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2 지방선거 직후 새로운 정치를 열망하는 시민정치운동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기식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민주대연합 노선의 '빅텐트론'을, 이학영 전 YMCA 사무총장은 민주통합과 진보통합을 통한 선거연대 전술을 주장했었다. 두 사람은 창당을 앞둔 민주통합당의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다. <오마이뉴스>는 두 사람을 차례로 만나 시민운동가가 왜 당권도전에 나서게 됐는지 그 이유를 듣는다. [편집자말] |
2008년 6월 20일 자정께였다. 때리지 말라고 애원했지만 그는 흠씬 두들겨맞았다. 코가 깨졌고 허리를 다쳤다. 경찰이 방패로 얼굴을 찍으려 해서 손으로 막다 손목이나 팔에 골절을 입은 이들도 꽤 많았다.
3년 전 어느 봄날,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나갔던 무수한 시민들은 그렇게 경찰로부터 얻어 터졌다. 전두환정권 때도 누워 있는 사람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고 항거했지만, 이명박정부는 귀를 닫았다. 물대포를 쐈고, 해산할 때까지 진압봉을 휘둘렀다. 피 흘려 쓰러지면서도 광화문 네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87년 6월항쟁을 떠올리게 했다.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이던 이학영(59) 진보통합시민회의 상임대표를 처음 만난 건 바로 그날이었다. 경찰로부터 상당한 구타를 당한 그는 용산의 허름한 병원에 입원했고, 나는 그를 찾아가 인터뷰했다. 살다살다 이런 정권 처음 본다는 그는 왜 반MB연대를 해야 하는지,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투표로 시민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곤 한동안 그를 만나지 못했다. 2년 뒤 2010년 지방선거가 끝난 그해 여름, 새로운 정치의 비전을 묻고자 서울 북창동 YMCA 전국연맹 사무실로 그를 찾아갔다.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였지만, 사무실엔 에어콘이 없었다. 지구를 위한 나름의 실천이라고 했다. 온몸에 땀이 흐르는 기자에겐 '물 세컵의 지혜'를 알려주었다. 찬물 세 컵이면 더위를 날려보낼 수 있다는 것.
대학생 시절 긴급조치 4호 위반으로 구속됐던 그는 줄곧 시민운동에 헌신했다. 전남 순천 YMCA와 한국YMCA전국연맹에서 사무총장을 지냈다. 이명박정부 내내 새로운 정치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요구받던 그는 'NGO형태의 정당'을 만들자고 제안했었다. 시민의 뜻에 부합하는 새로운 정당은 가능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현재 수준이면, 통합되도 안철수 입당 안 할 것"결국 그는 그 정당을 만드는 과정에 힘을 쏟게 됐다. 진보통합시민회의를 만들어 혁신과 통합에 합류했으며, 곧 창당될 민주통합당의 대표로 출마하기로 했다. 몇 년 새 인생의 가장 큰 변화를 겪고 있는 그는 "안철수도 입당 가능한 정당을 만들겠다"는 구호로 출마의 변을 대신했다.
그는 13일 서울 여의도의 한 찻집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민주당 전당대회를 보면서 끝없는 절망을 느꼈다"며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난파선이기는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학영 대표는 "현재와 같은 수준이라면 통합이 돼도 안철수 교수나 박원순 시장은 입당하지 않을 것"이라며 "국민이 지도부 경선 때 혁신파 3명만 당선시켜준다면 안철수 교수도 입당 가능한 정당을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지난 11일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렸다. 통합을 의결했지만 잡음이 많다. 어떻게 보았나.
"민주당 전당대회를 지켜보면서 정말 끝없는 절망을 느꼈다. 집권을 눈앞에 둔 세력이 이렇게 시대의 변화에 둔감해서 어쩌나 탄식이 쏟아졌다. 지난 10월 3일 서울시장 후보 경선 당시 장충체육관으로 몰려들던 시민 물결을 잊었나 묻고 싶다. 사람들은 지금 한나라당이 난파선이 됐다고 걱정하는데, 민주당도 똑같은 난파선 신세다. 거대한 시민의 물결 속에 외면당한 채 쓸려갈 위기에 처했는데도 아직 그 위기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힘으로, 조직으로 밀어붙이는 식은 70~80년대 스타일이다. 국민이 누가 감동하겠나."
