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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일 김정은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빈소에 참배하고 있다.
 지난 20일 김정은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빈소에 참배하고 있다.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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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후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수습과정은 그야말로 일사천리다. 남한의 대북 정보채널은 말할 것도 없이, 세계 최고 정보력을 자랑하는 미국의 안테나에도 포착되지 않은 사망에서 발표까지의 상황수습에 대한 정보통제는 놀랍기까지 하다. 또 장례 절차와 병행되고 있는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의 포스트 김정일 체제 정비도 상당히 정교하게 진행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발표 직전, 전 군에 훈련중지와 소속부대로의 복귀 명령이 김정은 명의로 하달됐다. 또 체제결속 성격이 짙은 미사일 발사, 특별방송을 통한 김정일 위원장 부고 통보, 외국 조문단 거부, 자국 내 외국인 통제와 국경 단속 강화에 이은 로동신문과 조선중앙TV 등의 매체를 통한 '김정은 중심으로의 결속 선전'은, 북한이 김정은 부위원장 중심으로 치밀한 체제정비 매뉴얼을 구축하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북한은 1994년 김일성 급사의 학습효과와 몇 년 전부터 제기된 김정일 건강 이상으로 긴급상황에 철저히 대비했을 것이다. 현재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후계구도 정착과정은 이미 김정일 생전에 구축된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김정일 사망 수습과정과 김정은 부위원장으로의 권력 이동 작업이 대내외적 변동 요인으로 인해 단순 불발로 끝날 것인지, 견고하게 장기화 될 것인지다.

김정은에게 맡겨진, 풀기 힘든 '숙제'

김정일 위원장은 본인이 '국가 작동과 후계체제 구축의 핵심적 해'로 설정했던 2012년 '강성대국 진입의 해'를 보지 못하고 참으로 드라마틱한 시기에, 참으로 어려운 숙제를 내고 갔다. 그 숙제를 받아 안은 사람은 그의 아들 김정은이다.

2010년 9월 28일, 당대표자회를 통해 후계구도의 공식적인 가시화가 있었고 당·군·정을 아우르는 요직에 김정은 인물이 배치되는 등 상당부문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2012년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통해 공식적, 정서적으로 권력승계의 마침표를 찍었어야 할 김정일 후계작업은 계획대로 되지 못했다. 이제는 마침표가 아닌 김정은 스스로가 역사적 변곡점을 찍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 변곡점은 내부 권력시스템의 안정적 정착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겪고 있는 상당한 경제적 어려움과 악화된 남북관계, 진전 없는 6자회담, 끝내 정상화되지 못한 북미관계와 북일관계 등의 회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어느 하나 돌파구를 찾기가 쉽지 않은 문제들이다.

2012년, 김정일 연출의 강성대국 퍼포먼스 기회는 사라졌다. 이제는 김정은 스스로가 2012년 강성대국 퍼포먼스를 준비해야 한다. 21일 <조선중앙통신>은 '조선인민의 강성대국 건설은 계속되고 있다'란 제목의 글을 게재했으며, <로동신문>은 22일 1면 정론을 통해 "강성국가 건설을 위한 대고조 진군을 힘있게 다그쳐나가는 것은 위대한 장군님의 뜻과 념원을 빛나게 실현하기 우한 성스러운 투쟁"이라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100돐을 민족사적대경사로 빛내기 위한 투쟁을 진두에서 이끄시며 강성번영의 만년 토대를 마련해놓으시였다"고 강조했다.

2012년 강성대국 선포를 못 박은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퍼포먼스의 성격이다. 또 한 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군사강국', '사상강국'을 천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이는 스스로 아버지와 다를 바 없다는 한계를 드러내는 악수가 될 것이다. 핵심은 경제가 되어야 한다. 10만호 살림집 건설로는 부족하다. 가장 실현 가능성 있는 대안은 남북 경협이 될 것이다. 한반도를 관통하는 가스관 사업은 실리와 상징성을 동시에 추구 할 수 있는 사업이다.

내용보단 상징적 의미가 컸던 김정일의 유훈통치

김정일 시신 공개된 날 북한 마을 풍경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신이 조선중앙TV를 통해 공개된 20일 오후 경기도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본 황해북도 개풍군 한 마을의 주택 주위에서 수십명의 주민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불을 피우고 있다.
▲ 김정일 시신 공개된 날 북한 마을 풍경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신이 조선중앙TV를 통해 공개된 20일 오후 경기도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본 황해북도 개풍군 한 마을의 주택 주위에서 수십명의 주민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불을 피우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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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사망 후 김정일은 유훈통치를 통해 자신의 후계 정당성을 차근차근 확보해 나갔다. 수령론의 가부장적인 북한 사회에서 '유훈통치'는 곧 선대의 정통성을 계승하겠다는 의미다. 김정은 역시 유훈통치를 작동시킬 것이다.

