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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생태의 보고 굴업도가 골프장 개발이냐, 친환경 관광단지 조성이냐를 놓고 옹진군 주민과 인천 환경단체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최근 인천작가회의 등 문화예술인들과 4대 종단 종교인들이 직접 기행에 나서며 굴업도 지키기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지난 11월 17일과 18일 1박 2일에 걸쳐 진행된 인천불교총연합회-한국기독교장로회-생명평화기독교행동 단체의 굴업도 기행에 함께하여 주민들 의견도 듣고 현장을 둘러봤다. 천혜의 비경과 생태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굴업도 곳곳을 상, 하로 나누어 사진 속에 담아보려 한다. - 기자 주

연평산 정상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
 연평산 정상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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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짧게 둘러 본 풍경만으로도 굴업도는 정말 매력적인 섬이었다. 오후 6시께 끝난 여정을 마치고 섬주민인 이장님 부부와 오랜 대화시간을 가졌다. 그것도 점심만큼이나 맛나고 풍성한 저녁식사를 마주하고서.

최근 한 대기업이 굴업도 땅을 98%가량 매입해 골프장과 레저타운으로 개발을 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에 지역 문화예술단체와 종교단체가 나서서 보호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옹진군 주민들의 찬성 논리도 만만치 않아 향후 인천시 정책에 관심이 주목되고 있는 상황이다.

만화가 김광성씨가 현장에서 직접 그린 저녁식사 풍경
 만화가 김광성씨가 현장에서 직접 그린 저녁식사 풍경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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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 측 주민들 입장도 존중해주어야 하지만 이 기업의 개발계획은 이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굴업도에 요트장, 호텔, 콘도, 골프장을 건설해 해양 리조트로 만들겠다는 겁니다. 특히 1%를 위한 골프장 계획은 환경파괴가 불가피할 것이며 50만 평이 채 되지 않는 섬에 30만 평을 몽땅 차지해 결국 섬 전체의 생태자원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 서인수 이장

'1급 야생 동식물 서식지' 굴업도

연평산 가는 길목에 있는 해안가 풍경
 연평산 가는 길목에 있는 해안가 풍경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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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업도라는 섬 명칭은 섬의 형태가 사람이 구부리고 엎드려서 일하는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지어졌다고 하는데, 이는 대동여지도에도 표기가 되어 있다. 또 이곳에는 국제적 멸종 위기종이며, 천연기념물 323호이자 환경부지정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1급인 매가 매년 5~6월 번식기에 15마리 관찰되었다. 이밖에도 황구렁이, 먹구렁이가 유유히 섬을 누비고 있으며, 애기뿔소똥구리가 개머리초지에서 소똥 대신 염소와 사슴똥을 굴리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굴업도는 아열대성 식물과 아한대성 식물이 공존하고 있는 특이한 식물군락을 갖고 있다. 이는 굴업도 인근의 수심이 80~100m로 일반적 서해 수심인 20~40m에 비해 깊고 바닷물 온도가 주변해역에 비해 낮아 해류와 조류의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은 주변에 독특한 해식대를 이루었다.

연평산 정상에서 바라 본 하늘 풍경
 연평산 정상에서 바라 본 하늘 풍경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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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암으로 형성된 굴업도는 화산 폭발 후 그 재가 날아와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굴업도의 역사는 덕적군도의 역사와 함께하는데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와 같이 하며 고려사 권24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굴업도, 태풍과 해일에 모든 걸 잃다

고래 새끼로 보이는 생명체 시체가 해안가까지 밀려와 있다
 고래 새끼로 보이는 생명체 시체가 해안가까지 밀려와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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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천작가회의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굴업도는 이미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효종3년인 1652년에 덕적도에 백성을 모아 둔영(屯營)을 설치하고 만호(萬戶)를 두어 강화의 문호로 삼을 것을 명한 이후 사람들이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또한 굴업도는 연중 새우잡이를 하던 새우 파시(波市)와 민어 파시가 유명했다. 책 <옹진군향리지>에 따르면, 덕적군도 서쪽에 있는 굴업도와 백아도, 그리고 남쪽에 있는 울도, 방우리섬 부근은 예로부터 유명한 어장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전하고 있다.

감동 그 자체의 굴업도 바다 풍경
 감동 그 자체의 굴업도 바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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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업도의 민어 어장은 굴업도 북동쪽 청골과 굴업도 개머리 앞 바다, 덕물산 앞의 동뿌리 어장, 굴업도와 문갑도 사이의 굴업굴, 백아도와 굴업도 사이의 민어탄 등이 주요 어장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똥섬 앞의 준치여에서도 민어가 많이 잡혔다고 전한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들끓고 어장이 풍부했던 굴업도는 1923년 여름에 엄청난 폭풍우와 해일을 만나 시련을 겪는다. 굴업도 전체를 휩쓸고 간 태풍은 선박파괴 200여 척, 130호의 가옥유실 등 그야말로 아비규환, 아수라 지옥으로 변해 모든 것을 사라지게 했다. 그 이후로 사람의 흔적을 잃어 버렸던 것이다.

