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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등록금, 미친 알바]는 사진과 함께 보는 구술사입니다. 저는 이 연재를 통해 미친 등록금에 미친 알바의 삶을 사는 그들의 모호하고, 이질적이고, 하나로 치환할 수 없는 목소리를 보여주려고 합니다. - 기자 말

일단 한 번 하는데까지 해봐야지요, 그게 희망이지요

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인간 대접 받지 못하는 그런 가난을 제 자식에게 또 물려 줘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참담합니다.
 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인간 대접 받지 못하는 그런 가난을 제 자식에게 또 물려 줘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참담합니다.
ⓒ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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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집안 사정이 있어서 저는 혼자 삽니다. 1인 가족이지요. 그냥 자립이라고 해주세요. 그래서 모든 걸 제 명의로 다 해야 합니다. 자취 방 빌리는 전세 명의도 제 이름으로 해야 하고, 건강보험료도 제 명의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저소득층을 도와주는 한국장학재단의 희망드림의 수혜자입니다. 한 학기에 학비로 107만 원 정도를 받습니다. 학자금 전액을 일단 대출 받고난 후 장학재단에서 그 액수를 보내주면 그 액이 차감되는 거지요. 결과적으로 볼 때 등록금으로 200만 원 대출 받는 셈이지요.

1년 휴학하는 동안 모던 바에서 웨이터 일 했습니다.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새벽 5시까지 일 하지요. 그러면 월급으로 100만 원 정도 받습니다. 술을 드시는 손님들이기 때문에 간간이 팁을 주기도 해서 벌이는 괜찮은 편입니다. 제가 음악 듣기를 좋아하는데, 음악을 실컷 들을 수 있어서도 좋구요.

작년 여름에는 전라도 여수에 있는 석유화학 단지에서 일한 적도 있습니다. 기름 탱크 안에 들어가서 유량 측정 기기를 설치하는 일을 했습니다.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을 했는데 하루에 8만 원을 주더군요. 좋은 일자리였는데, 그 작업이 다 끝나면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이라 그냥 돌아 왔습니다. 또, 조선소에서 용접 하는 일도 해봤습니다. 단순 노가다인 것같지만, 상당한 기술을 배우기도 해서 좋았습니다. 많이 할 때는 하루에 20만 원까지 번 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휴학 해서 번 돈으로 한 달 씩, 한 달 씩 먹고 삽니다. 현재 모아 놓은 이 돈 다 떨어지면 다시 내년 쯤에 휴학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참 싫습니다.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의 차이가 너무나 큰 나라예요, 우리나라는. 주제 넘게 잘 사는 사람들을 넘보거나 시기하는 소리가 결코 아닙니다. 다만 가난의 대물림을 피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인간 대접 받지 못하는 그런 가난을 제 자식에게 또 물려 줘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참담합니다. 어렸을 적부터 이렇게 사는 게 제 삶이라 절망이나 좌절해 본 적은 없습니다만...  일단은 부지런히 뛰고 봐야죠.

전공 살려서 무역 쪽 일을 몇 년 하고 월급 아껴 돈 모았다가 그 돈으로 가게 하나 차려 자영업을 하려구요. 그리고 그 가게 키우고, 키우고... 하고 싶습니다. 일단 한 번 하는 데까지 해봐야지요. 그게 희망이지요.

매일 알바 하면서 공부 병행하는 건 불가능 하다고 봐야지요

주말 알바로도 못 버티고, 그러다가 돈 떨어지면 저도 다른 선배들 같이 돈 벌러 휴학하겠지요.
 주말 알바로도 못 버티고, 그러다가 돈 떨어지면 저도 다른 선배들 같이 돈 벌러 휴학하겠지요.
ⓒ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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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지도위원 투쟁을 어떻게 아냐구요? 당연히 알지요. 우리 동네가 거기거든요. 제가 영도 살아요. 제 또래 다른 친구들은 한진중공업이 뭔지, 희망버스가 뭔지 거의 100% 모른다고 봐도 됩니다. 나 말고 다른 것에 대해선 무관심 하기 때문이지요. 사실 저도 마찬가지구요. 그렇지만 우리 동네 사람들은 한진 사태 다 알 수밖에 없어요. 희망버스가 그렇게 여름 내내 왔으니까요. 동네에서 희망버스 올 때는 짜증 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측은하게 보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저는 1학년이라 더 이상은 잘 모릅니다.

아버지는 영도에서 인테리어 일 하십니다. 샷시 제작, 수리 뭐 그런 일이지요. 일감이 있을 때는 그런대로 먹고는 살지만 일감이 없어질 때는 막막하지요. 엄마는 YWCA에서 일 하십니다. 언니도 대학생, 저도 대학생... 돈이 너무나 많이 들어가요. 벌이는 별로 없는데...

1학년 들어올 때부터 두 번 다 학자금 융자 받았습니다. 앞으로도 아마 계속 학자금 융자 쪽으로 갈 것 같습니다. 물론 장학금 받는 게 일순위지요. 그래서 지난 학기 공부 죽으라 해서 전액 장학금 받았습니다. 그 성취감이란 말로 할 수 없지요. 승부를 걸었는데...

