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보니 이제 내복을 준비하라고 하더군요. 이제부터 날씨가 점점 추워진다는 의미일 텐데, 이런 계절에 몸을 따뜻하게 하려면 따끈한 수프도 제격 아닐까 싶어요. 특히 계절에 맞춰서 단호박을 넣은 수프는 참 고소하고 맛있지요. 영양도 만점, 보기에도 아름다운 한 접시 수프. 우리 다 같이 만들어서 가족 모두 즐겨 보자고요.
일본 영화' 달팽이 식당'에 '쥬뗌므 수프'라는 름의 단호박 수프가 등장합니다. 대다수 일본 음식영화가 그러하듯이 이 영화 역시 음식이란 매개체를 통해 다친 마음을 치료하는 것이 그 기둥 줄거리입니다. 미혼모의 딸로 태어난 한 여자애가 그 이유로 아이들의 놀림을 받자 할머니 집으로 가출을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할머니의 슬로푸드를 먹으며 음식이 지닌 가치를 알게 되지요. 이후 인도 식당에 취직한 그녀는 그곳에서 만난 인도인과 사귀면서 식당을 열 꿈에도 부풉니다. 하지만 인도남이 식당을 열 돈을 들고 도망가 버린 후 여자는 실어증에 걸립니다.
세상으로부터 상처를 단단히 받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여자는 그다지도 혐오하던 고향 마을에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름도 민망하고 보기도 민망하게 여자의 가슴을 꼭 닮은 고향 마을의 산을 바라보며 훌륭한 요리사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모든 자연 식재료를 품고 푸근히 그녀를 맞아준 가슴산은 말없이 그녀의 내적 성장을 지켜봐 주는 어머니와 동일한 이미지로 사용되었던 것이죠. 그리고 여자는 아기자기한 글과 그림으로 엮어낸 자신만의 레시피북을 펴들곤 어떤 음식을 만들지 고민하며 식당을 꾸려갑니다.
그녀의 식당에는 여러 사연을 가진 손님들이 음식을 먹으러 옵니다. 그리고 여자의 요리를 먹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소문을 듣고 어느 여중생이 찾아옵니다. 짝사랑하는 남학생이 자신의 마음을 알도록 해달라며 여중생은 식당을 예약하고 돌아가고 여자는 단호박과 그외 여러 채소와 과일을 넣고 음식을 만드는데, 그 요리의 이름이 '쥬뗌므 수프'입니다.
'I love you' 라는 뜻의 '쥬뗌므'라는 단어에 여고생의 마음을 반영한 이 음식은 지극한 사랑의 노력 없이는 만들기 어려운 음식입니다. 채소를 다듬고 육수를 끓여 붓고, 그 다음엔 매우 오랜 시간 저어가며 끓여야 하는 수프입니다. 자칫 주걱젓기를 놓쳤다가는 금세 냄비 바닥이 눌러 붙어 버리기에 굉장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채소포타쥬라는 이 음식의 장르나 단호박 수프 라는 이름보다는 어쩐지 여자가 붙인 명칭대로 '쥬뗌므 수프'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음식. 쥬뗌므 수프를 만들려면 닭고기 같은 걸 이용해서 육수를 푹 고아내고, 버터에 볶은 여러 가지 채소와 과일을 그 육수에 넣어서 뭉근하게 잘 끓여주는 게 관건입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채소 덩어리들이 풀어지면 다시 식혔다가 믹서에 곱게 갈아줍니다. 마지막으로 냄비에 모든 재료들을 넣어서 다시 끓이는데, 이때 생크림을 넣으면 더욱 고소해지는 건 물론입니다. 마지막으로 소금과 후추로 간해서 먹으면 그 음식에 얼마나 정성이 들어갔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타인의 상처나 아픔을 요리를 통해 개선해 주고 어느덧 자신의 삶에 자신감을 회복한 주인공. 결국 이 영화 제목처럼 느리고 오랜 시간 꾸준히 자신의 목적을 향해 가는 달팽이 같은 삶이 주는 삶의 철학을 음식으로나마 알게 된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