- 박지원 전 민주당 원내대표는 전당대회 당시 "이런 통합에 반대한다"고 비판했다. 박 전 대표가 왜 이런 통합에 반대한다고 했을까."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제기하는 것은 형식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집안에서 무슨 일을 추진할 때 아버지 혼자 결정하고 다 따라오라는 식이면 정말 가족 내 소통이 부족한 것 아닌가? 마찬가지로 민주당 내부에 소통과 민주주의가 부족했다면 그 자체로 정당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문제제기가 전체 통합의 흐름을 왜곡시켜서는 안 된다. 혁신과 통합, 수권정당으로 가는 길이 가로막히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혁신된 새 정당을 만들려는 흐름 앞에서 자신의 기득권이 무산될까 두려워 저러는 게 아닌가 국민들이 박 전 대표를 오해하면 어쩌나."
-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박 전 대표 스스로 오해받지 않도록 혁신의 내용을 모두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것이 좋겠다. 당대표가 된다면 혁신과 통합의 모든 혁신 내용을 수용한다, 이것이 국민의 길이다, 그러면 좋겠다. 지금 국민들이 민주당을 어떻게 보겠나. 시대의 흐름을 거역하는 정당으로 볼 것이다. 대승적으로 보고 혁신의 물결에 함께 했으면 좋겠다."
"시민이 참여하고 싶은 정당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화두"- 시민통합당은 국민들에게 새로운 정치를 보여주겠다는 각오로 시작한 건대, 폭력사태로 물든 민주당과 꼭 통합해야 하는 이유는 뭔가."대다수 당원의 뜻은 그날 폭력사태와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밑바닥 당원들은 1980년 5·18 광주민주항쟁 이후 자식들이 맞아 죽어가는 걸 보면서도 그 당을 지켰다. 박정희 정권 시절 중간 간부들은 민주당 관련자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협박에 시달렸고 아무런 사업도 못하는 지경까지 갔다.
그런데도 끝까지 조직활동을 하면서 그 당을 지켜냈다. 그게 호남 당원들이다.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킨 당원들이다. 그걸 호남기득권이라고 매도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는 그분들이 당의 정책결정과정, 지도부 구성과 공직후보 선출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 시민통합당은 더 큰 민주당을 만들기 위한 페이퍼정당(종이정당)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당 대 당 통합을 위해 급히 만들어진 정당이니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곧 합당절차를 밟게 됐으니 얼마 안 갈 정당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시민통합당의 정신만은 오래 갈 것이다. 시민이 참여하고 싶은 정당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우리들의 화두다. 아직도 무당파가 40% 존재한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정당이 없어도 그를 대통령으로 찍겠다는 사람들이 무수히 존재한다. 한국 정치사에서 불가능한 일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왜 국민들이 이런 바람을 갖게 됐을까. 그 점을 고민해야 한다."
- 가칭 민주통합당이 창당한다면 그 당에 안철수 교수나 박원순 시장도 함께 하나."현재의 수준이라면 함께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형식적인 통합만 갖고 그분들이 이 정당에 입당할 수 있겠나? 새로 민주통합당이 만들어진다면 그 안에 안철수 교수도 박원순 시장도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지금과 같은 통합정당이라면 안철수 교수나 박원순 시장이 함께 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만일 내가 당대표가 된다면 안철수 교수나 박원순 시장이 흔쾌히 함께 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연대를 해서 한나라당을 소수파로 몰아야 한다"- 무엇이 혁신된 정당의 내용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인가."기성 정당은 기존 정치인들만의 리그를 벌인다. 그것으로는 새로운 정치를 기대할 수 없다. 그들끼리만 지도부를 구성해서는 평범한 시민들의 의사가 낄 틈이 없다. 당원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도 지역에서 신뢰를 받는다면 국회의원 후보로 나설 수 있어야 한다. 시민들에게 전면 개방된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시민 속에서 정책이 나와야 한다. 시민과 당원 모두 똑같이 벽이 없는 정당이 돼야 한다. 카페처럼 편안한 정당, 시민의 생활 속으로 정치가 들어갈 수 있는 정당이 돼야 안철수 교수도 들어올 수 있는 정당이 되는 것이다."
