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책겉그림 이은화의 〈가고 싶은 유럽의 현대미술관〉
책겉그림이은화의 〈가고 싶은 유럽의 현대미술관〉 ⓒ 아트북스
도발적인 현대미술의 거장들이 살아 숨 쉬는 곳. 그곳이 바로 영국의 사치 갤러리(The Saatchi Gallery)다. 영국 미술계의 '불량소녀'라 불리는 세라 루커스와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들>로 유명한 트레이시 에민도 그 속에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 특히 순수제작비만 220억 원이 들어갔고 미국의 헤지펀드사가 1000억 원에 구매한 데이미언 허스트의 다이아몬드 해골 작품〈신의 사랑을 위하여도 그곳에서 출발했다.

이은화는 <가고 싶은 유럽의 현대미술관>에서 사치 갤러리가 YBA(Young British Artists)의 신화를 만드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녀가 현대 미술관 기행을 그곳에서부터 시작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오늘날 미술계의 경향은 사치 갤러리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사치 갤러리는 2003년까지 템즈 강변에 있다가 2008년에는 첼시 지역으로 옮겨갔다.

현대미술계의 거장 하면 누굴 떠올릴 수 있을까. 대부분 사람들은 피카소를 꼽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현대 미술계에 가장 영향력을 준 작가로 마르셀 뒤상을 추켜세운다고 한다. 이은화는 그가 '개념미술'의 창시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른바 일상적인 물체를 미술작품으로 승화시킨 원조가 바로 뒤샹이라는 이야기다. 한국의 박남준도 그런 흐름 속에 있지 않았을까? 뒤샹의 화제작인 <샘>이 자리 잡고 있는 영국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미술관은 그래서 유명하다고 한다.

루브르는 프랑스와 파리를 꼭짓점으로 잇는 삼각기둥이다. 이은화는 책에서 루브르의 역사도 짬짬이 소개한다. 본래 그곳은 왕실의 궁전이었는데, 프랑스 혁명과 함께 공공 박물관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물론 우피치 미술관이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메디치 가문의 부와 명예를 과시하기 위한 일이었을 뿐 본격적인 공공 미술관의 역사는 루브르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물론 초기 개관 당시에는 하루에 두 시간만 개방했다. 또한 한 번에 20~30명씩 그룹별로 입장해야 했고, 엄격한 감시도 뒤따랐다고 한다. 이런 조치들은 부패한 왕실에 분노하고 있던 민중들을 의식한 탓이었다고 한다.

루브르가 과거와 현대를 조화롭게 연결할 수 있었던 배경이 어디에 있을까? 루브르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비롯해 신고전주의 대표화가인 다비드의 <나폴레옹 대관식>, 앵그르의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 낭만주의의 대가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 등 수많은 명화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하지만 현대적인 감각도 놓치지 않는다고 한다. 이은화는 과거와 현대를 잇는 비결은 박물관 앞 유리 피라미드에 있다고 꼬집는다. 중국계 미국 건축가인 페이(I.M. Pei)가 설계한 피라미드는 고고학적 기원과 현대적인 투명성을 연결했고, 지하에 내려와 있는 역피라미드는 바닥의 돌로 만든 작은 피라미드와 황홀한 대조를 이룬 것이라 평가한다.

"그런데 콧대 높기로 유명한 세계 최고의 명성도 돈의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하는 모양이다. 200년이 넘는 루브르 박물관 역사상 처음으로 해외에 분관을 유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것도 중동의 사막 위에. 2004년부터 아랍 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는 이웃한 두바이와 경쟁하면서도 서로 보완할만한 강력한 개발 주체를 문화와 교육에서 찾고 거액을 들여서야 최고의 문화 브랜드를 유치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2005년에 프랑크 게리가 디자인하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분관 유치를 성사했고, 지하 하디드와 안도다다오도 초청해 각각 공연예술센터와 해양박물관 설계를 맡았다. 그리고 지난 2007년에는 프랑스 정부와 긴 협상 끝에 마침내 루브르 분관 유치에 성공했다."(본문 173쪽)

그 밖에도 이 책은 회색빛 공업도시를 하루아침에 신데렐라로 만든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 Bilbao), 녹슨 강철을 조각해 만든 얼굴 형상 1만 개를 바닥 전체에 깔아 놓고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유대인들을 기억하게 하는 설치작품<떨어진 나뭇잎들>이 있는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Judisches Museum Berlin) 등을 소개한다. 특히 자본주의가 예술의 본질을 오염시키는 현실을 비판한 작품들을 보유하고 있는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 미술관도 선보여 준다. '미술(Art)에 M을 더하면 시장(Mart)이 된다'는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첫 배낭여행을 떠난 1990년대 초부터 지난 2009년까지 유럽의 미술관들을 지속적으로 둘러보고 또 경험했던 이은화. 그래서인지 그녀는 이 책을 단순한 기행문이나 소감문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자신과 똑같은 체험을 공감하도록 강요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 책이 "독자들이 지닌 각자의 눈과 각자의 방식으로 유럽의 미술관을 즐길 수 있도록 돕는 안내자와 큐레이터 역할에 충실하고 싶다"며 그것으로 그녀는 족할 뿐이라 고백한다.

덧붙이는 글 | <가고 싶은 유럽의 현대미술관> (이은화 씀 | 아트북스 | 2011.11 | 2만2000원)



가고 싶은 유럽의 현대미술관 - 테이트 모던에서 빌바오 구겐하임까지 독특한 현대미술로 안내할 유럽 미술관 16곳을 찾아서

이은화 지음, 아트북스(2011)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빌바오 그겐하임 미술관#팔레 드 도쿄 미술관#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영국의 사치 갤러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