북쪽에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동쪽에 경북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가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풍리라는 이름은 1914년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만들어졌다. 그 때까지만 해도 송저(松底), 어은동(漁隱洞), 장항(獐項), 와동(瓦洞), 고사동(高寺洞) 같은 이름으로 불렸다. 이들 동네의 이름을 우리말로 풀어보면 솔안, 은거해 고기나 잡으며 사는 동네, 노루목, 기와골, 옛절골이 된다. 모두 깊은 산골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현재는 편의상 의풍 1리와 2리로 나눠져 있다.

의풍 2리
 의풍 2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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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차를 내려 걷기를 시작한 곳은 의풍 1리다. 의풍 1리에서 서쪽으로 가면 영춘면 소재지에 이르고, 북쪽으로 가면  김삿갓면 소재지에 이른다. 우리는 동쪽으로 이어진 935번 지방도를 따라 부석면 남대리 방향으로 간다. 이 도로는 영춘과 부석을 잇는 도로라서 영부로라고도 한다. 이른 아침이라 안개가 조금 끼어 있다. 추수를 끝낸 들판이 조금은 쓸쓸해 보인다. 서리를 맞은 고추대가 아직도 서 있고, 추수한 콩대가 밭에 세워져 있기도 하다.

곧 이어 영춘초등학교 의풍분교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타나고 의풍2리로 접어든다. 의풍2리는 용담, 어은동, 송포, 송저의 네 개 마을이 합쳐졌다고 마을 유래비에 쓰여 있다. 『정감록』에 보면 '양백지간구어인(兩白之間求於人) 삼풍지간구어종(三豊之間求於種)'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소백과 태백의 사이에서 사람을 구하고, 삼풍 지역에서 종자를 구하라는 뜻이다. 삼풍은 세 갈래 물길이 풍요로운 땅으로, 이곳 의풍의 옛 이름이다.

그들은 이 산골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의풍리에 사는 아주머니
 의풍리에 사는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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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길은 소백산 자락을 향해 조금씩 올라간다. 개울 주변으로는 갈대와 억새가 아침햇살을 받으며 조금씩 기를 펴기 시작한다. 마침 일터로 나가는 아주머니를 한 분 만난다. 손자의 나이가 서른이라고 하니 할머니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할머니라고 하면 너무 노인네 같아서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아주머니로 부르겠다.

"어디를 가시나요?" 하고 내가 묻는다. "콩이라도 털어보려구 해요" 라고 대답한다. 그 아주머니 인상도 좋고 반응도 괜찮아 대화를 더 나누기로 한다. "그래 무슨 농사를 지으시나요?" "농사는 무신 농사래요. 밭농사나 조금 지어요. 고추나 콩 같은 거 조금 하고, 논은 아주 묵혔어요." "올해 농사는 어떤가요?" "늘 그렇지요 뭐." "어떻게 바깥 어르신은 안 계신가요." "일찍 떠났어요."

밭에 널린 콩대
 밭에 널린 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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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자식들은?" "서울 살고, 수원 살고 그래요." "자주 찾아오나요?" "개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가끔 내가 올라가기도 해요." "그럼 손주도 있겠네요." "큰 손자는 벌써 서른이 됐어요. 근데 공불 한다 해 여태 장갈 못 갔어요." "요즘 젊은이들 결혼이 어려운가 보조 뭐." "그래두 제 때 장갈 가야 하는 건데." "조금 더 기다려 보세요. 좋은 일이 있겠죠. 저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을까요?"

그러자 그 아주머니는 옷을 매만지며 포즈를 취해 준다. 70/80 노인들은 산골 마을에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20 전후에 시집 장가들고, 자식 낳아 공부시키기 바쁘고, 먹고 살기 바쁜 그런 삶을 살아 왔다. 다행히 자식들은 대처로 나가 제 밥벌이는 하지만, 부모를 여유 있게 봉양할 입장은 못 된다. 그들은 그렇게 도시에서 살고, 부모는 그렇게 농촌에서 산다. 가끔 자식과 손주들 만나는 것에 만족하며. 그들은 여전히 농촌을 지키고 있다. 

현정사와 남대 분교

충북과 경북의 도 경계 의풍리와 남대리
 충북과 경북의 도 경계 의풍리와 남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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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풍2리를 지나 남대리로 이어지는 길은 잘 포장되어 있다. 오른쪽으로는 마포천이 흘러간다. 개울 건너로는 펜션들이 보인다. 이 지역이 어은과 용담 마을이다. 길을 따라 조금 더 가자 커다란 표지판이 나온다. '아름다운 충북으로 또 오세요'와 '전통과 문화 자연이 함께 하는 경북'이다. 이곳에서 충북과 경북의 도 경계가 갈리는 것이다. 물길도 하나, 사람도 하나, 환경도 하난데 갑자기 행정구역이 바뀌는 것이다.

행정구역은 대개 산과 강 그리고 바다 등 자연과 지형에 다라 바뀌어야 하는데 조금 이상하다. 1896년 지방 관제를 개편하며 전국을 13도로 나눌 때 일차적으로 경계가 지어졌고, 1912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현재의 틀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1914년 읍면을 통합하면서 현재와 같은 지명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1910년대에 현재의 경계가 확정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경계가 산도 아니고 강도 아니고, 길 가운데서 인위적으로 그어졌다는 사실이다. 백두대간의 마루금이 지나는 늦은목이재를 충북과 경북의 경계로 하는 게 맞다. 그곳에서 물길이 한강과 낙동강으로 갈리기 때문이다.

