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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1일)은 두 달 만에 병원에 가는 날. 나는 요즘 한국에도 아주 흔하다는 '역류성 식도염' 때문에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다.

석 달 전쯤 한 개인병원에서 위내시경을 찍었다. 별다른 이상은 없었지만, 식도에 뭐가 생겼는데 혹시 그것을 내시경으로 치료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라며 대학병원에 의뢰해 줬다. 대학병원에서는 그냥 식도염일 뿐, 약으로 치료하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약을 처방받아 먹고 있었고, 이제 두 달치를 다 먹어 병원을 다시 찾은 것이다.

의사는 상태가 좀 호전된 것 같으니, 전보다 약한 약을 처방해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도 '3분 진료'를 마치고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서 약을 구매한 후, 사무실로 출근했다.

대학병원 이용 후 약을 처방받자, 본인부담금이 절반 찍혀 나왔다. 지난 10월 이후 '대형병원 쏠림현상 방지'를 위해 제도가 바뀐 탓이었다.
 대학병원 이용 후 약을 처방받자, 본인부담금이 절반 찍혀 나왔다. 지난 10월 이후 '대형병원 쏠림현상 방지'를 위해 제도가 바뀐 탓이었다.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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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봉지를 보니, 전과 달라진 점이 있었다.

약제비 총액: 7만 4470원
본인부담금: 3만 7200원
보험자부담금: 3만 7270원

어라? 내가 약값의 절반을 냈네. 전에는 30%만 내가 부담했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늘어난 약값과 쉬쉬 하려는 대학병원 사이에서

나는 인터넷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지난 10월부터 보건복지부가 정한 '52가지 일부 만성질환과 경증질환(감기, 결막염, 고혈압, 당뇨 등)'로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약값 본인부담금 50%를 내도록 제도가 바뀐 것이었다(2차 종합병원급은 40%, 의원급은 이전과 동일한 30%). 일명 약값 본인부담금차등제가 그것이다.

이른바 '대형병원 쏠림현상'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즉, 대형병원까지 가지 않아도 될 경미한 환자를 동네의원으로 유도하기 위해, 경증질환자가 대형병원을 찾을 경우 약값에 대한 본인부담금을 늘린 것이다. 나의 경우도 '경증질환'에 포함됐기에, '대형병원에 갈 만한 병이 아니'라고 분류돼 본인부담금이 50%로 찍혀 나온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했다. 대형병원 쏠림현상이 워낙 심하다고 하니, 저렇게라도 해서 균형을 맞춰보려 하는 거겠지 뭐.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그런데 왜 대학병원 측에서는 나에게 아무런 공지나 최소한의 정보전달도 안 해주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당신은 대학병원까지 오지 않고 의원급에서 치료해도 되는 질환이니, 그 쪽으로 의뢰해줘도 되겠습니까?"라고 하거나 최소한 "제도가 바뀌어서 당신 정도의 경증은 약값 본인부담금이 50%로 올랐는데, 그럼에도 여기서 치료를 하고 싶으면 그만큼의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라는 공지를 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대학병원은 이런 말을 전혀 하지 않았으며 이전과 똑같이 진료하고, 다음 진료예약까지 잡아 주었다. 변경된 사항에 대한 최소한의 '안내 포스터'도 본 기억이 없었다. 내가 간 병원만 그런 걸까? 뉴스를 검색해보니, 제도시행 후 각 대학병원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 '홍보 게시판' 등지에 구색 맞추기 식으로 안내문을 내거는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심지어는 A4사이즈의 작은 문건으로 붙이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숨겼으면 숨겼지, 굳이 알리려 할 이유가 없지 않았을까. 실제 언론에 보도된 걸 보니, 병원들은 약값 본인부담금 인상으로 인해 환자들이 빠져나가면 '손해'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1·2·3차 병원 간 협업체계가 전혀 작동되고 있지 않고, 심지어는 규모가 다른 의료기관끼리도 불필요한 경쟁을 하는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동네의원으로 옮기자니 영 꺼림칙한데...어쩌지?

약값 본인부담금이 마음에 걸렸던 터에 1달 후 예약해 놨던 대학병원 진료를 취소하고 동네병원으로 가볼 생각을 하던 찰나, 한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래도 석 달 정도를 다닌 병원이고, 계속 상태를 지켜본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게 좋지 않을까?'

계속 내 상태를 체크해 온 의사에게 병이 완치될 때까진 그냥 진료를 받는 게 낫겠단 판단이 들었다. 돈을 더 내는 게 아깝지만, 어쩌랴. 병원 간 협진이 거의 이뤄지지도 않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 아닌가. 그냥 다니던 데 다니는 게 안전하지 않을까.

영국사람들은 어떻게 병원을 이용하나
▲ 영국병원 nhs 시스템 영국사람들은 어떻게 병원을 이용하나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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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지난 9월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 기획의 일환으로 영국 NHS(National Health Service. 국가보건서비스)를 둘러보고 왔던 기억이 났다. NHS에는 장·단점이 모두 상존해보였지만, 병원 간의 협진·협업체계는 확실히 잘 갖춰져 있었다.

국가가 관리하는 의료체계의 특성상, 우리처럼 불필요하게 동네의원과 대학병원이 환자를 두고 경쟁하는 경우는 없다. 2차 의료기관인 NHS병원과 1차 의료기관인 GP(General Practitioner, 일반의)의 상시적인 협진·협업·기록공유가 잘 이루어졌다. 환자는 어느 병원을 가든 안심하고 진료를 받았다. 병이 심하면 GP가 병원에 의뢰하고, 상태가 호전되면 병원이 GP에게 다시 돌려보내는 체계가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었다.

근본구조 안 건드리고 서민부담만 늘린 대책, 혼란스럽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 병원 간 체계는 유명무실하다. 1·2·3차 병원이 제각각 이윤동기에 의해 '각자도생'하는 구조다. 약값 본인부담금 차등제를 두어 '대형병원 쏠림현상'을 줄여보자는 게 보건복지부의 의도지만, 현장의 병원들은 제도시행에 역행하는 행태만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은 도외시한 채, 환자들에게만 부담을 지우는 약값 본인부담금 인상 방안이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직접 경험해보니, 병원을 이용하는 평범한 시민으로서 이번 보건복지부의 약값 본인부담금 차등제는 매우 불편하고 불쾌하다. 1달 후, 난 다니던 대학병원에 가야 할까? 동네의원으로 옮겨야 할까? 대학병원에선 은연중에 '그냥 우리 쪽에 있어'라고 속삭이는 듯하고, 정부는 약값 인상을 통해 '다른 곳으로 가라'고 재촉하는 듯하니 말이다.


태그:#대학병원, #대형병원, #약값 본인부담금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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