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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PD의 실제 모습을 본 순간 왜 별명이 '쌀집 아저씨'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전문직 종사자라기보다는 수수한 차림새와 햇볕에 그은 듯한 건강한 얼굴이 동네 가게 아저씨들을 연상하게 했다.

 

김건모 재도전 논란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MBC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에서 물러난 김영희(51) PD는 지난 4월 남미로 훌쩍 떠났다. 60일간 여행하며 느낀 것을 글과 사진, 그림에 담아 최근에는 책도 냈다. 그가 지난달 29일 제천 세명대학교에서 ''나는 가수다'와 창의적 사고'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200여 명 학생들 앞에서 김 PD는 오래 전 자신을 깜짝 놀라게 만든 한 과학책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가 ‘'나는 가수다'와 창의적 사고’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가 ‘'나는 가수다'와 창의적 사고’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 진희정


'상상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책을 보다가 한 문장이 눈에 팍 들어왔어요. 그 후 프로그램을 만들 때마다 그 문구가 큰 영향을 끼쳤죠. 아마 그 한 줄은 죽을 때까지 제 머리에 박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 문구는 바로 '상상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말이었다. 누구보다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가졌던 과학자의 이 말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제작을 할 때마다 이 말은 생각의 한계를 깰 수 있는 큰 힘이 되어주었다.

 

상상력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김 PD는 보통을 뛰어넘는 발상으로 <이경규의 몰래 카메라> <양심냉장고> <전파견문록> <느낌표!> 등 수많은 프로그램을 잇달아 성공시켰다. 그리고 2008년, PD연합회 회장직을 맡으며 자연스레 현장을 떠났다.

 

다시 복귀를 결심했을 때, 상황은 좋지 않았다. 김 PD는 침체를 거듭하고 있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 MBC 예능 프로그램에 어떻게든 활기를 불어넣어주길 바라는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그맘때 출연한 <무릎팍 도사>에서도 그의 고민이 드러났다. '다시 프로그램을 한다면 성공할 수 있을까?' 압박감은 컸다.

 

프로그램을 키우는 99%는 '기획'

 

"그때만 하더라도 <나가수>를 구상하기 전이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상태였어요. 최고참 PD로 복귀하는 마당에 허투루 프로그램을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어떤 방송을 할 것이냐 하는 고민이 아주 많았던 시기였죠."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은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TV는 기본적으로 영향력이 있기에 일단 화제가 되면 좋든 나쁘든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고 본다. 기왕이면 시청자들이 행복해지는 쪽으로 가고 싶었다. 보는 사람이 행복해지는 진짜 음악 프로그램을 만들면 어떨까? 그렇게 <나가수>가 시작되었다.

    

 김영희 PD가 연출한 프로그램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양심냉장고> <나는 가수다> <전파견문록> <느낌표!>.
김영희 PD가 연출한 프로그램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양심냉장고> <나는 가수다> <전파견문록> <느낌표!>. ⓒ MBC


물론 새로워야 했다. '프로들의 서바이벌'이라는 형식은 <나가수>가 세상에 나온 지금이야 가능한 듯 보이지만 당시로서는 상상이 불가능할 만큼 파격적인 기획이었다. '일반인이 프로 가수를 심사한다'는 것은 전문가가 일반 지원자를 평가하는 종전 방식을 완전히 뒤집는 시도였다.

 

김 PD는 기획이 잘되면 나머지는 다 잘 따라오게 되어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기획은 창의력을 극대화하는 단계다. 새롭고 획기적인 프로그램의 탄생 여부가 이 과정에서 결정된다. 기획 과정에서 창의력을 70%만 발휘해놓고 나머지를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그 프로그램은 잘해야 70점짜리가 된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기획이 중요한데 PD들이 쉽사리 이 단계에 '올인'하지 못하는 이유는 시간이 모자라서다. 김 PD 역시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나가수> 기획 단계에 무척 공을 들였다.

 

"가끔 후배 PD들과 술 한 잔 할 때면 물어보곤 해요.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냐고. 그럼 대부분 기획이라고 하죠. 기획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물으면 프로그램의 70% 정도는 결정하는 것 같다고 해요. 나머지는 거물급 스타를 캐스팅 하느냐 마느냐, 세부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들에 달렸다는 거죠. 그럼 전 다시 이렇게 이야기해요. 기획이 99%다!"

 

상상의 부재는 창의력의 부재다

 

김 PD는 기획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며 15년 전 경험을 꺼냈다. 1996년 역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새로운 코너를 구상하느라 고민할 때였다. 당시 경쟁 프로였던 KBS <금촌댁네 사람들>의 시청률은 40%에 육박하는 데 견주어 <일밤>의 시청률은 2% 안팎이었다. 획기적인 아이템이 필요했다. 밤을 새며 회의를 거듭했지만 다들 어디선가 본 듯한 아이디어만 냈다. 방송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일요일 새벽까지 아이템을 결정하지 못했다.

