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쓰는 나라에서 태어나기만 하면 돼요. 일단 한국으로 오세요. 비행기표도 공짜로 준답니다. 오피스텔 월세 걱정하지 마세요. 생활비 걱정하지 마세요. 한국인 교사들이 개인비서 해 주니 한국인과의 소통 걱정하지 마세요. 수업 기술 걱정 마세요. 한국인 교사들이 다 해줍니다. 돈이 더 필요하면 방과 후에 수업 조금 더 하세요." - 기자가 현실에 비춰 가상으로 꾸며본 내용.
어제 학교에서 점심을 먹는데 한 선생님께서 '원어민 교사'가 전부 없어진다는데 사실이냐고 물어오셨다. 초등학교 교사로 7년 동안 영어 교육 관련 업무를 전담하고 있으니 나에게 물어보시는 것은 당연했는데 나는 모르고 있었다. "아, 아직 기사를 못봐서요. 교과부 보도자료라도 챙겨봐야겠네요"하고 얼버무렸다.
부랴부랴 교육과학기술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도자료를 찾아보는데 관련 내용이 없어서 포털 사이트를 검색했더니 '원어민 교사 해고'를 내세운 기사들이 우수수 뜨기 시작했다. 내용인 즉, 서울시의회가 내년도 예산 중에서 고등학교 원어민교사 관련 44억, 초중학교 원어민 교사 관련 49억을 삭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사들이 '전원 해고'니 '퇴출'이니 자극적인 용어들을 사용하고, 사교육이 더 팽창할 것이라는 우려를 전달하고 있었다. 과연 그런가?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4명의 원어민 교사를 만났던 필자의 경험으로는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난 이런 기사들이 서울시와 서울시의회를 흔들기 위한 꼼수로 보였다.
일단, 원어민 교사는 학교 영어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에게는 복불복 게임과 같은 것이다. 수업 기술은 차치하고 근무 태도가 성실한 원어민 교사가 오면 괜찮은 거고, 근무 태도나 품성 등이 좋지 않은 사람이 배치되면 일 년 동안 온갖 스트레스에 뒤치다꺼리를 해야 한다.
서울의 공립 초․중․고등학교에 원어민이 처음 배치되기 시작한 2005년 9월부터 원어민과 협력 수업을 했다. 처음 만난 원어민은 호주 출신이었는데 호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이 안 되었는데 교사인 아버지가 권유해서 한국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한국에 대한 어떤 사전 지식도, 관심도 없고 그저 돈을 벌어서 대학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온 것이다. 그해 10월인가 북한에서 영변 핵실험을 감행했고 이게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당장 무슨 전쟁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겁을 먹고 언제든 떠나겠다고 했고, 전세계적으로 조류 독감이 유행하자 한국 의료시스템을 믿지 못하니 조류 독감이 한국에도 퍼지면 호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 외 시시콜콜한 문제들은 참 많았지만 생략한다. 그러더니 계약을 1년 더 연장해 2년 동안 근무하고 돌아갔다.
두 번째 만난 원어민은 미국 출신. 이미 어학원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몇 년간 수업을 진행했던 경력이 있는 친구였고 한국인 여자 친구와 결혼할 예정이었다. 근무 태도는 성실했지만, 주당 22시간 수업을 넘겨서 오후에 방과후 수업까지 하려고 했다. 돈만 밝히는 것 같아서 씁쓸했지만 일단 아이들이나 학부모 입장에서는 저렴하게 원어민 수업을 받을 수 있으니 해 보자고 했다.
사실 정규 수업에서는 함께 수업 지도안을 짜고 한국인 교사가 교구나 자료들을 준비해주기 때문에 원어민 입장에서는 거의 누워서 떡먹기다. 그럼에도 혼자서 방과후 수업을 얼마나 잘 하나 어느 정도 감독은 필요한 거 같아서 내가 사용하던 교실을 빌려주고 거기서 방과후 수업을 하라고 했다.
