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그만큼 완전범죄는 없다는 뜻일 것이다. 살인죄의 경우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요즘처럼 지능범들이 다양하게 활개치긴 하지만 범인들은 모두 자취를 남기지 않을 수가 없다. 설령 범인이 남기지 않더라도 살해당한 피해자가 그걸 남기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한국 최초 법의학자인 문국진의 <지상아와 새튼이>는 그 면면을 속속들이 파헤쳐준다. 각각의 살해사건을 자살로 꾸며내고 또 위장하지만 사건 현장을 감식하면 모두들 타살임이 드러난다는 게 이 책의 요지다. 물론 그 중심에 경찰도 있고, 검찰도 나서지만, 결정적인 사건의 실마리는 법의관들의 감식결과에 있음을 알려준다.
일례로 일본 동북지방의 작은 공장에서 일어났던 여자 청년의 살해사건이라든지, 조그마한 항구의 다방에서 영업하던 미모의 한 마담에 살해된 현장이라든지, 임신한 여자 청년을 강물에 밀어뜨리고서 마치 강물로 뛰어든 것처럼 꾸민 일이라든지, 여비서의 임신 사실을 알고 '아비산'이 든 주스를 마시게 하여 독살시킨 뒤 시체를 돌에 매달아 강물에 던져버린 일 등, 다양한 살해사건 현장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한 사건도 몇 몇 알려준다. 농촌의 삼형제에 관한 이야기인데, 큰 형이 혼인을 하여 자식을 낳았는데, 첫째와 둘째와 셋째 아이들이 각각 다른 혈액형을 보유한 것이다. 이른바 큰 형 밑의 둘째와 셋째와 함께 형수가 바람이 났던 것이다. 그 사건을 바라보던 문국진으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다음과 같은 말로 큰 형에게 위로 겸 격려의 말을 해 주었다고 한다.
"K씨! 당신에 삼형제는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한 핏줄이오. 비록 태어난 자식 중 둘은 당신 자식이 아니지만, 당신과 같은 핏줄인 것은 분명합니다. 다른 사람의 핏줄을 모르거나 알고도 자식으로 거두는 사람들도 많고, 또 동생의 자식을 아들로 삼고 키우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당신도 잘 알 거요. 이 경우는 그래도 모두 당신과 같은 핏줄 아니오. 이제 와서 이런 사실을 낱낱이 밝혀 평지풍파를 일으켜서 좋을 일이 뭐가 있겠소. 모두에게 좋은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93쪽)또 하나 재밌는 사건이 있다. 두 부부가 신혼여행 3일째 되던 날에 신부가 아랫배의 통증을 호소한 사건이다. 신부의 소변검사는 '이상한 균' 때문이라고 판명이 났고, 결국 그게 발단이 되어 남편의 '성병'으로까지 확대된 것이었다. 결국 그것은 성병 때문이 아니라 그람음성간균이 원인인데, 그것은 여자의 항문 주위에 있던 대장균이 그녀의 질까지 침범한 결과였던 것이다. 그런 요인으로 여성들은 종종 월경 뒤에 오줌소태를 자주 겪는다고 한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것은 '바기니스무스'와 관계된 사건들이다. 조그마한 농촌 마을에 한 쌍의 처녀총각이 결혼반대를 무릅쓰고 밀회를 즐기는데, 그 날 보리밭에 뱀 한 마리가 처녀 옆을 지나간 것이었다. 순간 처녀는 너무 놀라 '바기니스무스'가 일어났고, 총각의 성기는 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점점 시간이 흐르자 서로가 진땀이 났고, 둘은 탈진하여 의식을 잃어버렸고, 그 모습을 동네 노인이 발견하여, 의사의 왕진이 있은 뒤에야 성기가 빠졌다는 것이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나 붙어 있는 두 사람을 옮길 수가 없었다. 결국 의사 선생이 보리밭까지 왕진을 나왔고, 치료를 하고서야 성기가 빠졌다. 그런데 이 날의 사건이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에게는 전화위복이 되었다. 온 동네 사람들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였으니 양가 부모들도 더 이상 결혼을 반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바기니스무스가 두 사람이 결혼에 골인하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113쪽)본래 이 책은 리라이팅된 것들이다. 문국진 박사의 <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다>는 인터뷰 집의 후속조치로 나온 산물이다. 1985년과 1986년에 발간된 <지상아>와<새튼이>와 더불어 한국 사회를 잘 보여준 몇 편의 글들을 골라서 다시금 한 권으로 엮은 책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여전히 기똥차게 재미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물론 각각의 사건현장 속에 있었거나 그 피해를 당한 분들에게는 명복을 빌어야 하는 일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