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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2006년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대학원 과정을 수료했으며 석사논문으로 <북한의 국민정체성과 한국전쟁>을 발표했습니다. 세종연구소 등에서 북한학 관련 연구조교로서 탈북자들을 인터뷰했었고, 현재 물류업에 종사하며 개성공단 근무를 위해 노력 중입니다. - 기자 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7일 오전 8시30분 과로로 열차에서 사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9월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노농적위대 열병식 모습. 김 위원장과 김정은이 열병식을 지켜보고 있다. 2011.12.19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7일 오전 8시30분 과로로 열차에서 사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9월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노농적위대 열병식 모습. 김 위원장과 김정은이 열병식을 지켜보고 있다. 2011.12.19 ⓒ 연합뉴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죽었다. 1974년 북한의 공식적인 후계자로 등장한 뒤, 1998년 국방위원장으로 취임해 북한을 13년간 통치해 온 김정일이 사망한 것이다.

평소 그의 건강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언론들은 사망 소식을 접하자마자 미리 준비해 놓은 듯 관련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는데, 그 내용은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후와 비슷했다.

김정일의 일대기, 북한 현지의 표정, 그리고 그의 죽음이 한반도 정세에 끼치는 영향 등등. 다만 북한이 곧 무너질 것이라는 소설을 진실인 듯 보도했던 1994년에 비해, 이번에는 김정은 체제에 대해 좀 더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 중 나의 관심을 가장 끈 것은 북한 현지 표정이었다. 1994년 김일성 사후와 비교해 거의 엇비슷한, 오열하는 북한 인민들의 모습. 그들은 의아할 정도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슬프게 통곡하고 있었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과연 진실인지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어차피 남한 정부의 입장에선 북한 체제가 역시 비정상임을 은연중에 강조하기 위해서, 북한으로서는 내부 구성원들에게 일체감을 조성하기 위해서 그와 같은 장면을 보여줬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난 궁금했다. 실제로 그곳 사람들은 그렇게 슬퍼하고 있을까? 또 현재 언론에서 보여주는 것은 평양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모습일 텐데 북한에서 최고위층을 대변하는 평양 주민들이 북한 전 인민을 대표할 수 있을까?

비슷한 듯 다른 모습의 1994년과 2011년

이와 관련하여 몇몇 언론들은 김정일 사후의 북한 표정이 김일성 사후와 다른 듯하다고, 혹은 평양의 표정을 두고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베이징발 기사에서 "북한 평양은 평상시와 다름없는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 교통의 흐름도 평소와 다름없다"고 했으며, 대북단파라디오 <열린북한방송> 등에서는 대북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 사망 당시와는 달리 김정일 사망에 대해 침착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보도가 나온 직후에는 온 나라(북한)가 울음바다가 됐다, 하지만 이번에 김정일 사망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고 보도했다.

비록 공식적으로는 북한 인민들이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지만, 1994년과 비교하면 평양의 분위기는 담담한 편이며 이는 다른 지역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소식을 접한 북한 주민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19일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소식을 접한 북한 주민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19일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 연합뉴스

사실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 북한 인민들은 모두 하나 같이 슬퍼했다고 한다. 2002년에 탈북 한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북한 인민들은 전국적 애도기간 동안 의무적으로 김일성의 동상이나 초상화 앞에 가서 울어야 했는데, 그 행위가 결코 강제만은 아닌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는 것이다. 비록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었다는 일화는 믿지 않지만, 어쨌든 김일성이 항일혁명투사로서 북한을 이만큼까지 끌고 왔다고 생각한다는 그들.

결국 이와 같은 탈북자들의 증언은 김일성 주석이 북한 인민들에게 신화 같은 존재였음을 보여준다. 해방 이후 벌어진 남북 간 체제대결에서 친일파를 척결하고 토지개혁을 단행함으로써 북한인민들에게 자부심을 안겨주었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파괴된 국가경제를 복구하여 남한보다 나은 삶을 제공하였으며(70년대 이전), 자칫하면 위기가 되었을 중소분쟁 시기에도 철저한 등거리 외교로 오히려 실익을 챙겼던 김일성을 북한 인민들은 존경했던 것이다.

북한은 90년대, 동구권이 무너진 이후 체제를 수호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로서 '사회주의' 대신 '민족'을 내세우기 시작했는데, 이때 북한 정권이 한민족 대신 소위 '김일성 민족'이라는 담론을 내세운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그만큼 북한 정권이 북한 인민들의 김일성에 대한 존경심을 자신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바로미터이다.

김일성과 다른 김정일에 대한 평가

그러나 김정일에 대한 탈북자들의 평가는 김일성과 다르다. 김일성이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신화의 영역이라면, 김정일은 인민들의 하마평에도 오를 수 있는 현실 속의 지도자인 것이다.