원어민 퇴출을 염려하시는 분들이 어떤 수업을 기대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들의 수업 기술이나 능력이라는 것은 그저 시간 때우기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한심했다. 결국 이 원어민은 학교 원어민 교사였다는 경력을 이용해서 더 좋은 자리를 찾아 떠났다.
세 번째 만난 원어민도 미국 출신이었다. 할아버지가 한국전 참전 용사였고, 한국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온 경우였다. 근무 태도도 괜찮고, 사비를 들여 한국어를 배우러 다니기도 하고, 한국 음식에 적응도 잘 해서 일단 좋았다.
이런 외적인 측면이 만족된 경우에는 '교수' 능력을 생각 봐야 한다. 일단 아이들을 좋아했고,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미국 중산층이 지닌 합리적인 아동 인권 개념을 잘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수업 기술에서 보면 참 평가를 하는 것이 어렵다. 나름 열심히 준비하지만 결국 수업은 학원에서 미리 사교육을 받고 온 아이들, 즉 어느 정도 영어로 의사소통할 줄 아는 아이들 중심으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영어를 학교에서 처음 배우는 아이나, 원어민과 소통해 본 경험(주로 학원에서)도 없고 성격도 소심하거나 소극적인 아이는 늘 뒷전이었다. 원어민 교사가 그 아이들을 배려해서 수업하는 것을 본 적이 없고, 그 아이들은 늘 함께 협력 수업하는 한국인 교사들의 몫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수업을 진행하려면 기본적인 '소통'이 되어야 할 텐데 꿀 먹은 벙어리로 있는 아이들에게 원어민이 어쩌겠는가? 아이들도 원어민 영어를 알아들으려고 잔뜩 긴장하거나 귀를 닫아버리거나 하는 것이다.
네 번째 만난 원어민은 캐나다 출신 여성이었다. 여성이어서 그런지 아이들을 배려하는 것이나 수업 기술, 자료 제작 능력 등이 내가 만났던 원어민 교사들 중에서는 제일 좋았다. 이상하게도 원어민교사들은 칼질, 가위질, 풀칠 같은 것에 미숙해서 수업 자료들을 거의 내가 도맡아서 만들어왔는데 이 친구는 좀 달랐다. 어쨌든 이 친구도 1년 계약이 끝나 내년 2월 고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이라고 한다.
원어민을 3천만원짜리 걸어다니는 오디오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만큼 수업 기술이 떨어지고, 교실을 뛰어다니며 장난치는 초등학생들을 영어로만 말해서 집중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왕복항공권에, 월세 70만 원 짜리 오피스텔 제공, 살림에 필요한 모든 가재도구 제공, 월 200~300만 원의 급여에 주당 22시간이 넘을 경우 수당까지 지급하는 것을 감안했을 때, 원어민 교사는 비용 대비 효과가 미미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계속 학교에 남아서 수업 기술을 연마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그렇다면 아깝지 않다), 그저 1년 짜리 계약직이기 때문에 쌓이는 것은 없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혈세가 흘러나가는 것이다.
원어민 교사를 이렇게 일시에 '해고(엄밀히 말해 계약 기간 종료이지만)'하면 수업에 무슨 큰 차질이 생기는 것처럼 오해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원어민은 '강사' 신분이기 때문에 혼자서 정규 수업을 해서는 안되고 반드시 한국인 영어 교사가 함께 수업을 해야 한다. 그러니 둘이 하던 수업을 1명이 하게 되는 것이고 원래 그랬던 것이다.
서울시의회의 원어민 강사 관련 인건비 삭감을 환영한다. 학교에 원어민이 없어져서 학원으로 더 몰릴 것이라는 것은 이미 커질대로 커진 사교육 시장에 호재일지 모르지만 이미 학부모들은 무조건 원어민 교사가 수업하는 게 좋은 게 아니라 우리 한국 상황에 맞는 영어 교수법과 학습법을 찾아가야 한다고 믿고 있으니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 원어민 교사에게 줄 돈으로 아이들에게 밥 좀 먹이면 어떤가? 우리 미래를 위해 더 필요한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