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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돈을 모으고 불리는 금융상품은 대부분 예금/적금이 절대적인 주류였다. 그러다 보니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어떤 은행이 금리를 0.1%라도 더 줄까 하는 것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원금이 보장되는 예금/적금 이외에 투자상품인 펀드까지도 고려대상이 됐다. 펀드는 원금손실을 각오하고 하는 투자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니 선택에 신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 펀드를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펀드는 장기적 목표를 갖고 최소 3년 이상 적립식으로 투자할 필요가 있다. 주가가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주기는 평균 3년인데, 적립식 투자로 큰 수익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최소 3년 이상 꾸준히 장기적으로 투자해야 더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다."  (<초보주부의 재테크 완전정복> 펀드 투자 입문하기 <레이디 경향> 기사 인용)

우선 자신의 투자목표부터 세워야 한다. "막연히 '여윳돈이나 모아야지'라고 생각하면 그때그때 유망한 상품을 좇다가 실패하기 쉽다"며 " 예를 들어 '7년 후 자녀의 대학 입학 비용 1억원을 모으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투자원칙을 수립한다. (<한국경제> 우리투자 증권 연구원 인터뷰 인용)

이처럼 시중의 수많은 재테크 서적, 경제강의, 증권회사 직원이 하나 같이 비슷한 답변을 해 준다. 왜 돈을 모으는 것인지 재무목표를 세우고 적어도 3년 후에 써야 할 재무목표에 3년 이상 꾸준히 투자하는 것이 펀드투자라는 것이다. 그럼 실제 현실에서도 이 주장에만 충실히 따르면 성공할 수 있을까?

아이 대학 입학할 때 반토막 난 주식 시장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후폭풍으로 코스피가 연일 하락했던 지난 8월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증권거래소 영업점 앞에서 한 시민이 고개를 숙인 채, 코스피 시황판을 지나가고 있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후폭풍으로 코스피가 연일 하락했던 지난 8월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증권거래소 영업점 앞에서 한 시민이 고개를 숙인 채, 코스피 시황판을 지나가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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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3년 이상을 꾸준히 투자하라는 이야기는 주가는 오르내림을 반복하고 단기적으로는 떨어질 수 있지만 장기적(적어도 3년 이상)으로는 오를 것이라는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 가능하다. 실제로 금융 위기가 가장 최고조에 달했을 때 2008년 주가는 900포인트 선까지 떨어졌지만 3년 후인 2011년에는 다시 2000포인트를 돌파했다. 이 현실을 두고 사람들은 "봐라, 3년 꾸준히 투자하면 손실을 회복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하게 짚고 넘어갈 사항이 하나 있다. '주가는 오를 것이니 기다리면 회복될 것이다'라는 믿음이 맞냐 틀리냐 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내가 과연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사례 ①] 2003년도에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한 A씨, 아이의 대학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가 6년 후에 쓸 생각으로 펀드를 선택했다. 6년을 적립식으로 꾸준히 하다 보니 수익율도 높았다. 2006-2007년 펀드 열풍 때는 자신의 선견지명에 스스로 흐뭇해 하기도 했다. 대학 학자금은 충분히 마련되었다 생각하고 안심하고 있었던 찰나 2008년 금융위기가 닥쳤다. 그동안 높은 수익률 덕분에 커진 펀드 잔고는… 그러나 반토막이 났다. 막상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는 2009년에까지도 그 펀드는 회복되지 못했다.

A씨의 경우 전문가들의 충고대로 금융상품을 선택하고 실천했다. 아이 대학등록금이라는 재무목표를 명확히 했고, 6년을 꾸준히 적립했다. 주식시장이 오르면서 수익률도 높았다. 그러나 막상 그 돈을 쓰려고 할 때 주식시장이 급락하는 위험을 맞이했다. 시장의 등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투자상품은 막상 내가 돈을 쓰려고 하는, 그래서 미룰 수도 없는 바로 그 시점(아이의 대학입학)에 나를 배신하기도 한다.

