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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된 지 1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동안 인권위가 한국사회의 인권신장에 기여한 바도 있지만, 아쉬운 점도 적지 않습니다. 이에 인권·학술단체들은 지난 18~19일 서강대에서 인권위 10주년 대토론회를 개최했고, 여기서 논의된 내용을 모았습니다. 인권은 한 사회의 발전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입니다. 인권위 10년의 평가가 우리 사회의 질적 수준을 가늠하고 또다른 10년을 준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말]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설립된 지, 지난 11월 25일로 10년이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인권위는 얼마큼 성장했나를 가늠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인권위의 이름이 사회적으로 알려지고 시민들에게 각인된 것은 인권위 설립 초기와 2008년 이후 독립성 훼손 시점이다. 전자가 인권위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와 기대를 담은 것이었다면, 후자는 인권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 함께 인권위에 대한 실망을 안고 있는 것이었다.

지난 2001년 한국만이 아니라 외국에서도 인권위에 대한 관심은 높았다. 국가인권옹호기구로서 국가에게 인권보장의무를 부과하기도 하고, 국가의 인권침해행위에 대해 따끔하게 비판하기도 하고,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현실을 바꾸기 위한 실태조사나 정책개선 권고 등을 하는 모습은 모범적이었다.

특히 인권위의 존재를 널리 알린 사건인 인종차별 용어인 살색 크레파스의 시정 권고, 기업의 입사지원서의 차별항목 삭제 권고 등은 인권이란 무엇인지, 차별이란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가 무의식 중에 하는 말이나 우리 사회에 팽배한 차별적 기준에 돌 하나 던지며 파문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인권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발견되고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걸 보여준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 당시 입사지원서 차별항목삭제 권고는 많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권고를 이행하여 더욱 의미가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권위는 정부가 하는 반인권적 정책집행이나 관행에 대해 시정할 것을 권고하거나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이라크전쟁 파병에 반대하는 의견표명을 하여, 전쟁이, 평화가 인권의 문제라는 것을 널리 알렸을 뿐 아니라 정부정책을 인권의 언어로 비판하는 국가기구의 모습을 보여줬다.

또 정부가 비정규직 보호법이라는 빛 좋은 개살구의 명칭으로 비정규직의 인권을 후퇴시키는 법안을 발의하였을 때도 인권침해를 우려하는 입장을 당당하게 발표했다. 이를 통해 국가의 의무가 국민들의 인권보장에 있음을 다시금 상기시켰으며 인권침해는 개인의 배려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 개선을 통해 바꿔야 할 문제임을 확인했다. 부족하지만 그런 모습을 통해 인권위에 작은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거꾸로 인권'... 이명박 정부 4년과 현병철 체제 2년 반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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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취임 이후 인권위의 흔들리는 모습은 '인권위의 역할이란 권력에 의해 좌우될 수 있는 거구나'라는 실망을 시민사회에 안겨주었다. 인권위라는 곳이 '이름과 걸맞지 않게, 아니 전혀 다르게 갈 수도 있구나!'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 현병철 인권위원장 체제였다. 2009년 인권위원장으로 취임한 후 '인권위 최초'라고 불릴 만한 불명예스런 일들을 많이 만들었다.

먼저 이명박 정부가 집중적으로 후퇴시킨 표현의 자유 분야에 대해 침묵하였다.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유엔 인권이사회의 이사국이기도 한 한국정부, 192개국 유엔 가입국 중 한국사회의 표현의 자유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공식방문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한국의 표현의 자유 침해와 후퇴가 심각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유엔인권기구에서 보기에도 심각한 표현의 자유 후퇴가 한국의 국가인권기구인 인권위에서는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 정부가 시민들의 입을 틀어막고, 언론사와 언론 종사인들의 손과 발을 묶을 때에도 인권침해가 아니라는 신호, 면죄부를 줬던 것이 인권위였다. 아래 표에서 보듯 인권위가 의견표명을 안 하기로 부결했던 사건인 < PD수첩 > 명예훼손 사건이나 박원순 명예훼손 사건의 경우, 법원은 무죄라고 판결하였음에도 인권위는 의견표명을 부결시킴으로써 정부의 인권침해행위를 방조하였다.

사실 국가나 공직자의 공무(公務)에 대하여 비판하는 것이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면 아무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정책의 시민참여나 언론의 민주주의 형성 역할은 불가능하다. 특히 전자의 경우 안경환 위원장 시절 < PD수첩 > 제작진에 대한 수사는 언론의 자유를 위협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인권현안으로 보고 인권위에서 토론회도 개최하며 인권침해의 내용과 효과를 정리하던 사안이었음에도 위원장이 바뀌고선 그 성과를 뒤집었다.

