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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7일 오전 8시30분 과로로 열차에서 사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11월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김 위원장의 조선인민군 제789군부대 시찰모습.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7일 오전 8시30분 과로로 열차에서 사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11월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김 위원장의 조선인민군 제789군부대 시찰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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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거는 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만들어진 한반도 체제에 중대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전후 한반도에서 구축된 '김일성-이승만·박정희'의 냉전체제가 제1기였다면, 6·15 선언을 도출한 '김대중-김정일'의 화해체제가 제2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남측의 김대중에 이어 북측의 김정일까지 유명을 달리함으로써 2기 화해체제에 완전한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향후 제3기 체제가 어떤 모습으로 형성될 것인가다.

한반도의 제3기 체제는 1기는 물론 2기보다도 한층 진전되는 양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진전'이라 함은 '민족 화해와 통일로 나아가는 바람직한 진행'을 의미한다. 김일성과 이승만·박정희는 전쟁 직접 체험세대, 김대중과 김정일은 전쟁의 추체험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북한에 새롭게 등장할 김정은과 2012년 남한에서 탄생될 신정권은 완전한 전후세대가 될 것이다.

향후 지구촌은 냉전체제로 돌아갈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국주의가 복고되어야 할 터인데 21세기의 지구촌에서 왕년의 영·불·독·이·러·미 중의 어느 한 나라만큼이라도 국제무대에서 무례하게 발호할 저력을 가진 나라는 없다. 아니 더 이상 순순히 피지배를 허락할 약소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향후 지구촌은 최소한 군사적으로는 화해와 타협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국주의와 냉전체제의 종식, 문제는 향후 3~4년

북한 통치자의 급작스러운 죽음은 한반도 정세를 순식간에 짙은 농무(濃霧)로 흐려놓은 것 같지만 기실은 그렇지만도 않다. 그의 죽음은 역설적이게도 저간에 드리워져 있던 농무를 희석시킬 가능성이 높다. 고비는 향후 3~4년에 있다. 2015년은 김일성이 북한의 정권을 잡은 지 70년째가 되는 시점이다. 그의 손자인 북의 김정은과 남의 차기 대통령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한반도 정세는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낙관적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북에서는 김정은 체제가 무리 없이 자리를 잡을 것으로 보인다. 1994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했을 때 남측에서는 온갖 추측과 예상이 난무했지만 어느 것 하나 들어맞은 것이 없었다. 이후 후계자 김정일 체제는 17년간이나 온존했다. 하물며 김일성의 죽음에 비하면 이번 김정일의 죽음은 덜 충격적이다. 그의 건강 이상설이 나돈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으며, 아들 김정은에 의한 후계체제도 이미 공식화되어 있는 상태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과도한 추측과 냉전·수구적 사고에서 헤어나지 못한 관측은 퇴행적인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일단 우리는 동족 지도자의 죽음에 대해 애도를 표시하는 예의와 아량을 보여야 한다. 정부에서는 속히 조문단 파견(또는 조의 표명)을 추진하는 일 말고는 딱히 할 일도 없다고 말한다면 무조건 불온하면서도 안일한 태도일까?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전한 북한의 '특별 방송'에서도 "우리는 김정은 동지의 령도에 따라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어 오늘의 난국을 이겨내 주체혁명의 위대한 새 승리를 위하여 더욱 억세게 투쟁해나가야 한다"고 보도했으며, "혁명의 길은 간고하고 조성된 정세는 준엄하지만 위대한 김정은 동지의 현명한 령도 따라 나아가는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의 혁명적 진군을 가로막을 힘은 이 세상에 없다"고 했다. 예상대로 김정은은 장의위원의 제1번 서열에 올랐다. 

동요 없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후계 체제

이런 사실들은 북한의 후계체제가 동요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고(아니 벌써 이루어졌다고) 보게 만드는 유력한 징표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의 집권세력은 자기들이 흩어지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누구보다도 더 진지하게 인식하고 있는 집단이다. 이 과정에서 군부의 신뢰를 받는 장성택은 조카 김정은을 뒷받침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김정일 사망 후인 17, 18일에도 미국과 핵협상을 벌이며 얻어낼 것을 다 얻어내는 침착함을 보였다.

김정일이 추구했던 선군정치와 강성대국론의 기조에도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여전히 중국과 혈맹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돈독한 동맹국 지도자의 서거에 예의를 갖추어 북한이 발표하는 소식만 전할 뿐 어떠한 논평도 삼가고 있다.

문제는 오히려 우리에게 있는지도 모른다. 남한은 북한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이지만 북한을 잘 모르는 권력자와 국민이 득실거리는 나라다. 남한의 국정원은 지척의 지도자가 죽은 이래 3일 동안이나 그의 죽음을 인지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미래는 조금 멀리 볼 때 결국 낙관적이다. 앞서 말했듯이 김정은은 완벽한 전후세대다. 그의 주변은 젊고 새로운 인물들로 교체 또는 보강될 것이다. 그가 대중·대미관계와 핵문제 그리고 대남 화해 등에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가 우선적으로 중요하다. 임기가 1년 남짓밖에 남지 않은 이명박 정부지만 김정은이 보다 전향적인 운신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분위기를 조성해 줄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한의 차기 집권 세력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열차에서 현지지도 중 과로로 사망했다고 보도한 가운데,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TV 모니터를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뉴스속보를 지켜보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열차에서 현지지도 중 과로로 사망했다고 보도한 가운데,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TV 모니터를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뉴스속보를 지켜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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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남한의 차기 집권세력이 누가 되느냐에 있다. 북한에 신세대(?) 권력이 들어섰듯이 남한에도 전쟁이나 냉전과는 무관한 시민세력이 등장해야 할 이유가 한층 분명해졌다. 남한의 차기 집권 세력은 친일은 물론 '과(過)친미'와도 일정한 거리를 두는 세력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종북이나 반미 세력이 정권을 잡아야 한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아무튼 차기 집권 세력은 수구적인 친일세력과 아주 무관하고 과거의 대미 종속성에서도 자유로운 세력이어야 미국과 보다 진전되고 건전한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가 있다.

9·11 테러와 미국 발 금융위기는 미국의 패권을 선명하게 균열시켰다. 이제 다수의 미국인은 자국의 세계 패권이 붕괴되는 것을 더 이상 고통스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미국인도 수용하는 미국의 후퇴를 한사코 인정하지 않는 세계 유일 집단이 바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다. 미국의 후퇴와 함께 나타난 유럽의 위축, 일본의 쇠락이 아니더라도 중국의 부상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확신하건대 남과 북의 새로운 집권 세력이 주체적으로 화해를 도모하고 아울러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면 통일은 결코 요원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서거는 한반도의 평화를 진전시키고 남과 북을 통일로 근접시키는 명백한 전기를 마련해 줄 수도 있다. 그러길 기대한다.


태그:#김정일, #김정은, #차기정부, #한반도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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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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