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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강애심 역)가 곱게 분장한 채 열창하고 있다.
▲ "빨간시"의 마지막 장면 할머니(강애심 역)가 곱게 분장한 채 열창하고 있다.
ⓒ 문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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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사회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면서도 이곳저곳에서 부당한 처사를 많이 겪어오곤 했다. 여성의 '성'에 대해서는 특히 많은 난제들이 존재한다.

극단 고래의 창단극 <빨간시>의 시연회가 지난 9일 저녁 혜화동 1번지 극장에서 열렸다. 극단 고래 이해성 대표가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은 <빨간시>는 12월 10일부터 1월1일까지 공연될 계획이다.

이 연극은 이 사회의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연극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천 번째 수요집회를 기려 여인의 아픈 삶을 그려낸다. 또 인간사의 삶과 죽음, 고통과 상처, 아픔과 치유를 말한다.  

왼쪽부터 수연과 동주, 그리고 할머니
▲ 연극 "빨간시"의 첫장면 왼쪽부터 수연과 동주, 그리고 할머니
ⓒ 문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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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강애심 역)와 기자일을 하는 손자 동주(김동완 역), 그가 술집에서 만난 여인 수연(강소영 역), 이렇게 셋이 등장하며 시작된다. 집마당에 있는 세 사람은 한 남자와 두 여자, 가족과 연인관계이다.

다르게 말하면, 가해자이지만 스스로 시달리는 남자와 피해자이지만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어했던 두 여인이 나란히 한자리에 있는 것이다. 여기 두 여인의 이야기가 연극의 줄기이다.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의 이야기를, 수연은 고(故) 장자연 사건을 소재로 젊은 여성의 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할머니는 아비를 알 수 없는 일본놈의 씨를 뱄다. 그렇게 해서 낳은 자식이 손자인 동주의 아버지(신덕호 역)인데, 할머니는 그 비밀을 한 평생 가슴에 묻어뒀다. 술집에서 지냈던 수연의 자살 때문에 괴로워하던 동주가 갑자기 죽은 채로 발견돼 온 집안이 발칵 뒤집힌다. 할머니는 동주를 못 보낸다고 그대로 두라 하며 애꿎은 꽃에다가 "생화는 시드니까 싫다"고 화풀이만 하고, 어머니는 목놓아 울고, 아버지는 넋이 나가 있다.

인간세계의 시작으로 동주를 인도한다.
▲ 옥황이 동주에게 주문을 거는 장면. 인간세계의 시작으로 동주를 인도한다.
ⓒ 문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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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의 실수로 죽을 운명의 할머니를 대신해 동주가 하늘세계에 불려가 삶의 시작과 끝을 체험하게 된다는 설정이 재미있다. 살아갈 의욕이 없는 동주는 삶으로 돌아가라는 옥황(최수현 역)과 염라(유병훈 역)의 말에도 불구하고 돌아가기 싫다고 한다.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라며 주문을 걸며 옥황은 삶과 시작으로, 염라는 죽음과 끝으로 의식을 잃은 동주를 번갈아 인도하며 인간사의 갖가지 처참함과 쓴맛을 느끼게 해준다.

연극의 코믹요소로서 무거운 주제를 완화시킨다.
▲ 옥황과 염라 저승사자들의 춤 장면. 연극의 코믹요소로서 무거운 주제를 완화시킨다.
ⓒ 문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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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의 삶과 꿈 많은 신인 여배우의 자살을 다루지만, 이 연극은 중간마다 익살스럽고 코믹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일반적으로 무섭게 느껴지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염라와 옥황으로 남자와 여자로 대비하며 코믹하게 그려낸 것도 인상적이다.

젊은 저승사자들(박정민, 이운호 역)은 주문도 잘 못 외우고 죽는 이를 착각하여 엉뚱하게 젊은 동주를 하늘 세계로 데려오는 등 실수를 벌인다. 연극을 더욱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다. 또한 각 배역들의 상황을 춤과 노래로 표현하여 어렵고 무거워질 수 있는 부분을 완화한다.