<로동신문> 22일자 정론은 "김정일 동지의 유훈을 지켜 주체혁명, 선군혁명의 길을 꿋꿋이 걸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유훈통치가 가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기간은 의미가 없다. 김정일의 유훈통치 3년은 내용보다는 상징적 의미가 컸다. 당시는 공산권의 몰락 등에 대한 후유증으로 지정학적 측면에서의 체제 안정이 시급히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유훈통치의 핵심은 유일사상과 주체사상을 확고히 하는 데에 맞춰졌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북한은 오랜 경제난을 겪고 있으며, 주민 의식은 이미 먹고 사는 문제에 집착된 지 오래다. 김정은의 유훈통치는 김정일이 추진하고 있었던 북중, 북러 경협과 두 번의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생산된 남북 경협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김정일도 생전에 '6·15공동선언'과 '10·4 공동성명'을 금과옥조처럼 여겼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최고 권력자를 중심으로 한 유일지도체계 확립을 위한 사상을 기반으로 주체사상과 선군정치라는 통치이념과 방식을 제시했다. 김정일은 김일성 사망 이듬해 1월 1일 '다박솔초소' 현지지도를 시원으로 통치이념으로서의 선군정치를 다져나가기 시작했다.

1997년 12월 12일자 <로동신문>에서 '선군정치'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했으며, 1998년 국방위원장 등극과 함께 통치이념으로서의 선군정치가 정착단계에 이르렀다. 모든 당사업을 '혁명적 군인정신'을 기반으로 '화선식', '군대식'으로 강화시켰 나갔다. 김일성 사망이라는 내적 불안요소와 공산권 몰락이라는 외적 상황에서는 필연적 선택이었다.

김정은 역시 그의 권력 유지와 3대 세습이라는 명분을 쌓기 위해서는 현 정세가 직시된 새로운 통치이념을 제시할 것이다. 이미 어느 정도의 밑그림은 그려놓았을 수도 있다. 지금의 상황에서 그가 제시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통치이념은 경제와 연관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아직 20대인 김정은은 김일성, 김정일과 같은 정치적 카리스마도 없고, 후계자 수업을 받은 기간 또한 3년에 불과하다. 프로파간다는 그를 향해 있지만, 주민들에 의한 지도자로서의 인정은 미지수다. 확실한 데마고기(대중을 선동하기 위한 정치적인 허위 선전이나 인신 공격)를 구현하기 위해서라도 보다 대중적인 통치이념을 구축 할 필요가 있다.

이 역시 경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의 선대에서 표방했던 '자립적 경제노선', '실리사회주의' 등 공염불에 불과했던 정책에 심폐소생을 가해 자신의 것으로 쇄신시키거나, 새로운 경제발전 구상을 통치이념으로 제시해야 한다. 또다시 사상적, 정치적 수사에 집착한다면 내부적인 '인민'의 신뢰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MB정부의 대북정책, 이대로라면 힘들다

 북한 조선중앙TV가 20일 오후 평양 금수산기념궁전 유리관 속에 안치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제공=통일부
 북한 조선중앙TV가 20일 오후 평양 금수산기념궁전 유리관 속에 안치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제공=통일부
ⓒ 통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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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후계자로서의 연착륙과 주민의 신뢰와 가치를 득하기 위해 경제회생이 선결조건이라면, 남북관계를 비롯한 북미관계와 북일관계 개선은 필수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북한이 남한에서 오는 모든 조문단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은 일단 고무적이다.

북한은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우리의 해당 기관에서는 조의 방문을 희망하는 남조선의 모든 조의 대표단과 조문사절을 동포애의 정으로 정중히 받아들이고 개성 육로와 항공로를 열어놓는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체류기간 남조선 조문객들의 모든 편의와 안전은 충분히 보장될 것"이라며 "이것은 대상국의 슬픔을 함께 나누려는 남조선 각 계층의 뜨거운 추모의 마음에 대한 우리의 예의와 성의 표시"라고 전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다. 북한은 위의 언급에 덧붙여, "남조선 당국은 그것이 앞으로 북남관계에 미칠 엄중한 영향을 생각해야 한다"며 "지금 북남관계는 중대한 기로에 놓여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김정일 위원장 조문에 대한 남한의 태도에 따라 향후 대남전략의 판을 짜겠다는 의도다. 남북관계 개선의 공을 남쪽에 넘겨버린 것이다. 여전히 구태의연한 대남행보의 여운이 남아 있어 개운치가 않다. 이는 남남갈등 유발의 불씨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정은은 보다 유연한 대남정책을 구사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보여 왔던 대남 전략 그대로를 답습한다면 체제 연명은 가능할지 몰라도 발전은 요원함을 인식해야 한다. 이는 북미관계, 북일관계 등에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김정일은 죽고 김정은 시대가 열렸다. 체제붕괴는 없겠지만, 김정은 시대가 단명 하느냐, 롱런하느냐, 롱런을 하더라도 그의 조부와 아버지와 같이 '억압된 부족의 경제'로 롱런하느냐, '새로운 경제혁명'을 통해 롱런하느냐는 오롯이 김정은의 숙제가 됐다. 그의 유연한 사고를 바란다.

덧붙여 그런 그가 되도록 하기 위해선 남한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금의 철학도, 비전도, 개념도 없고, 게다가 실용적이지도 못한 대북정책으로는 힘들다. 실용정부의 이름에 걸맞게 실용적인 접근이 무엇보다 필요할 때다.

덧붙이는 글 | 김선철 기자는 동국대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현재 한국교통연구원 동북아북한교통연구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김정은#김정일#후계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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