최근에 탈북한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들은 1995년 소위 '고난의 행군'은 자연재해와 미제의 압박 등으로 겪은 고통이라고 치더라도, 이후 북한 경제난의 책임은 김정일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김정일에 대한 북한 인민들의 신뢰는 지난 2009년 화폐개혁의 실패로 더욱 악화되었는데, 3대세습은 그러려니 해도, 화폐개혁 실패를 빌미로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을 총살한 것은 어처구니없다는 게 그들의 의견이었다. 어쨌든 위원장이 결재하고 실패한 일을 박남기한테 떠넘겼다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탈북자들은 이번 김정일 사망과 관련하여 북한 인민들의 여론이 담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보가 차단되어 있다가 갑자기 소식을 들은 김일성의 사망과 달리 김정일이 아프다는 것은 지난 3년 내내 들어왔고 또한 김정일에 대한 평가가 김일성과 같이 그리 곱지만은 않은 바, 그만큼 무덤덤하다는 것이다.

물론 탈북자들의 진술을 100% 신뢰할 순 없다. 그들은 남한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말만 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들의 보도와 비교해 볼 때 김정일과 김일성에 대한 인민들의 다른 평가는 어느 정도 사실인 듯하다. 이제 북한 인민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과거 항일투쟁의 혁혁한 전공에 대한 추억이 아니라 지금 당장 먹고 사는 생계의 문제이며, 북한의 지도자에 대한 평가 역시 이를 기준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체제 유지의 필수조건은 인민들의 생존이다

 북한 조선중앙TV가 20일 오후 평양 금수산기념궁전 유리관 속에 안치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은 김 국방위원장의 시진이 공개된 금수산기념궁전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당정군 핵심 인사들이 김 위원장을 애도하고 있다. 사진제공=통일부
북한 조선중앙TV가 20일 오후 평양 금수산기념궁전 유리관 속에 안치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은 김 국방위원장의 시진이 공개된 금수산기념궁전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당정군 핵심 인사들이 김 위원장을 애도하고 있다. 사진제공=통일부 ⓒ 통일부

먹고 사는 문제로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평가가 갈리고 있음은, 결국 향후 북한의 김정은 체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히 보여준다. 김정은은 신화 속 영웅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북한 사회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많은 정보가 유통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체제에서 강제하는 생각과 다른 생각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신화는 김일성 주석만의 것일 뿐, 결국 그의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신화가 될 수 없었음은 탈북자들의 증언에서도 드러나지 않는가.

따라서 김정은 체제는 무엇보다 인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에 천착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들의 바람대로 현 체제유지가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그 체제유지의 필수조건은 결국 인민들의 여론, 인민들의 생존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 김정은 체제의 약점, 즉 김정은이 후계자수업을 3년 정도 밖에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오히려 장점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확고한 체제를 구축했던 김일성,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 체제는 그 리더십이 완성되지 않은 바, 좀 더 유연하게 많은 의견을 들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정은은 29살의 젊은 나이로 비교적 혁신적인 정책을 펼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은 김정은 체제가 중국과 비슷하게 집단지도체제로 가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 김정은의 유약한 권력기반과 경험부족으로 인해 1인자에게 권력이 집중되던 기존 체제가 변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집단지도체제가 안착된다면 북한은 이전보다 좀 더 합리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그랬듯이 1인 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쏟아 붓던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김정은에 대한 북한 인민들의 기대심이 김일성, 김정일과 같지 않다는 것 역시 유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초기에는 내부적인 반발 등으로 인한 혼란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를 슬기롭게 타개할 수 있다면, 그리고 신화가 아닌 현실 속에서 북한 당국의 정책이 일정부분 성공을 거둔다면 김정은 체제는 생각보다 많은 인민들의 지지를 얻게 될 것이고 이는 북한의 변화에 일정부분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요컨대 북한은 현재 김일성, 김정일 시대를 끝으로 소위 '정상국가'가 될 수 있는 지점에 와 있다. 물론 혹자들은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여 또 다른 세습을 준비하려 하겠지만, 부디 김정은 체제가 그와 같은 어리석은 길을 걷지 않길 바란다. 더 이상 신화는 성공할 수 없음을 김정일을 통해 목도하지 않았던가.

마지막으로 북한의 김정은 체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해 하고 있는 우리 정부에게 이야기한다. 괜히 김정일의 사망 소식을 가지고 현 정국에 어떻게 이용할까 꼼수부리지 말고,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한반도의 불확실성을 최소화 하는 것임을 잊지 말도록 했으면 한다. 정부의 바람대로 북한이 붕괴되어 탈북자가 밀려든다면, 이 역시 소화하지 못할 것 아닌가.


#김정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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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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