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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탈 때 예의는 개나 줘버려!

 

피라미드를 구경한 우리 가족은, 서둘러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가야 했다. 가방을 챙겨 이집트의 남쪽, 아스완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쿠푸 왕 피라미드 앞에는 빈 택시들이 줄을 지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기사와 흥정을 마치고 택시를 타려는 순간, 또 떠올랐다. 잔돈이 있던가. 잔돈이 없다면 또 바가지 옴팡이다. 노이로제다.

 

피라미드로 올 때에도 당했었다. 기사는 영어를 할 줄 안다는 걸 무기로 내세워 우리 가족을 태우는 데 성공했다. 그는 제법 멋드러지게 꺾어지는 아랍 발음으로 분위기를 잡으며 노래도 불렀다. 굳 싱어라고 추켜주니 더 흥이 나는 눈치였다. 그런데 영어는 개뿔! 브로큰 잉글리쉬로 제 말만 할 뿐이지 당최 알아먹지를 못했다.

 

피라미드에 도착해, 나는 주머니 한가득인 동전을 꺼내 세었다. 기사는, 노 굳, 노 굳, 손을 흔들었다. 노 굳은 무슨 노 굳, 동전은 돈 아니냐. 큰 돈 받아서 잔돈 안 주려는 네 놈 속셈 모를 줄 알고? 어림없지. 순 동전으로만 던져 줄 테다. 속으로 벼르며 큰소리 뻥뻥 쳤는데, 우띠! 동전이 모자랐다.

 

혹시나, 지폐를 건넸다. 노래도 신나게 부르며 덕담도 주고받았는데, 흔쾌히 잔돈을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면서. 역시나! 잔돈 없단다. 이런 된장! 확 열 받았다.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아주 지긋지긋해! 이집트가 싫어지려고 해! 니들은 전부 거짓말쟁이야!"

 

이번엔 알아들었는지, 기사는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차를 몰고 가 버렸다. 이러니 노이로제 안 걸릴 수가 있나.

 

 

하여 피라미드에서 시내로 다시 돌아가는 택시에 오르기 전, 잔돈부터 확인하는 일은 필수. 40파운드(1이집션파운드=220원 정도)로 흥정했는데 50짜리밖에 없다. 기사는 10을 내보인다. 거슬러 줄 테니 걱정말라는 눈치다. 내 손에 쥐어 주려고 까지 한다. 나는 거절했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돈도 안 냈는데 거스름돈부터 받을 순 없지 않은가. 그건 승객으로서 예의가 아니다. 잔돈 없다는 핑계는 더 이상 댈 수 없겠지. 믿어야지, 그게 인간에 대한 예의지, 싶었다.

 

이게 나의 실수였다. 준다고 할 때 받아두어야 한다, 이집트에서는. 카이로의 택시 운전사는 결코 거스름돈을 주지 않는다,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그 핑계가 아무리 생짜 트집이고 말이 안돼도 우기는 데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카이로에서, 승객의 예의 따위는 일찌감치 내팽개쳐 버려야 한다는 걸 머지않아 깨닫게 된다.

 

기사는 시내에 들어서자 손가락을 가리키며, 저것 좀 보란다. 건너편 차로에 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교통체증이라고 막 강조하며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그래서 어쩌라고? 오호라, 지가 돌아갈 길 막히니까 거스름돈 못 주겠다고? 에라이 도둑놈. 욕이 절로 튀어나온다.

 

보아하니 교통체증도 아니다. 아주 잠깐 동안 차들이 멈췄을 뿐이다. 그런데 어쩌랴. 다 와서 택시비 안 내고 버틸 수도 없고, 거스름 돈 안 준다고 강탈할 수도 없고. 분해 죽겠다. 약 올라 미치겠다. 거스름돈 쥐어 줄 때 미친 척하고 챙겨둘 걸, 인간에 대한 예의 따윈 개나 줘 버릴 걸.

 

한인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와, 당한 걸 하소연하니, 주인장 노인네 두 분, 의견이 분분하다. 할아버지 왈, 카이로는 택시 바가지가 심해서 미터기로 가야 한다. 할머니 왈, 아니다 그러면 돌아가는 수가 많으니 미리 흥정해야 한다. 티격태격이다.


탈 때는 잔돈, 내릴 때는 배짱

 

 

우리 가족은 아스완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까지는 또 택시를 타야 했다. 이번엔 미터기로 가보기로 했다. 보아하니 별로 돌아가는 것 같지는 않은데 조금 밀리기는 했다. 이번엔 또 어떤 핑계로 바가지를 씌울까. 이제 아주 호기심까지 든다. 이 택시 기사,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미터기에 찍힌 요금에다 약간 더 얹어 주었는데 더 내놓으란다. 공항으로 들어올 때 이용료를 냈다는 거다. 그걸 다 생각해서 준거라고 따졌다. 이것 보라고, 아까 받은 영수증을 내밀며 손으로 짚어 준다.

 

내가 아랍 글씨 모르는 줄 알겠지? 그는, 내가 여행할 때 그 나라 인사와 숫자 정도는 기본적으로 외우는 예의 바른 여행자라는 걸 꿈에도 모를 것이다. 특히 숫자는 유용하다. 알아 두면 써 먹을 일이 가끔 생긴다(아라비아 숫자는 아라비아에서 안 통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라비아숫자의 원조는 인도이고 유럽에 의해 변형된 것이라고 한다).

 

어디 보자고, 의기양양하게 영수증을 받아든 나는 허걱, 급당황한다. 돼지꼬리 같은 이집트 숫자가, 여러 개다. 뭐가 얼마, 뭐가 얼마, 뭐 이런 식으로 쭉 적혀 있다. 얼마는 알아보겠는데 뭐가 무엇인지는 당최 알 수가 없으니 따질 수가 있나.

 

어쩔 수 없다. 우리는 게스트 하우스 주인장이 조언해준 대로 행동을 취하기로 했다. 어금니 물고 배에 힘 빡 주고 그냥 우리 갈 길을 가는 거다. 대꾸도 하지 말고 뒤돌아보지도 말고, 정당한 요금은 지불했으니 삼십육계 줄행랑 칠 필요도 없고, 당당하게 유유히 내 갈 길을 가는 거다. 그러면 곧, 택시가 포기하고 떠나는 소리를 등 뒤로 들을 수 있다.

 

카이로 택시 기사들은 약고 뻔뻔하긴 하지만 그악스럽진 않다. 돈을 받아 내려고 악착을 떨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싸움을 걸지는 않는다. 그러니 아무리 간이 콩알만한 여행자라도 배짱부려 볼 만하다. 따지고 보면 배짱도 아니다. 정당한 요금을 지불했다면 말이다. 하지만 홈그라운드가 아닌 곳에서 손해 안 보려면 배짱이 좀 필요한 법.

 

카이로에서 택시를 탈 때에는 딱 두 가지만 명심하면 된다. 탈 때는 잔돈, 내릴 때는 내 갈길 갈 배짱. 우리 가족은 카이로에서 이틀을 보내고야 비로소 택시 타는 요령을 터득하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2011년 1월 2주 동안 이집트를 여행했습니다.


태그:#이집트, #카이로, #카이로의 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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