알바는 대학 입학 하기 전 2월부터 시작해서 여름방학 끝나는 8월까지 했습니다. 동네에 있는 중국집 레스토랑에서 주말 알바를 했습니다. 시급 5000원 주더군요. 많은 돈은 못 모았습니다. 현재는 7개월 정도 일 해서 받은 돈, 일부 용돈 쓰고 80만 원 정도 통장에 들어 있습니다. 수능 본 이후 부모님께 용돈 받아 본 적 없습니다.

지난 여름 방학 때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을 할 때입니다. 사실, 아이스크림 일은 자기가 일부러 시간을 투자해서 공부를 해야 그 일을 효율적으로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시간 많이 투자해서 일을 익혔습니다. 그런데 그 노력에 대한 보상은 전혀 고려를 해주지 않더라구요. 정확하게 법정 최저 임금 4320원만 주데요. 저는 그 사장님이 안타깝습니다. 일을 스스로 익혀서 잘 한 알바가 결국 그만 둬 버리잖아요. 그러면 누군가가 또 어눌하게 일을 처음부터 배워야 하고, 그렇게 되면 결국 자기 장사에 이익이 안 될 텐데... 시간당 180원만 더 쳐주면 기껏 하루에 1000원 더 주는 거거든요. 그러면 제가 계속 일을 했을 거고, 그러면 장사도 더 효율적이었을 거구요.

매일 알바 하면서 공부 병행하는 건 불가능 하다고 봐야지요. 그래서 일단은 급한 상황이 아니면 알바는 미루고 공부부터 합니다. 주말 알바로도 못 버티고, 그러다가 돈 떨어지면 저도 다른 선배들 같이 돈 벌러 휴학하겠지요.

친구들만 안 만나면 돈 들 일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등록금 여덟 번 모두 대출받았습니다. 합이 3000만 원입니다.
 지금까지 등록금 여덟 번 모두 대출받았습니다. 합이 3000만 원입니다.
ⓒ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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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년 2학기라 졸업이 코 앞입니다. 졸업 후에 뭘 할지 막막합니다. 딱히 따놓은 자격증도없고, 벌어 놓은 돈도 없고 그렇습니다. 뭘 하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구요.  엄마는 초등학교 급식 조리삽니다. 전형적인 비정규직 노동자지요. 한 달에 100만 원 정도 법니다. 요즘 주변에서 정규직 운동 하는 것 같은데, 거기엔 참가하지 않는답니다. 어렸을 적에는 아침엔 신문 돌리고, 저녁엔 목욕탕 청소하시고 그랬습니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 장롱 기술자셨는데, IMF 때 부도가 나 망했습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고기잡이 배 타십니다. 어부 노동자지요. 돈 벌이가 얼마나 되는지 자세히 모릅니다만, 얼마 되겠습니까? 집안 소득이 빠듯 해서 한 달 벌어 한 달 살고 그럽니다. 저축도 없고, 재산도 없습니다. 집도 없지요. 아빠는 고기 잡는 일이 없을 때나 명절에 한 번씩 집에 오셔서 그 때나 한 번씩 아빠 얼굴 보지요.

지금까지 등록금 여덟 번 모두 대출받았습니다. 합이 3000만 원입니다. 이걸 안고 사회로 나가야 하는데... 1년 동안 휴학을 하면서 햄버거 알바를 했습니다. 한 달에 40만 원 정도, 800만 원 정도 벌었더군요. 그런데 달달이 살아가기 바쁘다 보니 번 돈 그냥 다 쓰고 지금 남은 게 없습니다. 엄마도 드리고, 살림살이에 보태기도 하고, 저도 좀 쓰고 하다 보니 남은 게 없는 거지요. 적금 하나 들지도 못 했는데...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셈이지요. 현재는 지난 마지막 달에 받은 월급하고 퇴직금 합해서 80만 원만 수중에 있습니다.

집이 힘들어 더 싼 데로, 더 싼 데로 이사를 하다 보니 학교 앞 달동네로 왔습니다. 전세 조금 하고 월세 해서 사는 작은 집입니다. 그러니 학교 오는데 교통비도 안 들고, 밥은 집에 가서 먹으면 되니까 밥값도 안 들고, 친구들만 안 만나면 돈 들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 80만 원으로 올 겨울방학은 날 수 있겠지요. 그리고는 취업을 할 생각인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평소에 사회운동이나 정치에 관심이 많았지요. 그런 쪽에서 활동가로 일하는 게 낫겠다구요? 국민참여당 당원이긴 한데, 당비도 못 냈으니 당원이 맞긴 한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차피 비정규직으로돈을 벌어도 100만 원 정도 번다면, 그보다 더 적은 활동비를 받더라도 하고 싶은 쪽의 일을 하면서 사는 게 더 나을 것도 같긴 한데... 모르겠습니다.


태그:#미친 등록금, #알바,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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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사 전공의 역사학자. 역사를 분석하는 역사학자로서의 삶도 중요하지만, 역사에 참여하여 역사를 서술하는 역사가로서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현재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이자 해고자생계비지원을 위한 만원의연대 운영위원장 및 5.18기념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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