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한 아침, 누구나 한 번쯤 고민했을 장면이다. 작은 손수레에 자기 몸보다 더 큰 폐지 더미를 싣고 힘겹게 길을 가는 할머니들을 그냥 지나칠 것인가, 아니면 도와줄 것인가. 눈앞에 보이는 버스를 놓치면 지각이 뻔했던 나는 그 장면을 지나쳐 버스에 올랐다.
영하 10도의 한파주의보에 유난스럽던 지난 12월 20일 아침에도 할머니들은 폐지를 찾아 동네를 누비고 있었다. 나는 그 사연을 알고 싶었다. 따뜻한 집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이 자연스러울 나이임에도, 그 무거운 짐을 끌고 밤낮없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그 사연과 그들의 삶에 대해서 말이다.
일의 특성상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는 할머니들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재활용센터에서 할머니들이 폐지를 팔러 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할머니가 작고 낡은 손수레를 저울 위에 올려놓았다. 본인의 치수보다 두 치수는 커보이는, 때 묻은 오리털 점퍼를 입은 할머니는 흐르는 콧물을 목장갑으로 훔치고 있었다.
장바구니를 하나 실으면 꽉 찰 것 같은 할머니의 손수레는 옆의 것들보다 훨씬 작은 크기였다. 폐지 무게를 달아봐야 얼마 나오지 않을 것이 뻔해 보였다. 나는 할머니에게 눈길이 머물렀다. 다가가 조심스레 인터뷰를 부탁한다는 말을 건넸다.
"아이구, 난 안 혀. 저기 위에 정자에 할머니들 엄청 많어. 거기 가서 해달라고 혀.""할머니~ 어려운 거 아니구요, 할머니께서 일하시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할게요.""난 아무것도 몰러. 그랑께 다른 사람이랑 혀."돌아서는 할머니를 무작정 따라나섰다. 연신 손사래를 치면서도, 할머니는 웃는 얼굴로 졸래졸래 좇아가는 나를 더 이상 뿌리치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며 걸어가는 도중에도 식당 앞에 놓인 빈 플라스틱 두부상자를 놓치지 않은 할머니는 식당 종업원에게 "이거 가져가도 돼요?"라고 물었다. 종업원은 "예, 아마 될 거예요"라고 답했다. 할머니가 주섬주섬 상자를 챙겨 손수레로 옮겨 실으려는 무렵, 식당 안으로 들어가 주인과 몇 마디를 나누던 종업원은 이내 문을 열고 "할머니 그거 두부회사 것이거래요, 다시 찾아간대요, 죄송해요"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할머니는 아쉬운 듯 상자를 이리저리 살펴보고서는 제자리에 올려놓고, 다시 빈 손수레를 끌었다.
"하루에 12시간을 일해도 폐지가 없어"
김영자 할머니(가명, 69세)는 오전 8시부터 나와 폐지를 수집한다. 평소보다 눈이 일찍 떠지는 날에는 새벽 5시부터 나오는 날도 있다고 한다. 동네를 한 바퀴 돌면 작은 손수레 위에 폐지가 가득 쌓인다. 운이 나쁘면 하루에 두 번, 운이 좋으면 하루에 네 번 정도 손수레에 폐지를 가득 실을 수 있다. 그 짐을 싣고 일개미처럼 재활용센터를 들락날락하는 것이 김 할머니의 하루 일과다.
김 할머니가 말하던 정자에 다다랐다. 모여서 담소를 나누는 할머니들을 지나 아까 미처 손수레에 담지 못한 폐지 더미 옆에 할머니는 엉덩이를 붙였다. 나는 잠시 할머니와의 대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라…. 하루에 12시간을 길에서 일하시는 거네요?""그래도 (폐지가) 없어. 줍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집이(기자를 칭함)가 한번 해봐, 그럼 이 할머니 말이 맞구나 할 거야.""이 동네에 몇 명이나 될까요?""100명은 안 돼도 수십 명은 될 거여."할머니는 아까부터 길 반대편에 있는 폐지 더미를 계속 살피고 있었다. 이유를 묻자 다른 할머니가 모아놓은 폐지를 누군가 훔쳐 갈 수도 있어서 그렇단다. 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30분을 넘어서자 할머니는 마음이 급해졌다.
"아이고, 이 형님이 안 오네. 나도 얼른 한 바퀴 돌아야 하는디…."저녁이 되면 시장과 피자집에서 폐지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장소를 옮긴다. 그래서 낮에는 동네 골목길을 한 번이라도 더 돌기 위해 노력하는데, 오늘은 여의치 않아 보였다.
"저렇게 손수레에 쌓아놓고 있는데도 가져가요?" "아이구, 뭔 소리여. 눈 뜨고(지켜)도 가져가…."50대부터 80대까지 동네의 수많은 노년층들이 폐지수집에 나선다. 개중에는 형편이 조금 여유로워 말 그대로 '운동 삼아', 그리고 '손주 과자 값 벌러' 나오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김 할머니처럼 생계를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형편이 나은 사람들이 할머니와 같은 생계형 수집상에게 양보하지 않겠나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단다.
"집에 여유가 좀 있는 분들은 폐지 보면 할머니에게 양보하나요?" "양보 안 해.""엄청 치열한가 보네요?" "집이가 몰라서 그래. 차로 오지, 구루마(큰 손수레) 오지, 자전거 오지, 오토바이 댕기지…. 집이 와서 하루 동안 앉아 있어봐 겁나….""그럼 할머니처럼 조그마한 손수레 가지고 하는 어르신들은 힘드시겠네요.""그렇지…."그래도 요즘엔 김 할머니의 일이 좀 수월하다고 한다. 폐지가 많이 나오는 목 좋은 구역을 다른 할머니에게 넘겨받았기 때문이다. 폐지수집에도 각자 정해진 구역이 있다. 구역이 정해지는 원리는 간단하다. 할머니들이 각자 폐지를 수집하던 장소가 자연스럽게 각자의 구역으로 굳어진 것이다.