넓은 개머리초지에 올라 야영을 하러 올라가는 청년들의 모습
 넓은 개머리초지에 올라 야영을 하러 올라가는 청년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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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사이 천에 가까운 생명과 십만이 넘는 재산을 집어삼켰다는 굴업도는…(중략) 난데없는 폭풍에 섞이어 뿌리는 해우로 인하야 험악한 바람과 흉흉한 파도에 휩쓸리어 인가는 바람에 날리고 어선은 파도에 잠겼으며 사람은 용왕의 밥이 되었고 탔던 배는 산산이 깨어졌으며 사람 살리라고 부르짖으며 무정한 물결에 떠내려가니…" (당시 보도 기사 중에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섬

아름다운 숲 대상의 전경
 아름다운 숲 대상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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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사라져버릴 것 같았던 굴업도는 이내 그 자리를 되찾으며 1930년대 모두 15가구가 살았다고 전한다. 이때 원주민은 6가구였으며, 나머지 9가구는 피난민이었다. 어선도 소형어선 두 척뿐이었고, 소를 방목하기도 했다.

이후 일제 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소 방목과 땅콩농사가 주를 이루었으며, 넓은 초지로 인해 생태계가 안정되면서 관광지로 명성을 되찾았다. 이를 바탕으로 2009년엔 산림청과 생명의 숲이 주최한 '제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대상을 수상했다. 또 같은해 11월엔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주관한 '2009, 이곳만은 꼭 지키자! 환경부장관'상을 수상했다.

바다, 산 그리고 굴업도
 바다, 산 그리고 굴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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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업도, 아니 구로읍도는 고래로 바다가 인간에게 선사한 민어와 조기, 새우를 함께 나누는 황해바다의 노다지 섬이었다.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져 온갖 희망과 고통, 애환을 함께 한 역사의 섬이 바로 굴업도-구로읍도였던 것이다. 그런 굴업도를 가진 자들의 욕망의 배설구로 내버려둘 수는 없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모욕이자 우리 선조들이 보듬어왔던 문화에 대한 야만적 테러에 다름 아니다."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이희환 교수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한 대기업의 굴업도 개발논리를 신랄히 비판했다. 그는 굴업도 개발논란은 바로 자본의 독점논리가 빚어낸 천박한 관광개발논리라며 당장 철회하고, 인천시는 적극적으로 보존, 관리하는 도서정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화가 김광성씨가 연평상 정상에 올라 스케치를 하고 있는 모습
 만화가 김광성씨가 연평상 정상에 올라 스케치를 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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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세기 작가는 굴업도 운명은 인친 시민의 운명이라며 굴업도를 지키는 것은 곧 황해바다 역사를 지키는 것과 같다고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알고 보면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으로 원시 자연이 파괴되는 것도 문제지만 인간의 때가 오지 섬까지 손길이 뻗치는 현실은 문명의 또 다른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돈이면 다 된다는 속물성의 투영과 인간만을 위한 이기적인 만용이 빚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자연유산을 오롯이 지키려는 세계적인 추세에도 역행하는 일이다."

들어보라, 사람들아! 나는 굴업도다!

만화가 김광성씨가 그린 굴업도는 우리의 보배 그림.
 만화가 김광성씨가 그린 굴업도는 우리의 보배 그림.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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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잠시 들렀던 굴업도 여정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이틑날 아침 날씨가 좋지 않아 일출은 보지 못하였지만 연평산으로 가는 해변가를 거닐며 보았던 장엄한 자연의 숭고미 앞에서 인간이라는 나란 존재가 한없이 작아 보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가파르게 형성된 연평산 정상을 오르는 기분은 가보지 못한 사람은 누릴 수 없는 오묘함과 신비스러움 그 자체였다. 바다 저 끝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그대로 포용하면서 산속 깊은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올라가는 산행이란 그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굴업도 지키기 1박 2일 여행에 함꼐 했던 기독교, 불교 신도들의 단체 사진
 굴업도 지키기 1박 2일 여행에 함꼐 했던 기독교, 불교 신도들의 단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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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산 정상에서 굴업도 전경을 바라보는 그 전율은 이제 조금씩 사라져 가겠지만, 그곳에서 그 자연과 함께했던 기억은 아마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리라.

사람을 품고, 자연을 품고, 역사를 품고, 생태자원을 품은 굴업도는 이제 인천시민 모두를 품고 그곳에서 영원히 함께 하여야 할 소중한 우리의 고향임을 되새겨 본다. 

들어보라, 사람들아!
나는 구로읍도다.
사람들아! 여기에 역사가 있다.
사람들아! 나는 황해바다 어부들의 영혼이다.
사람들아! 나는 어스레기, 민어다.
사람들아! 굴업도의 운명이 곧 사람의 운명이려니.
오소서 오셔서 지키소서!
천년만년 터전을 지켜주소서! (이희환 시)

연평상 정상에서 바라 본 굴업도 풍경 모습
 연평상 정상에서 바라 본 굴업도 풍경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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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자료참조. 인천작가회의 <생명, 생태 그리고 역사를 품은 굴업도>



태그:#굴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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