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수크 거리의 카페는 물담배를 피우는 남자들로 붐빈다. 물담배를 주문하면, 물담배 병과 연초와 입이 닿는 부분에 씌우는 1회용 덮개를 갖다 준다. 연초맛은 선택할 수 있다.
▲ 물담배 샤샤 수크 거리의 카페는 물담배를 피우는 남자들로 붐빈다. 물담배를 주문하면, 물담배 병과 연초와 입이 닿는 부분에 씌우는 1회용 덮개를 갖다 준다. 연초맛은 선택할 수 있다.
ⓒ 박경

관련사진보기


이집트의 1월, 겨울 날씨는 더할 수 없이 좋다. 카이로는 서울의 가을 날씨 같더니, 아스완은 늦여름 같다. 푸른 나일 강 위에 펠루카의 하얀 돛들이 구름처럼 떠다니고 있다. 코르니쉬(나일 강변)를 따라 걷자니 청바지가 덥게 느껴지는 오전이다.

어제 오후 카이로를 떠나 비행기로 1시간 30여 분만에 아스완에 도착했다. 기차로는 15시간 거리, 아스완은 길게 흐르는 나일강을 따라 이집트 남쪽에 위치해 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세계문화유산 아부심벨 신전을 가기 위해 아스완으로 온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신전과 오벨리스크를 만들 때 아스완의 화강암을 사용했다. 이곳에서 채취된 거석은 나일강을 타고 올라가 기자의 거대한 피라미드가 되기도 했다.

지난 밤, 바자르가 있는 수크 거리를 돌아볼 때 사람들이 좀 다르다는 걸 한눈에 파악했다. 그들은 누비아인, 키가 크고 피부색도 훨씬 짙었다.

저 고기는 아마도 이슬람식으로 도살된 고기일 것이다. 이슬람식 도살이란, 경건한 마음으로 동물의 목에 있는 동맥을 빨리 끊어 고통없이 동물을 죽게 하는 것이다.
▲ 수크 거리의 정육점 저 고기는 아마도 이슬람식으로 도살된 고기일 것이다. 이슬람식 도살이란, 경건한 마음으로 동물의 목에 있는 동맥을 빨리 끊어 고통없이 동물을 죽게 하는 것이다.
ⓒ 박경

관련사진보기


아스완의 수크 거리에 가면 '호루스의 눈'이나 '앙크(십자가의 원조)'가 그려진 파피루스 등 기념품들을 구경할 수 있다.
 아스완의 수크 거리에 가면 '호루스의 눈'이나 '앙크(십자가의 원조)'가 그려진 파피루스 등 기념품들을 구경할 수 있다.
ⓒ 박경

관련사진보기


수크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상인들은 쇠똥구리나(재생과 태양을 관장하는 신 케프리를 상징) 호루스의 눈이(치료와 방어의 상징) 그려진 파피루스를 흔들어 보이며 관광객을 불러 모았다.

노천 카페는 이집트 남자들의 아지트, 말없이 조용히 마주앉아 물담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마치 그들은, 향긋한 물담배 샤샤만 있어 준다면, 하염없이 죽치고 앉아 히에로글리프(이집트 상형문자)라도 해독하면서 밤을 새울 것처럼 보였다. 새초롬한 애인 곁에 두듯 물담배를 옆에 세워 둔 그들의 시간은 연기처럼 흐르고 있었다.

오늘은 한가롭게 펠루카나 타고 아스완의 햇빛을 즐기기로 했다. 내일은 300km나 떨어진 아부심벨을 향해 꼭두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어야 할 테니.

이집트 여학생들 속에서 단발머리 소녀를 보다

호텔을 나와 걷는 나일 강변엔 벌써부터 태양빛이 제법 강하게 내리쬐고 있다. 길 건너편에는 하얀 히잡을 단정하게 두른 여학생들이 잔뜩 몰려나왔다. 무슨 일일까. 인도를 꽉 메우고 있어 지나가기 불편할 정도다. 행인들은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오느라 애를 쓴다.

무슨 대단한 행사가 있길래 길을 막고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거리에는 지체 높아(?) 보이는 여인의 사진이 곳곳에 붙어 있다. 국빈이라도 되는 걸까? 여학생들의 손에는 이집트 국기가 팔랑거리고 있다. 순간, 그 솜털 보송보송한 여학생들 속에서 나를 본다. 귀밑 2cm 단발머리를 하고 태극기를 손에 든 30여 년 전의 내가 있다.