 

그날도 회의를 하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날따라 신호등이 눈에 띄었다. 아무도 없는 밤 거리였지만 빨간 불로 바뀌기에 엉겁결에 차를 멈춰 신호가 바뀔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왔는데 기분이 굉장히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김 PD는 이것을 프로그램으로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다음 날 회의 때 자신만만하게 이야기를 꺼냈는데 작가들이 모두 강하게 반대했다. 연예인도 없고 화려한 볼거리도 없어서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프로그램을 만들어낸다면 보는 사람들은 반드시 기분이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김 PD는 홀로 밀어붙였다. 그렇게 탄생한 <이경규가 간다 - 양심냉장고>는 엄청난 시청률과 사회적 반향을 기록하며 대한민국 예능의 역사를 새로 썼다. 예능에 공익적인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보여준 방송이었다.

    

 200여 명 학생들이 김영희 PD의 강연을 들으며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200여 명 학생들이 김영희 PD의 강연을 들으며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 진희정


당시 작가들은 프로그램이 '대박' 나면 몸값이 높아지는 프리랜서였다. 그만큼 프로그램의 성패를 점치는 데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작가들이 왜 <양심 냉장고>를 반대했을까? 안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종류 프로그램을 어디서도 본 적이 없었기에 작가들은 <양심 냉장고>를 상상하지 못했다. 상상력 부족이 창의적인 발상을 가로막는 경우는 흔하다.

 

김 PD는 자신이 빨간 불에 차를 멈추고 기분이 좋아지는 체험을 했기 때문에 <양심 냉장고>라는 프로그램을 상상해낼 수 있었던 것으로 본다. 그 체험이 상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면 이 대박 프로그램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김 PD는 "아주 작은 상상을 하는 것으로 세상을 뒤흔들 수 있다"고 말했다.

 

창의력이란? 새로운 것을 실행해 내는 힘!

 

 찢어진 청바지에 빨간 운동화를 신고 강의하는 김영희 PD.
찢어진 청바지에 빨간 운동화를 신고 강의하는 김영희 PD. ⓒ 진희정

"<나가수> 기획을 마치고 출연자 캐스팅까지 거의 끝냈을 때 기자회견을 했어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어요. '어떻게 기존 가수들을 서바이벌에 세우겠다는 생각을 했나?' '섭외는 도대체 어떻게 했나?' 이소라 김건모 박정현 같은 가수들이 출연한다고 소개하는데 기자들이 잘 믿질 않는 거에요. '일곱 명 이름을 이야기해 놓고 나중에 몇 명만 나오는 것 아니냐'고 하기도 했죠."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획이지만 이를 완성하는 것은 실행력이다. 아무리 좋은 기획이라도 실제로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 스티브 잡스의 결과물을 두고 '나도 저거 생각했었는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생각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이루어내는 것 역시 창의력이라고 김 PD는 생각한다.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나가수>를 생각해냈지만, 실행을 하기까지 큰 걸림돌이 있었다. 출연자였다. 가장 섭외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소라가 의외로 쉽게 승낙했지만, 출연하겠다고 했다가 다음 날 갑자기 못하겠다고 하는 출연자도 있었다. 7인의 가수를 전원 섭외하기까지 수십 번 마음을 졸였지만 김 PD는 결국 <나가수>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탄생된 프로그램은 이제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나가수>는 음원과 광고 수익을 합쳐 연간 1천억이 넘는 수익을 낸다. 최근에는 미국과 중국 등 해외로 포맷이 수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김 PD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스타를 탄생시켰다는 점을 <나가수>가 일구어낸 최고의 성과로 꼽는다. 임재범 박정현 김범수 등 실력은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던 가수들이 <나가수>를 통해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다.

 

'진짜'를 찾아서

 

<나가수>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실행해 내기까지 김 PD에게 가장 큰 원동력이 되어준 것은 다름 아닌 진정성과 간절함이었다. 시청자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진정성'에 '간절함'을 더하면 '진짜'가 눈에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강연이 끝난 뒤 김영희 PD와 함께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학생들.
강연이 끝난 뒤 김영희 PD와 함께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학생들. ⓒ 진희정

"창의적인 프로그램의 핵심은 '진짜'에 있다고 믿어요. <나는 가수다>의 원래 제목도 사실은 <나는 진짜다>였습니다. '나는 "진짜" 가수다'라는 의미였죠. 이제는 널리 쓰이는 '나는 OO다'라는 문구도 사실 '나는 진짜 OO다'라는 뜻 아닌가요? 프로그램뿐 아니라 어떤 일에서든 '진짜'를 찾아내 실행하는 능력이 창의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는 힘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 (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영희 PD#나는 가수다#창의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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