삼도의 접경 어래산
 삼도의 접경 어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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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경계를 지나면서 나는 잠시 지나온 영춘면 의풍리를 돌아본다. 경북에 들어서면  바로 삼도 접경공원이 나온다. 이곳을 지나면 부석면 남대리 마을로 들어서게 된다. 남대리는 남대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남대궐은 남쪽에 있는 대궐로, 영월에 있던 단종과 순흥에 있던 금성대군이 이곳에서 만나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남대리 뒷산의 이름 어래산(御來山)을 통해서도 단종 임금이 이곳에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래산을 보니 산세가 예사롭지 않다. 아침 안개에 덮여 신비롭기까지 하다. 어래산에는 최근에 지어진 현정사(現靜寺)라는 절이 있다. 사람들은 현정사보다는 이곳에 주석했던 현각 스님을 더 잘 알 것이다. 하버드대학교 출신으로 숭산스님의 법문을 듣고 출가하여 2001년 이곳 현정사 주지를 지냈다. 그 후 그는 화계사 국제선원장 등을 거쳤고, 현재는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설법과 포교활동을 하고 있다.

폐교된 남대분교
 폐교된 남대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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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99년『만행. 하바드에서 화계사까지』를 발간해서 일약 스타 스님이 되었다. 그 후 숭산스님의 법문을 묶은 『선의 나침반』『오직 모를 뿐』『세계일화』등을 냈으며, 2009년에는 『부처를 쏴라』를 냈다. 여기서 부처를 쏘라는 것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고정관념을 깨라는 뜻이다. 우리는 현정사까지 올라가지 않고 멀리 지나쳐만 간다. 현정사가 이번 걷기 코스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우리는 부석초등학교 남대분교에 이른다. 정문에는 '영부로 1018'이라는 새로운 주소가 적혀 있고, 그 아래에 안내문이 붙어 있다. "부석초등학교 남대분교는 2010년 3월 1일자로 폐교되었으므로 사용(출입)을 금합니다. 사용(출입)을 희망하시는 분은 부석초등학교장의 허가를 받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무단사용(출입)으로 일어나는 사고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일체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폐교된 지 1년도 안 되었다. 학교 건물에는 '올바른 인성과 창의력을 지닌 인재가 되자'는 교훈이 아직도 선명하다.

현정이라는 한글은 같지만 한자는 다릅니다.

살림집 여석헌
 살림집 여석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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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지나 우리는 935번 도로의 끝에 있는 남대교에 이른다. 이곳에는 주막거리가 형성되어 있고, 도로가 90°로 꺾어져 마구령으로 향한다. 이 길을 따라가면 부석면 소재지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소백산 자락길은 그 길을 따라 나 있지 않고, 기곡교를 지나 터골과 상신기 마을로 이어진다. 여기서부터는 본격적인 산골길이 시작된다. 그런데 이 산골에도 펜션이 여러 채 들어와 있다. 어떤 펜션에는 캠핑카도 보인다. 더욱이 이곳에는 지금도 계속해서 펜션이 들어서고 있다.

이곳 터골에서 우리는 옛집을 잘 살린 그리고 옛집을 그대로 이용한 정말 괜찮은 집을 하나 발견했다. 이름이 여석헌(餘石軒)이다. 여유가 있는 돌집 또는 여백이 있는 돌집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름에서 뭔가 넉넉함이 느껴진다. 이 보금자리에는 이이락, 신은숙, 다원, 우란의 네 식구가 산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하얀 벽에는 산, 달, 별, 물고기, 비누 방울이 그려져 있다.

작업실 현정공방
 작업실 현정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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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석헌 옆에는 슬레이트 지붕을 한 작업실이 있다. 이름 하여 현정공방(玄精工房)이다. 마루에 목조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목공예를 하는 분인 것 같다. 그런데 공방의 이름과 그 옆에 붙어 있는 표어들이 심상치 않다. 현정이라는 이름 자체도 정말 멋지다. 이 예술가가 추구하는 본질이 현과 정이라는 뜻이 된다.

현(玄)은 일반적으로 검을 현으로 말하지만, 그 본질은 쌓이고 쌓여 만들지는 축적의 상태이다. 예술이라는 것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음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정(精)은 또 어떤가? 예술가에게 있어서는 시간과의 싸움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들은 예술을 통해 뭔가 정곡을 찔러야 하고 정수를 보여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은 예술가의 혼을 상징한다. 인내와 정수를 아우르는 개념 현정, 정말 좋은 이름이다.

현정공방의 신발
 현정공방의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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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상은 그 옆에 적혀 있는 '인지이덕(仁之以德)'과 '인생(人生)은 송죽(松竹)처럼'에서도 잘 나타난다. 어진 마음은 덕에서 나온다는 뜻이고, 소나와 대나무 같은 절개와 곧음으로 세상을 살겠다는 뜻이다. 이런 산골에 와서도 한 수 배운다. 세상 어느 곳에 가나 이렇게 고수가 많다. 이 집을 나오면서 나는 가지런하게 놓인 신발을 본다. 슬리퍼, 흰 고무신, 검정 고무신, 운동화, 털신, 등산화. 모두가 한 켤레인데, 그런데 검정 고무신만 두 켤레다. 여기에도 뭔가 의미가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 소백산 자락길] 제8코스에서 제10코스까지 걸었다. 이번 걷기길의 명칭은 "삼도 접경길"이다. 삼도 접경길은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에서 백두대간의 늦은목이재를 넘은 다음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부석사까지 이어진다. 이번 기사에서는 삼도의 접경지역에 있는 단양 의풍리와 영주 남대리의 사람과 문화를 다뤘다. 앞으로 삼도접경길에 대한 기사를 4회 쓸 예정이다.



태그:#삼도 접경길, #의풍리, #남대리, #현정사와 현각, #소백산 자락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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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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