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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가 가져다 준 일주일의 긍정

지난주 인수봉 '여정길'을 톱로핑(top roping)으로 오른 뒤 바위를 오르는 기쁨의 일부를 맛보았다. 그 기쁨이 한 주간 내 생활에 긍정적 기운으로 지속되었다. 암벽을 오르는 그 몰입의 시간이 내 생활의 부정과 긍정, 냉소와 활력의 경계가 되었다.

새로운 도전은 세상을 긍정하고 정체된 일상에 활력을 부여하는 미덕이 있다.
▲ . 새로운 도전은 세상을 긍정하고 정체된 일상에 활력을 부여하는 미덕이 있다.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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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2일, 다시 주말. 저녁 퇴근길에 본 하늘의 달은 옅은 구름 위를 걷고 있었다. 인수야영장에서 밤을 보내고 있을 동료들에게 전화를 했다. 그들은 일요일 아침 '인수봉A 변형' 루트를 등반하기위해 그곳에 있었다.

"달이 나를 인수봉으로 불러요!"

잠을 설친나는 새벽이 오기를 기다려 도시락을 싸서 우이동 도선사로 향했다. 도선사주차장에서 동료들(이주성, 박흥성, 조원구, 백선숙, 이경순, 이찬성)과 합류해 잔치국수 한 그릇씩을 비우고 인수야영장으로 향했다. 배낭이 지나치게 무거워 흥성이와 원구에게 짐의 일부를 나누어 주고 4구역 야영장에 도착하니 산에서 밤을 세운 동료들이 우리를 반겼다.

이승룡 강사님의 재촉으로 바로 인수봉 대슬랩으로 향했다. 대슬랩 오른쪽에서 장비들을 착용하고 인수A길을 오를 준비를 마쳤다. 다른 암벽팀들도 속속 모여들었다.

새롭게 개발된 등산장구들은 불가능한 길을 갈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컨트롤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새롭게 개발된 등산장구들은 불가능한 길을 갈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컨트롤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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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봉의 정상을 목표로 오르기는 처음이라 내심 긴장이 되었다. 잠을 설쳤기 때문에 컨디션은 온전치 못했다. 과연 오늘 정상까지 오를 수 있을까, 아니면 동료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을까가 의문이었다.

100m 허공에서 상대를 100% 신뢰하는 아름다움

첫 피치는 각도가 있는 슬랩(slab)이었다. 조금은 긴 피치이기에 다른 친구들이 모두 오를
때까지 기다렸다. 한 라인은 베이직(등강기, rope clamp)으로 연등을 하고 한 라인은 확보만 하고 오르기로 했다.

나는 베이직이 없기에 슬랩으로 시도했다. 두 걸음도 떼지 않아 미끄러지고 말았다. 순간 당황했지만 손으로 바위를 짚고 그냥 미끄러졌기에 다친 곳은 없었다.

수직 벽의 바위를 오를 때 자신과 바위를 100% 신뢰하지 않으면 단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수직 벽의 바위를 오를 때 자신과 바위를 100% 신뢰하지 않으면 단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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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이 주의를 주었다.

"미끄러지는 상황이 발생하여도 절대 로프를 잡지 마라. 손으로 바위를 밀기만 해라. 그럼 절대 다치지 않는다."

다시 정신을 집중하고 한 피치를 올랐다. 유난히 마음이 더 길게 느껴지는 구간이었다.

두 번째 피치를 출발하기 위해 먼저 오른 동료들이 피치 종료지점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흥성이가 빌레이를 보며 친구들을 격려했다. 신석씨가 복통을 느껴서 주성이가 등을 두드려 이완시켰다.

두 번째 피치는 3/4 정도가 크랙 라인(crack line)과 1/4이 디에드르(diedre 아귀벽, 책을 펼쳐서 세워 놓은 듯 한 모양의 바위)가 연결된 구간이다. 크랙은 잘 통과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디에드로였다. 양 팔을 벌리고 양다리의 버팀으로 올라야 하지만 나는 다리에 힘이 없다는 생각에 그 자세를 시도해 보지도 못하고 어깨와 다리를 이용했다. 힘이 다 소진되어 위로도, 아래로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먼저 오른 부대장이 발의 동작 하나하나를 일러주며 격려했다. 아래를 보니 이미 아득했다. 온힘을 다해 위로 오르는 수밖에 없다.

두 번째 피치를 겨우 오르자 자기확보지점에 동기 몇 명이 다음 구간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100여m 높이의 작은 바위테라스에 서로 목숨을 의지하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서로가 목숨을 담보한 상황에 상대를 100% 신뢰하는 아름다움일 것이다. 시선을 바위 아래로 주자 나는 이미 구름위에 있는 지경이었다.

바위를 오르는 일은 자연을 더욱 경외하는 마음을 갖도록 한다.
 바위를 오르는 일은 자연을 더욱 경외하는 마음을 갖도록 한다.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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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맑아서인지 올해의 마지막 암벽을 오르기 위해 옆 바위에는 모두들 서로 구호를 외치며 바위에 달려 있다. 이들은 모두 무엇을 위해 목숨을 담보로 절벽을 오를까?

선등자의 능력은 경험의 총합

이곳까지가 인수A 1구간이고 우리는 1구간을 둘로 나누어서 왔다. 여기에서 변형된 루트로 오른다.