히잡으로 머리를 둘러 감았지만, 여학생들의 발랄함은 결코 가릴 수가 없다.
▲ 영부인 행차하시는 날 히잡으로 머리를 둘러 감았지만, 여학생들의 발랄함은 결코 가릴 수가 없다.
ⓒ 박경

관련사진보기


내가 중1 때, 1980년이었다. 한동안 우리는 뻔질나게 거리로 불려나갔다. 학교가 아닌 공덕동 길거리로 등교를 해야 했다. 극성 맞은 담임들은 거기까지 출석판을 들고 나와 거리에서 출석 체크를 하곤 했다.

그 길은 김포공항에서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길, 2, 3초 만에 휙 지나가버리는 국빈들을 환영하기 위해 교복 입은 우리들은 손에 태극기를 든 채로 몇 시간을 지루하게 기다려야 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로 우리는 국기를 흔들어댔다. 그저 수업을 빼먹는다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철없던 시절이었다.

그것은 꽤나 자주, 여러 번 반복되었고, 수업을 건너뛰는 재미조차 심드렁해질 무렵, 학생주임은 전교생 앞에, 짠~하고 나타났다, 어깨에 20인치 TV만한 비디오 카메라를 얹은 채. 대통령 각하께서 하사하셨단다. 허구헌날 불려 나가, 어린 학생들까지도 당신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라는 걸 국빈에게 보여 준, 우리의 노고에 대한 대가란다.

어라,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받는다더니, 고생한 건 우리인데, 왜 아무 쓰잘데기없는 비디오 카메라를 주냔 말이다. 우리들한테 떡볶이라도 쏴야지, 엄마 생일날 생활용품 선물한 격이지, 억울하다 싶었다. 딱 고만큼, 세상 물정 모르는 우리들에게 그땐 딱 고만큼의 억울함이었다.

이집트 여학생들은 카메라를 든 나를 향해 해맑게 웃고 있다. 재깔거리는 소녀들의의 수다가 생기발랄하게 공기 속으로 퍼져 간다(잠시 후에 알게 된 일인데, 그 사진 속의 주인공은 영부인이시란다. 그날은, 30년 독재 정권의 무바라크의 아내가 아스완으로 친히 납시는 날. 그 소녀들은 30년쯤 후에 그날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펠루카 선착장에서

사프란, 정향, 계피 등 향신료는 음식의 맛과 색을 더해주고 정력과 성기능도 높여준다고 한다.
▲ 수크 거리의 향신료 사프란, 정향, 계피 등 향신료는 음식의 맛과 색을 더해주고 정력과 성기능도 높여준다고 한다.
ⓒ 박경

관련사진보기


우리는 펠루카를 탈 수 있는 선착장으로 갔다. 펠루카를 타고 누비안 마을이 있는 엘레판틴 섬으로 가보고 싶다.

누비아는 아프리카 북동부인 이집트 남부에서 수단 북부에 걸친 지역이다. 만년의 역사를 가진 누비아는 풍부한 금과 자수정 등 광물자원으로 교역이 활발했다고 한다. 상아, 흑단, 향료, 낙타털은 모두 누비아를 통해 이집트 북부로 전해졌다.

세월이 흘러, 누비안들은 이집트의 변방 부족으로 취급당하면서 더욱 결속했고 자신들만의 문화를 지키며 살았다. 아스완댐의 건설로 그들의 터전은 물 속에 가라앉고, 그 주변으로 흩어져 살게 된 서글픈 기억을 가진 부족, 누비안이다.

엘레판틴 섬으로 가면 누비안 마을을 볼 수 있다고 하니, 호기심 빵빵 부풀어 오른다. 펠루카가 정박되어 있는 선착장으로 내려가니 터번을 두른 늙은 사내가 돈을 받는다. 한 시간에 한 사람당 50파운드씩(1이집션파운드=220원 정도) 150을 내란다. 1인당 30파운드라는 정보를 안내센터에서 이미 입수한지라, 깎아 보려고 하는데, 영어를 전혀 못 알아먹는 눈치다. 아니 뭐, 이 상황에서 말 안통해도 손짓 몸짓 보면 뻔한 일인데도, 늙은 사내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또 바가지다. 나는 순간 기분이 확 잡치기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 2011년 1월 2주 동안 이집트를 여행했습니다.



태그:#이집트, #아스완 수크 거리, #펠루카, #누비안, #이슬람식 도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