더 오를 것 같은 욕심은 통제하기 어렵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후폭풍으로 코스피가 연일 하락했던 지난 8월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시황판에 코스피의 하락세가 표시되어 있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후폭풍으로 코스피가 연일 하락했던 지난 8월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시황판에 코스피의 하락세가 표시되어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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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②] 2008년 금융위기 때 주식시장이 반토막이 나자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 B씨. 나름대로 지금이 투자 적기라 생각하고 3년 후 결혼자금 마련을 목표로 펀드에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시장은 B씨의 예상대로 오르기 시작했고 펀드 수익률도 2011년 2000포인트를 넘어서면서 100% 이상을 기록했다.

그런데 2011년 5월 결혼을 앞둔 B씨는 결혼자금 때문에 막상 펀드를 환매하려고 하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 주식 시장이 오르고 있는데 지금 환매를 하는 것이 손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B씨는 환매 대신에 전세자금대출을 받아서 신혼집을 마련했다. 한창 잘 나가는 주식시장을 보며 이자보다는 펀드 수익률이 더 높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앞에 A씨는 시장이 하락한 경우이지만 B씨는 반대로 시장이 상승한 경우다. 시장이 상승해서 이익 난 아주 행복한 경우인데, 이 때에도 문제는 발생할 수 있다. 더 오를 것 같다는 욕심에 쉽사리 환매를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건 B씨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다. 상승장에서는 앞으로도 계속 오를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가 사람들에게 퍼져나가고 더 오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처음 결심대로 실천해야 한다는 냉철한 이성은 이 장밋빛 믿음에 희생양이 되기 쉽다. 그 결과 내 돈을 놔두고 빚을 얻어 추가로 이자까지 지불하겠다는 결정을 하고 만다.

반드시 써야 할 돈은 100% 확실하게 마련하라

펀드에 가입한 후 받은 위험등급 초과 가입 확인서.
 펀드에 가입한 후 받은 위험등급 초과 가입 확인서.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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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를 통해 확인한 것처럼 원금을 손해 볼 수도 있는 투자상품은 전문가들이 앵무새처럼 이야기하는 '3년 이상 투자해라' 같은 투자 기간은 중요하지 않다. 아무리 오래 투자했다 하더라도 막상 내가 돈을 써야 할 바로 그 시점에 시장이 폭락하면 원금은커녕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상승장인 경우에도 더 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투자한 돈은 그냥 놔두고, 정작 쓸 돈은 빚을 내는 경우도 생긴다.

주식시장이 떨어지면 손해보기 싫어서 환매를 못하고 그냥 내버려 둔다. 오르면 더 오를 것 같은 욕심에 쉽사리 현금화를 하지 못한다. 이렇게 손실을 회피하고 싶어 하고, 욕심에 약한 투자 심리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다. 이 앞에서 처음에 내가 결심했던 자녀 대학등록금, 결혼자금이라는 재무목표는 그저 허황된 구호로 끝나기 쉽다.

돈은 왜 모으고 불릴까? 가장 근본적인 물음을 떠올려 보자. 돈이 필요한 바로 그 시점에 남에게 빚내지 않고 내 돈으로 쓰기 위해서다.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은 그래서 3년 이상이다, 장기냐 단기냐 하는 투자기간이 중요하지 않다. 과거와 미래에 아무리 수익이 난다 한들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써야 할 그 시점에 내 호주머니에 그 돈이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 투자는 실패한 것이다. 내가 반드시 써야만 하는 돈을 투자를 통해서 모으려고 하는 의사결정은 그래서 위험하다. 시장이 오르던 내리던 투자한 그 돈을 쓸 수 없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써야만 하는 돈, 그 돈 쓰기를 미룰 수 없는 돈은 100% 실현 가능한, 그리고 예측 가능한 안전한 방법으로 마련해야 한다. 3년 미만 단기에 쓸 돈은 예금·적금, 3년 이상 저축할 돈은 펀드라는 이야기를 무슨 원칙이나 공식처럼 생각하지 말자. 그건 단지 이론일 뿐 실제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만 더 덧붙인다면 반드시 쓰지 않아도 되는 돈이라야 투자를 할 수 있다는 건데 한번 따져보자. 우리 살림살이에 쓰지 않아도 되는 돈, 시장이 오를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돈이란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도 거의 없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지영 기자는 현재 (사)여성의일과미래 재무상담센터에서 경제교육과 재무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태그:#펀드, #투자, #저축, #재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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