3번째 구간은 직벽을 왼쪽 옆으로 3미터정도 횡단하는 것이다. 엄청난 난이도로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에 가슴이 뛴다. 한발 한발을 바위와 내발을 믿고 딛으라지만 난 믿을 수가 없다. 수직바위는 내 엄지발가락 하나 걸칠 공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미끄러지고 말았다. 이 한 번의 경험이 추락에 대한 공포에 내성을 만들어주었다. 크럭스(crux 등반에서 가장 어려운 지점)를 통과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믿을 수 없었던 바위와 내발도 믿을만해졌다.

바위를 오를 때 언제든지 추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안전할 수 있다.
 바위를 오를 때 언제든지 추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안전할 수 있다.
ⓒ 강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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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째 구간은 크랙을 따라 4~5미터 오르다가 왼편에 큰 바위가 있어 오른쪽으로 오른다. 손가락을 걸 곳 하나 없는 바위는 나의 모든 에너지를 총동원하라 한다. 힘겹게 몇 발을 떼고 나니 위에서 빌레이를 보고 있는 현숙이가 보인다. 150m 높이의 바위에 매달린 상태에서는 누군가의 얼굴을 대면하는 것조차 위안이고 용기가 된다.

이종술 강사님과 성준이가 기다리고 있다. 빌레이 보는 현숙이에게 미안했다. 나도 빨리 빌레이를 볼 수 있어야 할 텐데...  미안한 마음을 걷고 바로 위로 향했다. 짧은 피치이지만 둥글고 커다란 바위가 머리 위에 버티고 있다. 내 몸의 서너 배가 되는 오버행 바위를 어떻게 오를 수 있을까? 멀리 강사님이 코치를 했다. 알려준 방식대로 한발을 왼쪽 크랙에 올리고 오른손을 둥근 바위 위에 올리니 잡히는 것이 있었다. 바위의 작은 돌기하나, 그것이 그 바위를 오르는 실마리였다.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것이 한마디의 코치가 그것을 가능케 했다. 경험, 이것이 결국 선등자의 능력인 것이다. 경험을 나누어 준 것에 난 다시 한 번 머리숙였다.

나는 바위를 오르고 나서야 바위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바위를 오르고 나서야 바위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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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코스는 '영자크랙길'. 일자의 크랙 중간 중간에 동그란 홈이 있었다. 그곳을 밟고 오르니 이 크랙길은 그리 어려운 곳은 아니었다. 강사님은 이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가라!'는 힌트만 주고 코칭을 종료한다고 선언했다. 이제부터는 스스로를 신뢰하는 일만 남았다.

혜정이와 함께 경사길을 밟아 올라가니 참기름 바위가 나온다. 4m쯤 밖에 안 되는 바위였지만 확보 없이 통과하는데는 무엇보다 두려운 마음이었다. 크럭스에서도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실수가 만회될 수 있는 믿음 때문이었던 것이다. 나는 후배들에게 또한 내 딸․아들들에게 마음껏 실패를 허락할 수 있는 안전로프가 되어야겠다.

이제 정상이 눈앞이었다. 상현달 같은 배부른 바위가 마지막 난관이었다. 위를 향해 소리를 지르니 선등한 사람들이 바위난간으로 왔다. 현숙이가 미끄러짐을 조심하라고 일렀다. 나는 불안해서 올라가지 못하고 있으니 위에서 퀵드로우에 슬링을 내려주고 강사님이 디딤을 만들어 주어 마침내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인수봉 정상. 나는 1년간의 노력으로 드디어 그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정상에는 전설처럼 회자되는 커피자판기는 없다. 그러나 바위가 있다. 수백만 년 그렇게 있어왔던 그 바위가 있다.
 인수봉 정상. 나는 1년간의 노력으로 드디어 그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정상에는 전설처럼 회자되는 커피자판기는 없다. 그러나 바위가 있다. 수백만 년 그렇게 있어왔던 그 바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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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 인생의 크럭스는 결국 자신

드디어 인수봉 정상에 오른 것이다. 정상을 한 바퀴 돌고 바위에 기대어 바위의 냄새도 맡았다. 인수 머리에 올라앉아 백운대를 바라봤다.

경순이가 백운대를 향해 말했다.

"계단으로 오르는 분들이 바위를 타고 오르는 모험의 맛을 알 수 있을까? 다시 계단을 밟아 내려가는 이들이 로프를 타고 수직 바위벽을 내려가는 통쾌함을 알까?"

한국등산학교에 입교 하고, 매주 도봉산에서 훈련을 하고, 바위에 매달리는 두려움과 싸우고... 지난 1년간의 인수봉 정상을 향한 노력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인수봉 정상에서의 나. 인수봉을 오르면서 '나에게 가장 대단한 적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안의 게으름, 망설임, 비열함, 회피, 좌절... 내 인생에서 이것들 보다 더 대단한 적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인수봉 정상에서의 나. 인수봉을 오르면서 '나에게 가장 대단한 적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안의 게으름, 망설임, 비열함, 회피, 좌절... 내 인생에서 이것들 보다 더 대단한 적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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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와 강사님들을 통해 서로 신뢰하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도 땀 흘리며 체험했다. 또한 불가능해 보인 목표를 향했던 나를 칭찬했다. 결국 50대 흰머리 성성한 대한민국 아주머니의 인수봉 정상 등정은 '자신 인생의 크럭스는 결국 자신'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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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복자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등산일지

●암벽등반 | 인수봉A 변형

●일시 | 2011년 11월 13일 일요일

●팀원 | 이승룡강사, 홍명표(55기선배), 조용준대장, 조원구, 백선숙, 박흥식, 송재필, 이찬성, 이주성, 박성준, 이경순, 김영신, 강민지, 김신석(영신남편 75기), 김현숙(75기), 조제희(75기)



태그:#인수봉, #한국등산학교, #등산, #암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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