물론 위원장 한 명에 의해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 인권위원장 외에 정부와 여당이 임명한 친정부적 무자격 인권위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인권단체들을 비롯한 시민사회에서 인권위원 인선이 중요하다고 외치는 이유는 이러한 것 때문이다. 인권의 기준이 인권위원에 따라 달라진다면 도대체 누가 '인권의 언어'를 신뢰할 것이며, 인권의 기준이 권력을 가진 자, 힘을 가진 자를 옹호하는 것이라면 도대체 누가 인권위를 '사회적 약자의 벗'이라고 하겠는가.

표현의 자유 관련 인권위 전원위원회 부결자료 목록
 표현의 자유 관련 인권위 전원위원회 부결자료 목록
ⓒ 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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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법도 무시, 권력기관만 보호하는 인권위원들

인권위는 독립적인 기구이기에 행정부만이 아니라 사법부에도 의견표명을 하는 것은 인권위법에도 명시된 기능(인권위법 28조)일 뿐더러 그동안도 해온 것이다. 그런데 야간시위 위헌법률심판제청에 대한 의견표명에 대해 한태식 인권위원은 "헌법재판소의 독립성을 존중해야 한다"며 의견표명을 반대했다. 사상 초유로 인권위원이 스스로 인권위의 독립성과 사법부의 독립성을 혼동하는 '무식발언'을 하였다.

인권위가 입법-행정-사법부에 속하지 않는 독립적인 기관으로 자리한 이유는 세 권력기관에게 인권적 잣대로 권고하거나 의견을 제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유엔인권기구에서는 한국의 사법기관이 유엔인권규약을 원용한 판결이 부족하다며 우려하고 시정권고를 내리고 있는 현실과 배치되는 행위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농성하고 있는 김진숙과 노동자 3인에 대한 의견표명 건에 대해 윤남근 위원은 "위법 농성자다. 그런 사람이 물과 배터리를 요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라는 막말 발언을 했다. 인권은 실정법을 넘어서는 것일 뿐만 아니라 법을 위반했다고 그/녀가 가진 권리를 모두 박탈할 권리가 어느 권력에게도 없다는 기본적 사실조차도 모르는 막말발언이다.

이 사안에 대해서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에서도  몇 달 전에 농성자의 인권을 보호하라는 의견을 낸 바 있는데, 인권위는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도 부결했다는 것은 인권위가 한국의 인권현안에 얼마나 침묵하는가를 보여준다. 더구나 국무총리실의 김종익씨 사찰,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철도공사의 조합원 사찰 등 3대 사찰에 대한 의견표명 건을 모두 부결시켰다.

사찰은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뿐 아니라 개인의 일상이 감시됨으로써 발생하는 심리적 후유증이 심한 중대한 인권침해임에도 모두 부결되었다는 것은 현 인권위가 권력기관에게 더 이상 발언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민주적 운영, 넘쳐나는 반인권 발언

이러한 가관 발언이 판치는 것을 많은 국민들이 보기를 꺼려하는지 회의록에는 '막말' 반인권 발언을 한 인권위원의 이름을 알 수 없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자료에도 인권위원들의 이름은 가려진 채 나온다. 인권위원들은 공적인 업무로 공인으로서 발언하는 것임에도 이름이 가려져 나온다. 어느 국가기관보다 투명하고 민주적이어야 할 인권위가 가장 불투명하고 비민주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독립적인 기구인 국회나 방송통신위원회에서도 회의록에 대한 공개를 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도 한참 부족하다.

투명성이 떨어지면 민주성도 떨어지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권위는 법상 49조 의사공개원칙이 있지만 사실상 단서규정이 있어 유명무실하다. 물론 이러한 회의록의 비공개 처리는 현병철 위원장 이전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현병철 위원장 취임 이후 더욱 심각해졌다. 투명한 인권위 운영 및 시민사회와의 협력은 인권위 설립 때부터 인권단체들이 제기한 문제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더욱 비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병철 인권위원장 체제의 비민주성은 인사와 조직을 전횡적으로 하는 것, 회의나 정책조사결정과정에서 민주적 절차를 따르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용산철거민 사망사건에 대해 법원에 의견을 제출하기로 한 안건을 논의하는 전원위원회에서 위원장 의견과 다르게 법원에 의견을 제출하자는 위원들이 많자, 위원장은 갑자기 의사봉을 치며 "독재라도 어쩔 수 없다"라며 회의를 갑자기 폐회한 사건은 유명하다.