무대는 빨간색이 주를 이루고, 막과 막 사이에서 텍스트 배경의 간막 영상을 투사하며 작은 공간을 입체적으로 사용했다. 무대는 작지만 모든 사건이 다 일어나는 집의 마당을 표현해 대문과 집 안으로 들어가는 마루가 잘 표현됐으며, 무대 정면 안쪽으로는 꽃나무가 그려져 있는데 그 뒤로는 또 다른 이야기가 커튼 뒤로 보이게 하고, 블라인드가 드리워져 있을 때는 영상이 비치는 커튼의 역할을 한다.

재미있는 하늘 세계에 젖어들 즈음, 무대 왼편에서 이윽고 할머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표정이 공허하고 담담하다. 왼쪽 무대 뒤편 블라인드 벽에 할머니의 모습이 실시간 영상으로 두 개의 작고 큰 이미지로 투사돼 시간의 귀로를 보여준다.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로 살게 된 배경과 그때의 참담한 일화들을 생생하고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동주가 수연을 목조르고 있다.
▲ 하늘세계 이야기. 동주가 수연을 목조르고 있다.
ⓒ 문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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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동주와 수연의 이야기이다. 동주와 수연의 모습과 수연의 나체, 꽃밭의 영상이 번갈아 보여지는데, 동주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그리고 수연이 무대로 등장해 편지를 읽으며, 자신의 여배우로서의 꿈과 희망, 그리고 짓밟혔던 치욕스런 장면들을 이야기한다. 가해자인 동주가 여성을 대표하는 수연을 짓밟는 장면이 형상화하며, 또한 할머니와 수연의 영정사진이 등장하며 춤을 추기도 한다.

마지막에 그 치매 할머니가 마당 평상 위에 떡 버티고 서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뭉클하다 못해 저민다. 얼마나 한평생 사무쳤으면 그 치매노인이 죽기 직전에 동료 위안부 할머니들 이름을 일일이 하나하나 끝도 없이 부르며 자신의 손주는 보내지 못한다고 부르짖겠는가.

할머니가 손자 동주는 하늘세계로 못보낸다며 단호히 서 있다.
▲ "동주는 못 보내!!" 할머니가 손자 동주는 하늘세계로 못보낸다며 단호히 서 있다.
ⓒ 문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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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에서 할머니는 예쁘게 화장하고 빨간 파마 가발을 머리에 쓴 채, 카바레 조명 아래 멋들어지게 한 자락 노래를 부른다. 숭고하기까지 하다. 처절한 한평생 애환을 담아 노래한다. 

12월 14일 정오에 일본대사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천 번째 수요집회가 열렸다. 많은 인파 속에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들도 함께해 그들의 의식과 입장을 표명했다. 극단 고래의 단원들도 이 자리에 함께했다.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집회에서 일본대사관은 창문조차도 한 번 열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한 세기를 처절한 슬픔과 치욕을 안고 살았을 그분들의 삶에 대해 어떠한 책임이나 공감조차도 보여주지 않는 그들은 참으로 상식이 없다.

극단 고래의 이해성 대표와 출연진들도 함께하였다.
▲ 위안부 할머니 수요집회 1000회 극단 고래의 이해성 대표와 출연진들도 함께하였다.
ⓒ 문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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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까지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문제를 먼저 외치며 주장해야 하는가. 가해자가 피해자의 아픔에 대하여 공감이나 인정하기가 그렇게 힘든가 보다. 이 연극 <빨간시>처럼 그들도 역할을 바꿔보면 어떨까.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는 경험 말이다. 그러면 그들도 좀 더 넓은 안목이 생기지 않을까.


태그:#빨간시, #극단 고래, #위안부 할머니 수요집회, #100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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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하고 작곡과 사운드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대학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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