- 민주당과 통합해도 시민통합당은 여전히 소수파다. 혁신의 내용을 담보할 수 있겠나. "지도부 구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민주통합당의 다수파가 되어 국민들로부터 지지받는 활동을 하면 정치의 구심이 바뀌는 것이다. 한국사회에 쌓인 정치적 과제가 많다. 용산참사, 쌍용차 정리해고,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등으로 촉발된 비정규직 문제들, 종합편성채널을 비롯한 언론전횡, 검찰개혁. 이건 대통령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개혁적인 국회와 행정부가 힘을 합쳐 처리해야 할 일들이다."
- 진보통합시민회의는 당초 통합진보당으로 갈 계획이었다. 입장 선회한 까닭은 무엇인가."진보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독자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입장에 충분히 동의한다. 그러나 2012년 총선과 대선은 너무나 시기적으로 엄중하기 때문에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이 선거연합당을 만들어 내년 총선에서 국회의 압도적 다수파를 구성해야 한다. 통합해서 국민의 지지를 더 많이 받게 되면 비례대표 의석도 더 늘어날 수 있다.
상호 경쟁으로 국민 앞에 실력을 보이고 대통령 경선을 함께 치르면서 집권으로 가야 한다. 진보당이 더 잘할 수 있는 분야의 장관은 그쪽이 전권을 쥐고 집권경험을 쌓도록 하는 게 좋겠다고 본다. 그렇게 두 당이 5~10년 함께 가자. 나중에 국민들이 분가해도 손뼉쳐줄 때 새로운 당으로 가면 된다. 민주통합당은 진보당과 정치연대를 해서 한나라당을 소수파로 몰아야 한다."
- 왜 통합진보당쪽으로 안 가고, 민주통합당으로 건너왔나."진보당은 일단 완성된 집이다. 그 집안에서 안정화와 확산으로 가는 것은 그쪽에서 할 일이다. 이쪽은 혼돈의 상태다. 새로운 세력이 결합하지 않으면 도로 열린우리당이 될 판이다. 도로 민주당이 된다면, 한나라당이 실정해도 지지율은 오르지 않는 상황이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국민이 바라는 정치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 이것이 중요하다. 이 길에서 희생하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가능성 위해 혁신파가 민주통합당 다수 돼야"- 4.27 재보선 당시 순천 공천문제로 진보당 쪽과 갈등이 있었다는 소문이 있는데."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은 내 후배다. 당시 민주노동당이 어렵게 기회를 만들어 후보를 내겠다고 했었다. 야권연대로 민노당 국회의원 1석 만드는 게 중요했다고 본다. 후배와 싸워서 이쪽으로 건너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나는 인생을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
- 민주통합당 지도부 선출과정에 시민사회 후보를 단일화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이번 지도부 구성은 좀 다르다. 딱 한 사람만 가서는 개혁이 성공하기 어렵다. 시민통합당에서는 문성근 대표가 가장 지지도가 높다. 그가 출마해 최고위원에 당선된다고 해도 전체 15인 이내 지도부 구성에서 보면 소수파다. 제대로 개혁을 완수하려면 적어도 3명은 당선돼야 한다. 6명의 선출직 중 3명은 혁신파가 당선돼야 혁신을 담보할 수 있다.
국민들이 혁신파 3명만 당선시켜주면 새로운 정치 보여드릴 수 있다. 민주당의 스타급 정치인들이 휩쓸고 다닐 때 혁신파 1명으로 초라하게 다니게 하실 것인가. 혁신파도 소극적으로 선거에 임할 게 아니라 국민을 믿고 스타들이 총출동해야 한다. 후보단일화는 나중에 해도 된다. 지금 중요한 것은 혁신파에게 국민적 관심이 쏠리도록 하는 일이다. 우리는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출마한 게 아니다. 절대로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
- 혁신파가 민주통합당 지도부의 다수파가 되면 박원순 시장이나 안철수 교수도 입당할 수 있다고 보나."현재와 같은 상태라면 입당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뭐하러 들어오겠나.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되는데 굳이 정치의 복판에 낄 이유가 없을 것 같다. 나라면 입당 안 한다. 그리고 얼마나 곤혹스럽겠나 현 상황이. 그런 면에서 보면 시민사회 출신 혁신파가 당권을 잡고 정당혁신을 제대로 해내야 박 시장도 안 교수도 명분 있게 결합할 수 있다고 본다. 안 교수와 박 시장이 민주통합당에 입당 하느냐 마느냐는 그들의 몫이 아니라 여기서 새로운 정당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 가능성을 열기 위해서라도 혁신파가 민주통합당의 다수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