김 할머니의 구역은 원래 슈퍼마켓이 포함된 지금의 자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원래 이 구역의 주인이었던 할머니가 와병 중이라 김 할머니에게 잠시 넘겨줬다. 이 구역은 큰 슈퍼마켓이 바로 앞에 있어 종이상자가 많이 나온다. 그 덕에 지금은 예전보다 덜 고생하고도 폐지를 모을 수 있지만, 이 구역의 주인이 돌아오면 할머니는 다시 골목 구석구석을 고생스럽게 돌아다녀야 한다.
쓰러질 때까지 일했지만, 남은 건 비좁은 셋방 하나
김 할머니가 폐지를 수집해서 버는 돈은 한 달에 15만 원이 채 못 된다. 하루에 많이 벌면 6000원, 조금 버는 날은 3000원이란다. 박하기 짝이 없었다. 2012년 최저시급인 4580원을 할머니는 하루 12시간을 일하며 벌고 있는 셈이다.
김 할머니는 춥거나 비 오는 날이 일하기 더 좋다고 한다. 날이 궂으면 사람들이 폐지 수집을 쉬기 때문이다. 지난주 서울의 기온이 올 겨울 들어 처음으로 영하권으로 떨어진 날에도 할머니는 어김없이 거리로 나왔다. 김 할머니가 쉬는 날은 눈 오는 날뿐이다. 길이 미끄러워 걸어 다닐 수 없게 되지 않는 이상 할머니의 휴일은 없는 것이다.
"한 번 돌아다니면 15kg쯤 나와. 그러면 수레 무게 뺀다고 5kg을 빼, 그럼 얼마 안 해…. 그래서 (장부에) 달아놓고 돈도 안 받아왔어."김 할머니도 처음부터 이 일을 한 건 아니었다. 이 일을 한 지는 1년 반이 되었다. 이 일을 하기 전에는 식당에서 주방 일을 했다. 하지만 한번 과로로 쓰러진 이후 할머니는 식당 일을 그만둬야만 했다.
"젊어서는 식당 일 했어. 근데 나이가 먹으니 안 쓰지….""언제까지 식당 일 하셨어요?" "(그만둔 지) 오래됐어. 내가 아프고 나서…. 아프고 나면 못혀.""어디가 아프셨어요?""쓰러졌어, 피로가 올라와갖고.""병명이 뭐래요? 그냥 과로로?""응…."할머니는 젊어서부터 식당 일을 해 왔다. 그 전에는 시장에서 물건 정리하는 일을 하기도 했었다. 쓰러질 정도까지 일을 했지만, 남은 것은 작은 셋방이 전부였다. 기초생활 수급을 신청해보는 것은 어떠냐고 권했지만, 아들이 있어 안 된다고 했다. 30대 중반인 할머니의 아들은 일용직 근로자다. 매일 아침 일을 찾아 인력시장에 나서지만, 요즘은 일을 못 구하는 날이 많다고 한다.
"할아버지 얘기는 그만하고 싶어..."
김 할머니는 내가 가족 이야기를 물을 때마다 말을 돌리곤 했다. 따로 산 지 한참 되었다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내가 더 물으려 하자 "할아버지 얘기는 그만하고 싶다"며 딱 잘라 말했다. 아들의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에 미소가 번졌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아들의 일자리 걱정과 30대 중반이 되어서도 짝을 찾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비치는 것이 전부였다. 혼자서 아들을 어떻게 키웠는지 묻자 할머니는 갑자기 슈퍼에서 나온 빈 종이상자를 가지러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김 할머니에게 가족 이야기를 더 묻지 못했다. 대신 한 곳에 모아둔 할머니의 폐지를 함께 정리했다. 테이프를 뜯고 종이상자를 펼쳤다. 큰 상자를 밑에 놓아 최대한 많이 담을 수 있도록 면적을 넓혀놓고, 그 위에 펼쳐놓은 작은 상자들을 차곡차곡 쌓았다.
"할머니,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예요?""응, 그래." "제가 손이 야물지를 못해요….""나도 그래. 나도 손이 야물덜 못 혀."박스를 정리하며, 할머니는 다시 한번 나에게 폐지를 모아 팔아보기를 권했다. 신문은 종이상자보다 조금 더 쳐주고, 옷과 신발도 값이 나가는 폐품이라고 귀띔해줬다. 아파트에 살고 있어 옷은 모두 헌옷 수거함에 넣는다고 하니, 깜짝 놀라며 헌옷 수거함에 있는 옷은 절대 손대지 말라고 당부했다.
"거기는 절대 손대지 마. 벌금 물어."
"벌금을 물어요? 어디서요?" "몰라, 여튼 거기는 꺼내가지 마. 거기는 관리하는 아저씨들이 가져가나 봐. 내가 가봤더니 못 가져가게 해."남은 폐지를 손수레에 모두 실은 할머니는 다시 재활용센터를 거쳐 동네 한 바퀴를 돌 예정이라고 했다. 내가 따라나서겠다고 하자 할머니는 한사코 나를 말렸다. 김 할머니가 이번에는 쉽게 허락해주지 않을 기세였다. 나는 몇 번 더 졸라봤지만, 결국 할머니는 나의 동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늘만 날은 아닝께, 나중에 또 볼 날 있겄지. 잘 가, 총각."답례로 따뜻한 풀빵 하나와 차 한 잔이라도 대접하고 싶다는 내 말에 김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잰 걸음으로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덧붙이는 글 | 이형섭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 기자단 '오마이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