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미국 등에서 촉망받는 네덜란드 출신의 가구 디자이너 요리스 라만(Joris Laarman, 1979~)전이 내년 1월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대표 이현숙) 본관에서 열린다. 한국에서 첫 전시회로 뼈 의자, 나무모양의 선반, 숲 테이블 등 예술가구 16점을 선보인다.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아카데미를 수석 졸업한 요리스 라만은 놀랍게도 2008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디자인과 유연한 정신(Design and the Elastic Mind)' 전을 통해 '뼈 의자(Bone Chair)' 등을 선보였는데 이 작품이 뉴욕현대미술관에 영구 소장되는 영예를 얻는다. 이로서 그는 이례적으로 가구 디자이너에서 국제적 예술가로 등극하게 된다.
예술적 감각과 과학적 사고의 융합
라만이 그런 명성을 얻은 이유는 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작가의 말 속에서 함축되어 있다.
"과학자가 예술가의 정서적 창의성과 자유의지를 활용하고, 예술가가 과학자의 규율과 기술을 적극 활용한다면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다."그는 이렇게 예술적 창의와 과학적 사고를 융합하여 디지털세대로 맞는 하이브리드 가구를 만들어 이를 예술로 끌어올렸다.
그는 가구디자인에서 그 통념을 깨고 용접을 하지 않는 획기적인 방식을 도입하여 이를 첨단 IT기술을 통해 실현가능한 디자인으로 만들어나간다. 그래서 회화적 요소와 조각적 요소와 장인의 전통기법도 극대화하면서 가구디자인의 새 돌파구를 연다.
첫 히트작은 라디에이터(radiator)
그런 결과물 중 첫 히트작은 바로 '라디에이터'다. 이것은 추운겨울 방을 따뜻하게 하는 온방장치인데 그 모양이 고급가구와 어울리지 않아 이전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 곳에 설치되곤 했다. 라만을 생각을 획기적으로 바꿔 재료는 알루미늄으로 쓰고 우아한 곡선미 넘치는 로코코 풍의 예술적 감각을 더하여 벽걸이 모양으로 만들어 이 난제를 풀었다.
요리스 라만은 기능주의의 기본원칙인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에도 충실하면서도 손맛 나는 장인정신과 그래픽디자인까지 동원하여 시각적 쾌감까지 맛보게 한다. 그는 이렇게 기능적 실용주의와 장식적 예술성을 멋지게 양립시켰다.
젊은 디자이너가 일으킨 돌풍 '뼈 의자'
라만이 만든 가구디자이너 작품 중 아이콘은 역시 '뼈 의자(Bone Chair)'다. 인간의 뼈를 생체학적으로 연구하여 사람 몸을 가장 편하게 해주는 개념이다. 뼈, 나무 등의 비율을 그래픽디자인으로 치환한 컴퓨터 알고리즘(문제해결방식)을 통해 구체화된다. 과정은 최소화하고 재료할당은 최적화하면서 무게는 적으면서 더 견고하고 안정된 가구를 만든다.
그런데 이게 다 라만의 생각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작가가 웹상에서 검색하다 폭풍에서 잘 부러지지 않는 나무의 속성과 사람의 뼈의 특징 등을 '생체역학'으로 연구하는 독일 칼스루에 대학의 클라우스 마텍(C. Mattheck)교수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100년 전 아르 누보와 통하는 디지털가구
위 '팔걸이의자'은 첨단 IT기술로 요리스 라만가 여러 실험을 통해 발현한 가구디자인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렇게 구멍이 숭숭 난 다공질의 가구가 된 것은 사람의 뼈를 닮아 하중을 받으면 더 강화되고 필요 없는 부분은 비게 되는 원리 때문이다. 이런 첨단의 디지털가구가 산업시대생산방식으로 만든 아르 누보(Art Nouveau)와 많이 닮아있다.
아르 누보가 어떤 것인가 머리에 잘 떠오르지 않으면 20세기 초 기마르(H. Guimar)가 도안한 파리지하철(Metro) 입구를 연상하면 된다. 그 특징은 위에서 보듯 유연하고 장식적이고 환상적인 곡선을 띠고 있다. 이렇게 극과 극은 통하나 보다. 임근준 미술평론가의 지적대로 라만의 디지털 가구는 21세기형 아르 누보라고 해도 좋으리라.
디자인은 시대와 인간의 창조성을 담는 그릇
위 '브리지 테이블'을 보니 "대부분 사람들은 디자인을 겉포장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디자인은 인간이 만든 창조물의 중심에 있는 영혼이다"라고 한 스티브 잡스가 디자인에 대해 멋지게 던진 말이 떠오른다. 이건 가구라기 보단 작가의 혼과 프로정신 그리고 첨단기술이 합쳐서 만든 작은 건축물이자 예술품이라 할 수 있다.
심리학자 도널드 노먼(D. Norman)도 "감각적인 공선과 선명한 색감의 물건을 보면 가슴이 뛰고 사고 싶은 욕망이 치솟는 게 인간의 본능"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21세기는 제품(made in)보다는 디자인(designed by)을 중시하는 시대다. 이제 디자인은 예술 사조처럼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상징코드나 기호체계가 아닌가.
그런 면에서 디자인이 국가경쟁력을 높이는데 최우선과제다. 우린 아직도 금융과 토건 중심의 경제체계지만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디자인체계로 바꿔야 일류가 된다. 1980년대 영국에는 '국가디자인위원회'가 있지 않았던가. 이젠 기업리더십은 물론이고 정치리더십에서도 필수적이다. 광화문광장의 공공디자인이 큰 정치적 이슈가 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첨단디자인이 자연주의로 돌아가다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해보자. 32살인 요리스 라만은 지금도 초기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디자인의 전통적 장인정신도 지켜가면서도 끊임없는 혁신과 실험과 과감한 실험을 시도한다. 동료들과 작업실을 운영하면서 그들이 속하는 디자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비평적 디자인(Critical Design)'관점에서 디자인의 패러다임을 혁신적으로 바꿔가고 있다.
그런 와중에 나온 최적화된 디자인방식이 자연섭리에 따르는 것으로 귀착한다니 뜻밖이다. 작가도 "자연의 섭리는 내 작업의 원천이다(Using mother nature's underlying codes)"라고 말한 것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위에서 보듯 그가 최근에 발표한 가구디자인에서는 나무나 숲의 문양과 형상이 많다. 결국 자연주의로 돌아간 것이다.
요리스 라만(1979-)은 네덜란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디자인 아카데미 에인트호번에서 수학했고 2003년 수석 졸업했다. 2004년에 '월 페이퍼' 매거진에서 주관하는 '올해의 젊은 디자이너상'을 수상을 시작으로 레드 닷 디자인상(2006), 운상(2007), 국제 엘 데코상(2008), 그리고 올해 월 스트리트 저널이 주는'올해의 혁신가상'(2011)도 수상했다.
그는 재학시절 열파장 라디에이터를 제작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쿠퍼-휴이트, 프랑스 현대미술진흥 지방정부기금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했다. 같은 해에 그의 스튜디오와 '실험실(Lab)'을 설립했다. 현재 7명의 직원, 15명의 프리랜서와 동료디자이너인 플로스, 비트라, 스와로브스키 등과 함께 일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프랑스퐁피두센터, 뉴욕현대미술관, 함부르크 미술 공예 박물관독일 비트라 디자인박물관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과 그로닝겐 미술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애틀랜타 하이 박물관, 휴스턴 예술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네덜란드에 작업을 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국제갤러리 www.kukjegalle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