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살고 있는 이인숙(42.건축업)씨는 최근 운동경기를 하다 손가락뼈 하나가 부러진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왔다. 아이의 손가락 접합수술을 한 뒤 병원은 이씨에게 1만 달러(약 1100만 원)의 금액이 적힌 청구서를 보냈다. 이씨가 더 놀란 사실은 청구에서 X-Ray와 의사진료비, 마취비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험으로 처리하려고 했지만, 보험사에서는 겨우 2700달러(약 300만 원)만 부담할 수 있다고 했다. 다달이 적지 않은 보험료를 내고 있는 이씨지만 "웬만해서는 병원 한 번 가기가 무섭다"고 호소한다.
건축업에 종사하는 이씨는 직접 소송을 당하거나 다른 이들의 재판과정을 지켜볼 기회가 종종 있다. 얼마 전에도 이씨는 잘못이 없는데도 일명 '쥐 사건'에 연루돼 재판 직전까지 가야 했다. 전 집주인이 집에 쥐가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집을 팔 때 그 사실을 새로운 집주인에게 알리지 않았고, 결국 새로운 집주인은 전 집주인을 상대로 100만 달러(약 11억 원)의 피해보상청구 소송을 냈다.
다행히 이씨는 재판 직전 책임을 면했지만, 재판정에 가보지도 못 하고 변호사 비용으로 4만 달러(약 4500만 원)를 고스란히 지불해야 했다. 이씨는 "이대로 한미FTA(자유무역협정)가 실행되면 미국의 투자가들이 자신들에게 조그만 손해라도 있을 시 대한민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한 줄소송을 제기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고 우려했다.
http://youtu.be/-3mTdhH3bJQ
"미국의 실패한 정책, 고국에 수출하고 싶지 않다"이인숙씨는 태평양 건너 고국 땅에서 벌어진 한미FTA 비준안 날치기 처리와 시위대를 향한 물대포 진압 등 일련의 상황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다가 최근 작은 결심을 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알릴 수 있는 곳을 찾아가 'STOP KOREA-US FTA, 비준무효! 명박퇴진!'이라고 적은 작은 손팻말을 들고 '인증샷'을 찍은 것.
이씨는 "우리는 미국에서 마음만 함께 하지만, 한국에 계신 국민 여러분들께서 대통령과 정부가 지켜주지 않더라도, 나의 고국 대한민국의 주권을 직접 지켜주시길 간곡히 호소드린다"고 말했다.
이른바 '한미FTA 비준폐기 인증샷 프로젝트'는 이씨와 같은 심정을 가진 미주 한인여성들의 집단 창작물이다. 이씨를 비롯해 미 전역에 살고 있는 50여 명의 한인 여성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인증샷을 찍었고, 이 사진들이 모여 3분짜리 동영상으로 만들어졌다.
이 프로젝트는 미주 한인여성 온라인 커뮤니티인 'Missy USA'에서 '악보녀'로 불리는 한 회원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한국총영사관 앞에서 열린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와 한인들의 '한미FTA 비준안 통과' 항의 시위에 다녀온 '악보녀'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직접 행동을 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악보녀'는 다른 커뮤니티 회원들에게 프로젝트를 제안하면서 "아이들도 어리고 직장생활로 오프라인 행사에 참여하시는 게 여의치 않기 때문에 우리가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 비디오 클립(동영상)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한국에서 공권력에 희생당하며 '(한미FTA) 비준폐기, 명박퇴진'을 요구하는 우리의 국민들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제작한다"고 밝혔다.
"마음도 춥고 몸도 춥고 여러 가지로 너무나 슬픈 날이었지만... 절대 그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내년 총선 때 그들을 모두 심판하기 전까지 저는 계속 저항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과 후손들을 위해서 저는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프로젝트 참여방법은 간단하지만 창조성이 필요하다. 자신이 직접 만든 '한미 FTA 비준폐기' 문구가 새겨진 손팻말을 들고 인증샷을 찍어 보내는 것이다. 회원들은 사진을 찍는 지역을 나타내기 위해 차 번호판, 도시의 상징적인 건축물이나 장소, 도로표지판 등을 이용했다. "소중한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자녀들과 함께 인증샷을 찍기도 하고, 살짝 눈만 드러내고 찍기도 했다. 다양한 패러디 문구도 등장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증샷을 모아 김상륜(36. 텍사스주)씨 등이 배경음악을 깔고 동영상으로 만들었다. 김상륜씨는 "민영화의 나라 미국에 살면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비싼 병원비나 유전자 변형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는 괴담이 아닌 현실"이라며 "미국의 실패한 시장 정책을 고국에 수출하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10년 전 유학생으로 왔다가 교포가 된 앨라배마주의 한 주부 역시 미국 의료민영화의 현실을 누구보다 실감한 장본인이다. 노산에다가 유도분만으로 아이를 낳기는 했지만, 임신부터 출산까지 들어간 병원비의 총합이 무려 10만 달러(약 1억1000만 원)를 훌쩍 넘었다. 그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유에 대해 "어디 가면 꼭 자신을 코리안이라고 소개하는 제 아이가 엄마의 나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길 원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버지니아주에 살고 있는 한 주부는 환경과 건강 먹거리에 관심이 많다. 그가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는 "한미FTA를 통해 한국으로 대량 들어갈 GMO(유전자변형농산물)식품들, 호르몬과 항생제 범벅인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걱정 때문에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며 "아직도 한국에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미국 고기는 값 싸고 좋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미국산 고기의 진실에 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의 눈가림 정책에 울분이 터진다"고 말했다.
"한평생 공부만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조지아주의 한 주부는 미국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한인여성들이 왜 이토록 한미 FTA를 반대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타국에서 힘들 때 고국 생각부터 먼저 합니다. 그리곤 다시 일어나죠. 지금껏 대한민국이 저에게 힘이 되어 주었듯이, 이번엔 제가 대한민국의 힘이 되어 줄 겁니다. 내 나라가 없으면 나도 없습니다. 꼭 지켜 줄 겁니다. 몸은 이곳에 있지만 마음은 언제나 한국과 함께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 멋지고 감사하고 죄송합니다."한편 '한미FTA 비준폐기 인증샷 프로젝트' 동영상은 3일 오전(한국시각) 유튜브를 통해 공개됐고, 이날 오후 광화문에서 열린 '한미 FTA 비준무효' 범국민대회에서도 상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