또한 손심길씨가 사무총장이 된 후 인권위 직원에 대한 길들이기와 업무의 비민주적 운영은 도를 넘치고 있다. 사무총장이 계통과 상관없이 특정 결정을 종용하거나 특정단체나 사람들의 의견청취나 사업 참여를 가로막기도 하였다.

행정안전부 감사에서 드러났듯이 20건의 부당인사가 있었을 정도로 인권위 조직운영의 비민주성은 심각하다. 그리고 이러한 비민주적 조직운영은 양심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인권위 직원들에 대한 해고나 징계로 나타났다. 올해 초 인권위 노조 부지부장이었던 강인영 조사관을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해고하더니, 이러한 부당해고에 항의하는 1인시위를 한 직원들을 징계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업무시간 외에 1인시위를 했는데 인권위는 서울시보다 못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의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라는 인권위와 유엔인권기구의 권고가 언제 있었냐는 듯 비웃는 듯한 징계결정이다. 자기가 한 결정을 스스로 뒤집는 행위를 했으니 이제 어느 국가기관이 인권위의 권고를 수용하겠는가!

이러한 비민주성은 인권위의 기능을 약화시킨다. 징계와 부당 인사발령으로 직원들을 길들이기 하는 것은 인권위 직원들의 관료화를 부추긴다. 인권적 기준을 갖고 열심히 일해봐야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할 뿐더러 심지어 인사 불이익을 당한다면 직원들이 인권침해 조사나 정책연구를 방기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나아가 인권위원장을 비롯한 사무총장 인권위원들의 구미에 맞는 활동만을 할 것은 분명하다.

김명식 인권위 노조 지부장 직무대리가 강인영 조사관의 해고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김명식 인권위 노조 지부장 직무대리가 강인영 조사관의 해고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김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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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 신경 쓰느라 시간이 없었다?

현병철 인권위원장이 취임한 이래 인권위가 수여하는 대한민국인권상에는 해마다 북한인권 단체가 등장한다. 지금 북한을 조사방문할 권한도 없는데 북한인권침해센터를 만들고, 북한체제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쓰일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인권위에 두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북한정권을 향해 권고를 하는 것도 어떠한 효력도 없을 뿐더러 정치적 긴장을 부추길 뿐이다. 단순히 헌법상의 영토조항에 북한이 대한민국의 영토이므로 한국의 인권위가 북한인권과 관련한 모든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북한인권은 탈북자 인권이나 이산가족의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한국인권과 맞닿아 있으며, 남북의 긴장이 시민들의 평화권을 위협할 수 있기에 인권위가 다룰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북한인권 문제를 한국인권 문제와 같은 것으로 보고 모든 북한 인권현안을 인권위가 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현 인권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더구나 인권의 주요한 원칙 중 하나인 북한의 자결권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내리는 권고는 인권원칙에도 어긋난다.

북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유엔 가입국으로서 각종 인권규약에 가입되어 있다. 한국의 국가보안법이 지시하는 이적단체가 아니라 유엔에서 공식으로 인정된 하나의 나라이자 정부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북한에 인권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한국 인권위가 '어떤 인권원칙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지 않은 채, 현 정부의 꼭두각시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

인권위가 지금처럼 북한을 한국정부에 속한 것인냥 권고하는 것은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인권의 정치수단화'일 뿐이다. 특정 정치세력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이거나 한국의 인권현안에서 시민사회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수단으로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현병철 위원장 취임 초에 "북한인권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조언에 충실한 것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러니 다른 나라 인권활동가들이 한국의 인권위가 왜 북한인권에 이토록 힘을 쓰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없는 것보다는 존재하는 것이 기여하는 현실"

이러한 인권위를 보고 있노라면 솔직히 한숨이 절로 나오고 더 이상 관심을 갖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땅으로 꺼져가는 인권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인권위의 최소한의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없는 것보다는 존재하는 것이 기여하는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어디에도 의지할 데 없는 사회적 약자들이 쉽게 찾아가서 인권침해에 대해 상담하고 진정하고 구제받을 수 있는 기구이기 때문이다.

이 기구가 '알리바이 기구화'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가인권기구라는 제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기능하도록 활동해야 하는 것이 인권단체들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인권위가 제대로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인권운동진영이 열심히 활동하고 비판해야 한다. 그래야 내년 7월 현병철 위원장 임기 후에 또다시 말도 안 되는 무자격 인권위원장 인선이 더 이상 재현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인권위 설립 초기부터 산적했던 인권위원 구성의 문제, 독립성의 문제, 비민주적 운영을 바꾸어내야 한다. 인권위법을 비롯한 관련 법 개정 등 시민사회의 목소리와 실천이 중요한 때이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를 쓴 명숙 기자는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



태그:#인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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